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성 밖에서 바라본 바위의 돔
|
1. 개요
2. 상세
같은 성전산에 알 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바위의 돔 내부는 안에서 이슬람식으로 무릎 꿇어 절하며 예배 드리기에는 매우 협소하고 불편하다.
바위의 돔 내부 한 가운데에는 암반을 다듬어 만든 제단 자리가 있다. 바위의 돔이란 이름에서 말하는 '바위'가 바로 이 암반을 뜻한다.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여기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하고[2] 솔로몬 시절에는 언약궤를 그 바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또한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첫 아내 카디자가 죽은 뒤 부라끄(Buraq)라고 불리는 사람 얼굴에 나귀 몸을 한 신수(神獸)를 타고 메카에서 바로 이곳 성전[3]에 와서 다른 예언자들과 함께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고, 승천하여 하나님을 만나 계시와 명령을 들은 후, 다시 메카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바위는 무함마드가 하늘로 올라간 장소로, 이슬람에서도 메카, 메디나와 더불어 이슬람 3대 성지로 손꼽으며 중요시한다.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했다는 말을 죽었다는 말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슬람 전승에서 무함마드는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뒤 메카로 다시 돌아왔으며, 그 뒤 메디나로 도피했다. 다만, 승천한 때가 전승에 따라 메디나로 간 이후라고 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한 뒤 다시 메카(혹은 메디나)로 돌아왔다고 믿는다.
돔 위에 입힌 금은 요르단 왕가인 하심 가문에서 기증하였다. 하심 가문은 성지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 가문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Seal_of_Templars.jpg
십자군 시대에 결성되었던 성전 기사단의 상징에 등장하는 건물이 바로 바위의 돔이다.
바위의 돔을 오마르 모스크라고 서술한 자료도 있는데, 오마르 모스크는 성묘 교회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다른 건물이다.
바위의 돔 내부는 안에서 이슬람식으로 무릎 꿇어 절하며 예배 드리기에는 매우 협소하고 불편하다.
바위의 돔 내부 한 가운데에는 암반을 다듬어 만든 제단 자리가 있다. 바위의 돔이란 이름에서 말하는 '바위'가 바로 이 암반을 뜻한다.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여기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하고[2] 솔로몬 시절에는 언약궤를 그 바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또한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첫 아내 카디자가 죽은 뒤 부라끄(Buraq)라고 불리는 사람 얼굴에 나귀 몸을 한 신수(神獸)를 타고 메카에서 바로 이곳 성전[3]에 와서 다른 예언자들과 함께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고, 승천하여 하나님을 만나 계시와 명령을 들은 후, 다시 메카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바위는 무함마드가 하늘로 올라간 장소로, 이슬람에서도 메카, 메디나와 더불어 이슬람 3대 성지로 손꼽으며 중요시한다.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했다는 말을 죽었다는 말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슬람 전승에서 무함마드는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뒤 메카로 다시 돌아왔으며, 그 뒤 메디나로 도피했다. 다만, 승천한 때가 전승에 따라 메디나로 간 이후라고 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한 뒤 다시 메카(혹은 메디나)로 돌아왔다고 믿는다.
돔 위에 입힌 금은 요르단 왕가인 하심 가문에서 기증하였다. 하심 가문은 성지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 가문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Seal_of_Templars.jpg
십자군 시대에 결성되었던 성전 기사단의 상징에 등장하는 건물이 바로 바위의 돔이다.
바위의 돔을 오마르 모스크라고 서술한 자료도 있는데, 오마르 모스크는 성묘 교회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다른 건물이다.
