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Matthias Kleinheisterkamp 마티아스 클라인하이스터캄프 |
출생 | |
사망 | |
복무 | |
최종계급 | |
주요 참전 | |
주요 서훈 | |
1. 개요[편집]
2. 제1차 세계 대전[편집]
3. 슈츠슈타펠에 입대하다[편집]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파일:캄프4.jpg
1939년 폴란드 침공시 바르샤바에 있던 독일계 시민을 피신시키는 역할을 맡았던 그는 1940년 5월에 제 3 SS 장갑사단 <토텐콥프>의 제 3 보병연대장이 되었다. 당시 사단장이던 테오도어 아이케와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1941년 7월에 아이케가 부상당하자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잠시 토텐콥프의 사단장 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케와 불화가 더욱 심해지자 그는 석달 후 다시 다스 라이히로 돌아와 동부전선에 배치되었다. 전공을 세워 기사십자장을 받은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1942년 4월까지 다스 라이히의 사단장으로 임명되어졌다. 1942년 4월에 잠시 제 6 SS 산악사단<노르트>의 사단장을 맡았지만 이 때는 임무가 주어지지 않아 1942년 6월에 다시 새로 임명되어 1943년 6월까지 노르트를 지휘해 핀란드에서 소련군과 참호전을 전개했다. 이 공적으로 핀란드 정부로부터 자유십자훈장을 받은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1943년 6월까지 제 7 SS 장갑군단, 1944년 6월에 제 3 SS 장갑군단, 1944년 8월부터 패전까지 제 6 SS 장갑군단의 군단장을 역임했다. 1945년 4월 28일에 베를린을 둘러싸고 공방전을 벌이던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소련군에게 잡히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베를린 남동쪽의 할베근처에 수용된 그는 포로가 된 다음날인 4월 29일에 자결했다. 그러나 베를린의 총통부는 그가 사망한 사실을 모르고 백엽훈장을 수여했다.
1939년 폴란드 침공시 바르샤바에 있던 독일계 시민을 피신시키는 역할을 맡았던 그는 1940년 5월에 제 3 SS 장갑사단 <토텐콥프>의 제 3 보병연대장이 되었다. 당시 사단장이던 테오도어 아이케와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1941년 7월에 아이케가 부상당하자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잠시 토텐콥프의 사단장 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케와 불화가 더욱 심해지자 그는 석달 후 다시 다스 라이히로 돌아와 동부전선에 배치되었다. 전공을 세워 기사십자장을 받은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1942년 4월까지 다스 라이히의 사단장으로 임명되어졌다. 1942년 4월에 잠시 제 6 SS 산악사단<노르트>의 사단장을 맡았지만 이 때는 임무가 주어지지 않아 1942년 6월에 다시 새로 임명되어 1943년 6월까지 노르트를 지휘해 핀란드에서 소련군과 참호전을 전개했다. 이 공적으로 핀란드 정부로부터 자유십자훈장을 받은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1943년 6월까지 제 7 SS 장갑군단, 1944년 6월에 제 3 SS 장갑군단, 1944년 8월부터 패전까지 제 6 SS 장갑군단의 군단장을 역임했다. 1945년 4월 28일에 베를린을 둘러싸고 공방전을 벌이던 클라인하이스터캄프는 소련군에게 잡히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베를린 남동쪽의 할베근처에 수용된 그는 포로가 된 다음날인 4월 29일에 자결했다. 그러나 베를린의 총통부는 그가 사망한 사실을 모르고 백엽훈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