박준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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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준태(朴俊泰 / Jun-ta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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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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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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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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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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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 우투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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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 1989년 2차 1라운드 (태평양 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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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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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선수 시절
야구명문 광주제일고와 동국대학교를 거쳐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다. 빠른 발과 준수한 컨택능력을 갖고 있었고 고교 시절에는 투수와 내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최초로 황금사자기 2년 연속 MVP를 수상해 같은 광주일고 후배인 이종범에 앞서 "야구천재"라는 말을 듣고 있었으나, 태평양 돌핀스에서는 별로 빛을 못 봤고 1992년 6월말에 만년 3할타자인 LG 트윈스의 윤덕규를 상대로 트레이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1].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과는 달리 프로 입단 후 3년간은 별다른 활약이 없었기 때문에 LG팬들은 이광환 감독이 태평양에 조공 트레이드를 해줬다고 반발했고, 팬들의 성화에 화가 났는지 박준태는 LG에 와서 포텐을 터트렸다. 슬로우스타터와는 정 반대로 7월까지는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곤 했다. LG의 전성기였던 1993년과 1994년 4월에는 4할대, 7월까지는 모두 3할 중반때를 치고 타격 수위를 다투었으나, 체력저하로 7월 이후에는 죽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1993년에는 타율 .267로 마쳤고, LG의 전성기인 1994년에는 .274로 마쳤다.
이 후 김재현(1994년), 심재학, 조현(1995년), 이병규(1997년) 등 좌타자 외야수들이 잇달아 입단하면서 입지가 좁아졌고, 1999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강기웅과 함께 시즌 초반에 날다가 후반기에 체력저하로 무너져내리는 대표적 스타일이었다.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과는 달리 프로 입단 후 3년간은 별다른 활약이 없었기 때문에 LG팬들은 이광환 감독이 태평양에 조공 트레이드를 해줬다고 반발했고, 팬들의 성화에 화가 났는지 박준태는 LG에 와서 포텐을 터트렸다. 슬로우스타터와는 정 반대로 7월까지는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곤 했다. LG의 전성기였던 1993년과 1994년 4월에는 4할대, 7월까지는 모두 3할 중반때를 치고 타격 수위를 다투었으나, 체력저하로 7월 이후에는 죽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1993년에는 타율 .267로 마쳤고, LG의 전성기인 1994년에는 .274로 마쳤다.
이 후 김재현(1994년), 심재학, 조현(1995년), 이병규(1997년) 등 좌타자 외야수들이 잇달아 입단하면서 입지가 좁아졌고, 1999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강기웅과 함께 시즌 초반에 날다가 후반기에 체력저하로 무너져내리는 대표적 스타일이었다.
3. 지도자 시절
[1] 그나마 92년에는 114경기 7홈런(태평양-58경기 5홈런 LG-56경기 2홈런)을 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