3. 사건사고
기 들릴이 그린 굿모닝 예루살렘을 보면 이스라엘 유대인 극단계열인 하레디들이 여길 헐고 예루살렘 성전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아예 돔 근처에 큼직한 벽돌과 건축재료들까지 두기도 한다. 유대교의 믿음에 따르면, 신에게 적법하게 제물을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 성전 자리이다.[4] 구약성경에는 다른 곳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도 있지만, 신께서 바로 예루살렘 성전 터를 제사를 지낼 곳으로 정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오직 그 자리에서만 율법에 합당하게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제사를 바칠 수 있는 장소가 사라져, 유대교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 계층이 붕괴했다. 하레디 등은 이제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으니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여 합법적으로 제례를 바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여길 헐기라도 하면 1000년 넘은 문화재도 거리낌없이 파괴해버리는 막장집단 인증에 전세계 이슬람에 대한 선전포고라서 이스라엘 정부는 물론 웬만한 우익들도 여길 건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 건축재료들을 이스라엘 군경이 출동하여 강제로 회수해서 돌려주거나 멀리 치우는데, 그 와중에 극단 우익들이 저항하여 과격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이슬람에서도 건물이 아니라 그 '위치'를 중요시하므로, 바위의 돔을 파괴하지 않고 건물을 옮기는 것도 거부할 테니...
前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이 살아생전 여길 방문하다가 이슬람권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시위하던 팔레스타인 무슬림에게 총격이 가해지기도 했을 정도.[5] 샤론은 여길 모독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이스라엘 총리가 여길 헐고자 둘러봤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우방인 터키나 요르단도 항의했을 지경이었고 후원국 미국조차도 자제하라고 할 정도로 외교적으로 곤욕을 치뤄서 그 뒤론 이스라엘 정계에서도 가기를 자제한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는 이곳을 폐쇄하고 무슬림들에게 제한적인 출입만 허용하는데, 역시 무슬림들의 반발이 크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일어난 날 여기도 소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본격적으로 불이 번지기 전에 진화되었다고 한다. 기사
하지만 만약에 여길 헐기라도 하면 1000년 넘은 문화재도 거리낌없이 파괴해버리는 막장집단 인증에 전세계 이슬람에 대한 선전포고라서 이스라엘 정부는 물론 웬만한 우익들도 여길 건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 건축재료들을 이스라엘 군경이 출동하여 강제로 회수해서 돌려주거나 멀리 치우는데, 그 와중에 극단 우익들이 저항하여 과격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이슬람에서도 건물이 아니라 그 '위치'를 중요시하므로, 바위의 돔을 파괴하지 않고 건물을 옮기는 것도 거부할 테니...
前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이 살아생전 여길 방문하다가 이슬람권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시위하던 팔레스타인 무슬림에게 총격이 가해지기도 했을 정도.[5] 샤론은 여길 모독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이스라엘 총리가 여길 헐고자 둘러봤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우방인 터키나 요르단도 항의했을 지경이었고 후원국 미국조차도 자제하라고 할 정도로 외교적으로 곤욕을 치뤄서 그 뒤론 이스라엘 정계에서도 가기를 자제한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는 이곳을 폐쇄하고 무슬림들에게 제한적인 출입만 허용하는데, 역시 무슬림들의 반발이 크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일어난 날 여기도 소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본격적으로 불이 번지기 전에 진화되었다고 한다. 기사
4. 사진
5. 대중문화에서
[1] 영어 위키백과 참조 #[2] 이슬람 전승에서는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바치려 했다고 한다.[3] 이슬람 기록에는 '성전'이라고 하는데, 무함마드 무렵이면 이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성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원래 이슬람 기록에는 무함마드가 '멀리 있는 사원'으로 갔다고 하는데, 나중에 그 '멀리 있는 사원'을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해석한 것이다.[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이전에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부정했던 일부 종파도 있었는데, 그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예수가 자기 몸을 바쳐 드린 제사를 통해 모든 제사를 폐했다고 믿기 때문.[5] 샤론한테 돌던지고 욕하자 샤론 측은 호위병력들을 지휘해 총질로 쫓아내버렸다. 당연히 사상자가 생겨서 샤론은 국제적으로 욕 엄청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