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이름
| 델핀 베니테스 카세레스
(Delfín Benítez Cáceres) |
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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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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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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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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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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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조건
| 176cm / 73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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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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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 클루브 리베르타드(1927-1932)
CA 보카 주니어스(1932-1939) 라싱 클루브(1939-1941) 페로 카릴 외스테(1941-1944) 스포르팅 데 바란키야(1944-1952) |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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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인데펜디엔테 메델린(1954-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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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델핀 베니테스는 그의 조국 파라과이의 클루브 리베르타드에서 축구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데뷔할 당시부터 그는 떡잎이 파릇파릇한 선수였고, 그 증거는 만 19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뽑혀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3]와 초대 월드컵에 나간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비록 베니테스는 이 두 대회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의 CA 보카 주니어스가 베니테스 영입에 성공하였다. 그는 1932년 시즌, 15라운드에서 인상적인 첫 골을 신고하였는데 1대0으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2골을 집어넣으며 팀을 순식간에 역전시켜버렸다. 특히 2번째 골은 30미터 밖에서 터진 중거리 골이었고 이 골로 셰네이세스[4]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활약하는 동안 그는 로베르토 체로와 프란시스코 바라요와 함께 강력한 트리오를 구성했으며 보카 주니어스의 2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총 7시즌 동안 115골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통산 6위에 해당하며 비 아르헨티나인 공격수 중에서는 가장 높은 기록이다.
1939년 보카 주니어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이후 베니테스는 라싱 클루브로 이적했고 여기서 커리어 최초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고 1941년부터 1944년까지는 페로 카릴 외스테 클럽에서 보냈다. 13년간의 아르헨티나 생활에서 그는 총 193골을 득점하였다. 1944년 시즌을 마치고 베니테스는 콜롬비아로 건너갔고 1952년까지 뛰다 은퇴하였다.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감독을 맡았고 팀을 우승시키기도 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의 CA 보카 주니어스가 베니테스 영입에 성공하였다. 그는 1932년 시즌, 15라운드에서 인상적인 첫 골을 신고하였는데 1대0으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2골을 집어넣으며 팀을 순식간에 역전시켜버렸다. 특히 2번째 골은 30미터 밖에서 터진 중거리 골이었고 이 골로 셰네이세스[4]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활약하는 동안 그는 로베르토 체로와 프란시스코 바라요와 함께 강력한 트리오를 구성했으며 보카 주니어스의 2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총 7시즌 동안 115골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통산 6위에 해당하며 비 아르헨티나인 공격수 중에서는 가장 높은 기록이다.
1939년 보카 주니어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이후 베니테스는 라싱 클루브로 이적했고 여기서 커리어 최초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고 1941년부터 1944년까지는 페로 카릴 외스테 클럽에서 보냈다. 13년간의 아르헨티나 생활에서 그는 총 193골을 득점하였다. 1944년 시즌을 마치고 베니테스는 콜롬비아로 건너갔고 1952년까지 뛰다 은퇴하였다.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감독을 맡았고 팀을 우승시키기도 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3. 수상
3.1. 클럽
3.2. 감독
- 콜롬비아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1955(인데펜디엔테 메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