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전개 과정
당시 대구직할시 중구 삼덕동에는 미국문화원이 자리잡고 있었다.[1] 1983년 9월 23일 영남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던 허병철(17)은 미국문화원 주변을 지나가던 중 주변에 수상한 가방 몇 개를 발견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는 가방 하나를 가져다가 "길 가다 이상한 가방이 있어서 주워왔다"며 경찰에 신고했으며, 미국문화원 앞 계단에는 더 큰 가방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신고를 받은 김철호 순경은 허병철을 동행하고 미국문화원으로 갔다. 일행이 미국문화원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현장에 있던 가방이 폭발했다.
이 폭발로 인해 허병철은 폭사했으며, 김철호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또한 미국문화원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 몇 명도 크게 다쳤다. 미국문화원은 담벼락이 무너지고 모든 유리창이 박살나는 피해를 입었고, 지나가던 차량의 유리창도 깨졌다. 경찰의 수사 결과, 이 폭탄은 정교하게 만들어져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경찰은 이 폭발 사건이 간첩 혹은 공산주의자들과의 연관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했다. 3개월 후인 12월 3일, 부산광역시 다대포 해안에서 2명의 무장간첩(전충남, 이상규)가 체포되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사건은 북한의 지령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경찰은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경찰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작정 경북대학교 학생들을 이 사건에 엮은 것이다. 경찰은 사건을 수사한다며 경북대학생 5명을 영장도 없이 연행하여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무자비하게 고문했다. 학생들은 전기고문, 잠 안 재우기 고문 등을 당했고, 어떤 학생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제가 폭파했다, 범인이다"라고 거짓으로 자백하기도 했다. 나중에 무장간첩들이 잡히게 되자, 이 학생들은 이번엔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자백하라며 고문을 당했다. 그리하여 결국 1명은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나머지 4명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야 했다.
이 폭발로 인해 허병철은 폭사했으며, 김철호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또한 미국문화원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 몇 명도 크게 다쳤다. 미국문화원은 담벼락이 무너지고 모든 유리창이 박살나는 피해를 입었고, 지나가던 차량의 유리창도 깨졌다. 경찰의 수사 결과, 이 폭탄은 정교하게 만들어져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경찰은 이 폭발 사건이 간첩 혹은 공산주의자들과의 연관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했다. 3개월 후인 12월 3일, 부산광역시 다대포 해안에서 2명의 무장간첩(전충남, 이상규)가 체포되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사건은 북한의 지령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경찰은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경찰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작정 경북대학교 학생들을 이 사건에 엮은 것이다. 경찰은 사건을 수사한다며 경북대학생 5명을 영장도 없이 연행하여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무자비하게 고문했다. 학생들은 전기고문, 잠 안 재우기 고문 등을 당했고, 어떤 학생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제가 폭파했다, 범인이다"라고 거짓으로 자백하기도 했다. 나중에 무장간첩들이 잡히게 되자, 이 학생들은 이번엔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자백하라며 고문을 당했다. 그리하여 결국 1명은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나머지 4명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야 했다.
3. 사건 이후
4. 유사 사례
북한의 소행으로 알려진 대구 미국문화원 사건과 달리 아래의 세 사건은 국내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벌어졌다.
-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0)
-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2)
-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1985)
[1] 당시 대구 미국문화원은 경북도교육회관 건물의 1~2층을 임대하여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