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
大明 | |
존속기간
| 1407년 ~ 14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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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칭
| 명(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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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차이나 / 코친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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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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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성
| 주(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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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원수
| 명나라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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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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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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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1407년 복속
1418년 남산기의 1427년 축출 |
성립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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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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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명의 지배기 이후 송나라 때부터 사용하던 안남이라는 호칭을 다시 교지(交趾)로 돌리고 명나라의 일부로 통합하면서 철저한 동화정책을 실시하였다. 교지는 만다린으로 '자오즈'(Jiao Zhi), 광둥어 발음으로 '코찌'였다. 혹은 말레이어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이것이 서양인에게 코치(Cochi)로 바뀌고, 인도의 '코친'과 비교하기 위해 '코치 인 차이나'(Cochi in China), 즉 '중국의 교지 땅'이라고 부른 것이 코친차이나 지방의 유래이다.
그리고 명은 교지(베트남)에 본토와 같은 부, 주, 현 제도를 설치하는 한편, 과중한 조세를 거두고 모든 남자를 군역과 도로 공사, 광산 채굴, 염전, 진주조개 채취, 어로, 수렵 등의 부역에 동원하였다.
명나라는 한편으로 전통과 풍습을 금지시키고, 기존의 책들은 모두 불태우거나 명나라로 가져갔다. 쩐왕조 시절 레반흐우에 의해 쓰여진 베트남의 공식역사서인 "대월사기"도 이 시절 명나라의 약탈행위로 인하여 소실되거나 흔적을 감추었다고 추측되고 있다. 다행히 대월사기의 내용을 공부했던 유학자와 역사가들 덕분에 후레왕조시기 "대월사기전서"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그존재가 알려지고 있다. 명나라조정은 1414년에 모든 부, 주, 현에 공자묘인 문묘를 설치하였고, 학교를 세워서 사서오경(사서삼경 + 예기 + 춘추)을 배포해서 성리학과 유학을 가르쳤으며, 승려를 파견하여 불교와 도교를 전파하였다. 더구나 명나라에서 파견된 관리들은 성실하게 일한다기보다는 권력을 휘둘러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열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의 불만이 증가하여 저항운동이 발생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명은 교지(베트남)에 본토와 같은 부, 주, 현 제도를 설치하는 한편, 과중한 조세를 거두고 모든 남자를 군역과 도로 공사, 광산 채굴, 염전, 진주조개 채취, 어로, 수렵 등의 부역에 동원하였다.
명나라는 한편으로 전통과 풍습을 금지시키고, 기존의 책들은 모두 불태우거나 명나라로 가져갔다. 쩐왕조 시절 레반흐우에 의해 쓰여진 베트남의 공식역사서인 "대월사기"도 이 시절 명나라의 약탈행위로 인하여 소실되거나 흔적을 감추었다고 추측되고 있다. 다행히 대월사기의 내용을 공부했던 유학자와 역사가들 덕분에 후레왕조시기 "대월사기전서"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그존재가 알려지고 있다. 명나라조정은 1414년에 모든 부, 주, 현에 공자묘인 문묘를 설치하였고, 학교를 세워서 사서오경(사서삼경 + 예기 + 춘추)을 배포해서 성리학과 유학을 가르쳤으며, 승려를 파견하여 불교와 도교를 전파하였다. 더구나 명나라에서 파견된 관리들은 성실하게 일한다기보다는 권력을 휘둘러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열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의 불만이 증가하여 저항운동이 발생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