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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연맹 심판
KOREAN BASKITBALL LEAGUE
박범재
출생
1983년 4월 30일 ([age(1983-04-30)]세)
국적
신체
191cm
직업
농구선수(스몰 포워드 / 은퇴)
심판
학력
전주남중학교 (졸업)
전주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졸업)
프로입단
2006년 드래프트 (3라운드 3순위, 창원 LG)
현역시절 등번호
8[3], 3[4]
소속
선수
심판

1. 개요2. KBL 이전3. KBL 입단 후4. 심판 시절5. 시즌별 성적6.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의 前 농구선수이자 現 KBL 심판. 그러나 오심 등 많은 문제 때문에 심판으로서는 국내 농구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2. KBL 이전

천재 가드로 불렸던 김학섭, 그리고 아직 쩌리였던 조성민과 함께 전주고의 전국체전 3연패를 함께했던 멤버로, 당초 천재가드 김학섭의 패키지로 고려대에 갈 수 있었으나[5] 당시 입학 조건이 김학섭 등 3명이 모두 고대에 가면 본인을 포함해 조성민도 농구를 그만두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조선의 슈터는 이렇게 사라질 뻔 했다. 다행히(?) 김학섭이 한양대로 틀면서 약팀인 동국대에 진학해 4년간 팀의 주포로 활약하게 된다. 저학년 시절 동국대는 예선 통과조차 버거웠던 팀이었으나, 유병재(190cm,F), 기승호(193cm,F), 정재홍(177cm,G) 등 좋은 후배들이 합류한 4학년때 연세-고려-중앙대에 이어 동국대는 대학 4강권에 이름을 올리는 강팀으로 변모하였고,[6] 정교한 외곽슈팅과 터프한 수비를 보여주며 유병재와 함께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3. KBL 입단 후

파일:박범재, 이현민, 임효성, 백천웅.jpg
파일:원주동부 박범재.jpg

2006 KBL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23순위로 창원 LG 세이커스에 지명되어, 두번째 시즌인 07-08 시즌에 평균 10분 정도의 출장시간을 갖는 식스맨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시즌 종료 후 어느 정도 기량이 되는 선수들만 가는 상무에 당당히 선발되어 2년간 군복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제대 직후 10-11 시즌 개막을 앞두고 원주 동부 프로미로 무상 트레이드 되어 우승권 팀이던 당시 출장기회를 잡기 힘들었고 준우승을 경험한 뒤 같은 시즌을 끝으로 은퇴함과 동시에 2011년부터 KBL 심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4. 심판 시절

KBL 심판으로서는 황현우[7] 심판의 은퇴 후 현재 KBL에서 가장 인기있는(?) 심판으로 꼽히고 있다. 양 팀 선수, 감독은 물론 팬들까지 열받게 하기 때문인데, 이전에 비난받던 심판들처럼 권위의식이 있거나, 조작이 의심되는 판정이 아니라, 애초부터 모든 상황에 대한 잘못된 판정을 내려 양 팀에 공정하게(?) 오심을 해버린다는 게 문제다. 덕분에 최근 KBL 팬들 입에 오르내리는 심판들 중 "의도는 없으나 가장 못보는 심판"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특히 자신의 전 소속팀이었던 LG에게는 유독 불리하게 판정을 내릴 때가 많아서 LG 팬들은 그를 반 금지어로 삼고 있다.

2020년 10월 22일 KT와 KGC와의 경기에서는 이런 명성에 정점을 찍는 대활약을 보여주었다. 특히 2쿼터 데릭슨의 몸통박치기를 변준형의 오펜스 파울로 처리한 것, 연장전 데릭슨의 퇴장 판정, 양홍석의 석점을 두 점으로 처리한 것 등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5. 시즌별 성적

역대 기록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PER
2006-07
8
66.67
38.46
0.00
3.38
0.75
1.00
0.00
0.00
21.36
2007-08
45
44.00
30.21
75.00
3.18
0.69
0.47
0.40
0.04
12.41
2008-09
군복무(상무 농구단)
2009-10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PER
2010-11
35
51.22
27.27
53.85
2.43
0.74
0.43
0.31
0.00
11.34
KBL 통산
(3시즌)
88
49.00
30.07
63.33
2.90
0.72
0.50
0.33
0.02
12.798

6. 관련 문서


[1] LG 시절[2] 동부 시절[3] LG 시절[4] 동부 시절[5] 당시 고려대는 이미 청대 출신 가드 임용석에 김동광 아들 김지훈이 있는데다, 휘문, 경복 양교의 에이스 가드였던 배경한, 전원석에도 손을 뻗치던 상태였다. 여기에 또 가드인 김학섭을 추가하려는 시도였으니... 당시 고려대의 중복 스카웃 스케일은 이 정도였다.[6] 당시 새롭게 부임한 연세대 출신 명장 최희암 감독의 지도력도 큰 영향을 미쳤다.[7] 개명 전 이름은 그 유명한 황순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