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2. 생애
3. 여담
[1] 사실 1기수당 임관 인원이 130~150명 내외인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중에서 해병대를 택하는 생도는 1기수당 15~20명 정도다. 확률상으로 따져봐도 해병대 장교로 임관하는 경우가 적다는 뜻이다. 71기 수석 졸업자였던 엄태현 생도도 해병대를 택했다.[2] 본게임인 축구대결은 국대팀이 승리했다.[3] 본게임인 축구대결은 국대팀이 승리했다.[4] 조강래, 서헌원(이상 41기), 김태성, 백경순(이상 42기). 백경순 장군의 경우 강화도 탈북자 월북 사건 당시 경계실패로 해병대 제2사단장에서 보직해임을 당하고 해병대 부사령관으로 옮겨가 가능성이 희박하고, 서헌원 장군은 해병 포병 병과라 보병 병과에 밀린다. 또한 해사 42기와 43기에서 이미 해군은 중장이 나왔는데 41기에서 중장 진급자가 나오면 그렇지 않아도 진급 적체 상태인 해병대는 계속 적체 상태로 남는다.[5] 조강래, 서헌원(이상 41기), 김태성, 백경순(이상 42기). 백경순 장군의 경우 강화도 탈북자 월북 사건 당시 경계실패로 해병대 제2사단장에서 보직해임을 당하고 해병대 부사령관으로 옮겨가 가능성이 희박하고, 서헌원 장군은 해병 포병 병과라 보병 병과에 밀린다. 또한 해사 42기와 43기에서 이미 해군은 중장이 나왔는데 41기에서 중장 진급자가 나오면 그렇지 않아도 진급 적체 상태인 해병대는 계속 적체 상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