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이름
| 마퀴스 딘 그리솜
(Marquis Deon Grissom) |
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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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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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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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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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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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 1988년 3라운드 76번 몬트리올 엑스포스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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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 몬트리올 엑스포스 (1989~199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5~199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7) 밀워키 브루어스 (1998~2000)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1~200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3~2005) |
Marquis Grissom (1967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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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내에는 박찬호와 함께 LA 다저스에 소속되어 있던 2001년에 많이 알려졌다. 그 당시 많은 팬들은 그의 외모와 가끔 나오는 뜬금포, 그리고 부진한 성적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2001년은 그의 커리어에서 제일 부진한 해였다. 전성기에는 빠른 발로 도루왕을 두 번이나 차지했으며 타격도 상당히 정교했다. 13년간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꾸준히 좋았다.
애틀랜타 출신으로, 198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 리그에 발을 들였다.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 때는 1991년.[1]
1993년에 .298의 타율과 19홈런 53도루, 준수한 중견수 수비로, 처음으로 올스타 게임에 나갔으며, 골드글러브를 타기도 했다. 특히 199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짧은 리즈시절에 톱타자를 맡아 공격의 첨병으로 엄청난 활약을 했다. 그러나 몬트리올, 아니 캐나다는 아시다시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아이스하키 사랑 때문에 야구는 인기면에서 좀 밀렸다. 그리고 1994 시즌 MLB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만큼이나 영광을 누리고 싶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선수 유지비용을 버티지 못하여(...) 결국 눈물의 바겐세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 첫번째 대상이 바로 그리솜이었다. 그리솜은 1994년을 끝으로 당시 한창 리즈시절을 달리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된다.
그리솜은 1995년 월드 시리즈에서 25타수 9안타 (.360 타율)로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97년에는 케니 로프턴이 낀 트레이드로
1998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의 유니폼을 입는다. 1999년에는 두번째로 20-20 클럽 (20홈런 24도루)에 가입하기도. 2001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어,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었다. 두자릿수 홈런을 때렸으나, 타율이 멘도사 라인에 가까웠고 삼진은 왕창 늘어났다. 거기에다 한 시즌에 도루를 78개나 달성한 선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발까지 느려졌다. (..)
위에서 말한대로 2001년 다저스에서 부진해서, .250의 출루율
2009년부터 엑스포스의 후신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코치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2006년에 설립한 MGBA (Marquis Grissom Baseball Association) 라는 야구 재단에서 후진을 양성중이다. 링크
2. 꽃미남
3. 이야깃거리
"메이저리그 패싸움 10계명"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벤치 클리어링 상황에서 메이저리거들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알려주는 지침. 여기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을 때 절대로 알버트 벨에게 싸움을 걸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카일 판스워스가 출동하면 어떨까? UFC MLB 드림매치
마퀴스 그리솜이 말하는 메이저리그 패싸움의 10계명
마퀴스 그리솜이 말하는 메이저리그 패싸움의 10계명
- 1. 상대팀이 우리팀을 열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극하면, 위협적인 동작과 화난 말투로 이런 식의 말을 주고 받는다. "어제 보니 니네 엄마가 니가 계약 안 한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다니던 것 같던데?"[3], "정말 그렇단 말이야? 음… 에이젼트 시켜서 확인해 보겠어!"
- 2. 양팀간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항상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라 ; 싸움이 나더라도 절대 가장 먼저 필드에 뛰어나가는 사람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먼저 튀어나가면 먼저 맞는다. 그러니 일단은 상대를 위협하는 척 하며 참다가 우리팀의 진정한 터프가이(알버트 벨 같은)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 3. 모두가 필드로 뛰어나가 투수 마운드를 중심으로 일단의 싸움집단을 구성하고 나면, 그때는 싸움에 합류해도 된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로 명심할 것은 우리팀 선수들이 주변에 많은 후방지역으로 합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혹시라도 모르는 진짜 싸움이 일어날 때 보호받을 수 있고, 또 차후에 일어날 징계위원회의 비디오 필름 조사시 징계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 4. 만약 위의것들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상대팀이랑 붙어라. 하지만 여기에도 또 필히 알아둘 사항이 있다. 평소에 친했던 상대팀 선수들을 찾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 앞에 가서 서로 드잡이질 하고있는 척을 해라. 만일 상대팀에 친한선수가 없다면 그 팀의 가장 작고 약해보이는 선수를 찾아서 진짜 화난 것처럼 노려보라.
- 5. 만일 상대 선수들이 진짜 화나서 일을 벌일 것 같은 분위기일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선수 등 뒤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곤 등짝을 보자
- 6. 항상 심판의 시야 안에서 움직여라. 그것도 심판 근처에서. 그래야 진짜 싸움이 나도 그들이 말리러 올 수 있다.
- 7. 이 모든 것이 안된다면, 그저 서성대며 위협하는 척이나 해라.
- 8. 절대로 알버트 벨 근처에는 가지마라. 선수생명이 끝장나는 수가 있다.
- 10. 마지막으로, 우리팀이 그 경기에서 이겼다면 기자들 앞에서 그 싸움이 내부의, 가슴속의 무언가를 자극해서 우리가 이기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얘기하라. 만약 졌다면? 싸움이 팀의 상승분위기와 투수들의 리듬을 깨버려 질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해라. 미숙한 경기운영을 한 심판들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기자들이 당신의 얘기에 별로 귀기울이려 하는 것 같지 않으면, 얘기하면서 화난 것처럼 으르릉거리며 서성거려라. 그들은 당신이 팀원들을 걱정하고 상대팀을 저주하는 진정한 투사인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4. 여담
직접적으로 증거는 없는 상태이지만 2003년 시즌에 회춘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내고 노익장을 보인 그리솜이 대대적인 약물 검사 강화 이후로 시기가 딱 들어맞듯 2004년부터 성적이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전력외급이 되어버린것 때문에 한미 야구팬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리솜도 도핑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그걸 끊은뒤에 성적이 추락했다고 보는편. 운동선수가 나이에 따른 노쇠화로 에이징 커브가 오는건 당연하지만 그리솜의 성적 하락을 에이징 커브라고 보기에도 너무 심한폭의 급하락이었기 때문.
마이크 피아자와 더불어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천적이었다. 통산 23타수 13안타에 상대 타율 .565을 기록했다.
마이크 피아자와 더불어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천적이었다. 통산 23타수 13안타에 상대 타율 .565을 기록했다.
[1] 참고로 데니스 마르티네즈가 달성한 퍼펙트 게임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그리솜이 잡아냈다.[2] 선수들은 용품계약을 맺은 브랜드만 쓰도록 되어있다.[3] 선수들은 용품계약을 맺은 브랜드만 쓰도록 되어있다.[4] 2004 시즌 LG 트윈스에서 뛴 그 알 마틴 맞다. 마틴도 꽃미남 흑형으로 매우 유명하다.[5] 2004 시즌 LG 트윈스에서 뛴 그 알 마틴 맞다. 마틴도 꽃미남 흑형으로 매우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