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여담
놀라운 사실은, 이 사람이 아슐리안형 양면 가공 석기를 연인[2]과 데이트하던 중 지나가다 발견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것이었지만, 이런 중요한 도끼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 좋게도 보웬이 마침 고고학 전공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3] [4]
군대에 갔던 것도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졸업하고 입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보웬에게도 이 유적지 발견은 큰 명예였으며 이 공로로 세계 고고학계에 알려져 제대 후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각종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보웬은 1978년에 제대 후 한국인 애인이었던 이상미를 데리고 미국 애리조나로 가서 결혼, 딸을 하나 두었고, 미국에서는 나바호 인디언 역사보존부에 근무하였다.
2005년에는 1977년 이후 27년 만에 연천 구석기 축제에 초청받아 방한하기도 했다.# 당시 여친이었던 아내와의 사진 기사 방한 당시 이선복 교수는 "당신이 아니었으면 전곡리의 역사는 지금도 잠들어 있을 것" 이라며 유적이름을 보웬 유적지로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전곡리 선사유적지/1331269467.jpg
중앙에 있는 사람이 그렉 보웬이다. 오른쪽 중년 여성은 부인인 상미 보웬(이상미).
이후에도 매년 전곡리 유적지에서 구석기 행사가 열리면 참석했으나, 2009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
군대에 갔던 것도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졸업하고 입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보웬에게도 이 유적지 발견은 큰 명예였으며 이 공로로 세계 고고학계에 알려져 제대 후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각종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보웬은 1978년에 제대 후 한국인 애인이었던 이상미를 데리고 미국 애리조나로 가서 결혼, 딸을 하나 두었고, 미국에서는 나바호 인디언 역사보존부에 근무하였다.
2005년에는 1977년 이후 27년 만에 연천 구석기 축제에 초청받아 방한하기도 했다.# 당시 여친이었던 아내와의 사진 기사 방한 당시 이선복 교수는 "당신이 아니었으면 전곡리의 역사는 지금도 잠들어 있을 것" 이라며 유적이름을 보웬 유적지로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전곡리 선사유적지/1331269467.jpg
중앙에 있는 사람이 그렉 보웬이다. 오른쪽 중년 여성은 부인인 상미 보웬(이상미).
이후에도 매년 전곡리 유적지에서 구석기 행사가 열리면 참석했으나, 2009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
[1] 예를 들어 주먹도끼.[2] 이상미(1954년생). 후에 그렉 보웬과 같이 미국 애리조나로 건너가 결혼 후 상미 보웬으로 개명.[3] 전공이 아니고 교양수업에서 고고학 관련 수업만을 들었다는 소문도 있으나 본인이 고고학 전문이라고 밝혔다.[4] 연인은 영문도 모른 채로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과정이 어떻든 세계를 뒤집어놨으니 결과적으론 잘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