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용수(朴瑢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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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박형수(朴亨洙), 박만권(朴萬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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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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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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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서
| 대통령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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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는 1901년 12월 14일 전라남도 광양군 인덕면 인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9일 광양군 인덕면에서 동료인 김영호(金永鎬)·김석용(金錫瑢)·이재갑(李在甲) 등과 함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기와 태극기를 만들고 시위군중을 규합하기 위한 격문을 작성하여 김태훈(金泰勳)·김태성(金太星) 등에게 건네주고 각 마을마다 붙이게 하여 거사를 취지를 널리 전파하려다가 일군 헌병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1919년 5월 10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광양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5년 2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박용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