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아츠코/AKB48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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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아츠코 AKB 그룹 내 주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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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캐릭터
2.1. 부동의 센터
3. 안티4. 말, 말, 말5. 활동
5.1. 2005년 ~ 2006년5.2. 2007년 ~ 2008년5.3. 2009년 ~ 2010년5.4. 2011년: AKB는 싫어하지 말아주세요5.5. 2012년: 졸업
6. 참여곡
6.1. 선발 참여곡6.2. 참여곡
7. 역대 프로필 사진8. 총선거 포스터

1. 개요[편집]

마에다 아츠코AKB48 활동을 서술한 문서.

2. 캐릭터[편집]

2.1. 부동의 센터[편집]

이상의 여배우상을 물으면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러운 사람' 이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서 있는 것의 대단함을 그녀는 아마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7년 간 여기에 있어줘서 고마워, 앗짱.

졸업 포토북 「あっちゃん」에서의 소개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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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AKB48 데뷔 이후 공식적으로 센터로 발탁이 되고 졸업할 때까지, 즉 14살 때부터 21살까지 7년 반 동안 언제나 센터였다.

프로듀서들이 그룹 결성 초기 당시, '스타를 만들어 보자'라는 기획을 했었고 여기에 모닝구 무스메 등의 안무를 담당했던 나츠 마유미가 춤선이 예쁘고 스타성이 있다고 생각해 앗짱을 추천, 앗짱이 초기 그룹의 센터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센터로 발탁되었을 당시에는 겨우 중학교 3학년에 불과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센터였기 때문에 악수회에서의 살해 협박을 비롯해 안티들의 원초적인 비난을 본인의 눈 앞에서 듣는 등 여러가지의 시련을 겪기도 했다.

2012년 8월, 졸업까지 쭉 48그룹을 지탱해왔으며 마에다 아츠코가 있는 곳이 바로 센터, AKB48의 얼굴이라고 불릴 만큼 그룹의 가장 중심에 서 있었던 멤버. 미디어의 노출도가 제일 높았던 것은 물론, AKB48은 몰라도 마에다 아츠코는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안티 또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센터란 보통 팀 내의 비주얼을 담당하는 멤버에게 주어지는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얼굴이 매력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정석으로 예쁜 편은 아니었고, 노래 실력도 음색이 곱기는 하지만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춤도 춤선을 이용해서 여성스럽게 추는 편이었기 때문에 춤을 힘차게 추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너지 절약 댄스'라 일컬어지기도 했다.[1]

방송 상에서의 예능 캐릭터도 일반적인 전력투구 캐릭터가 아니라 특유의 마이페이스적 성격이 가미된 캐릭터였기 때문에 언제나 어마어마한 안티들을 거느렸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최고의 팬덤을 보유한 멤버였다. 사실 부동의 센터이자 에이스라는 포지션 때문에 앗짱이 행동한 것과는 별개로 지나치게 과장해 까인 점도 과히 없지 않다.

앗짱이 무슨 일만 했다 하면 안티들에게 까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숨만 쉬어도 까이는 내 오시라고 말했던 시절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그룹 재적 시절 싱글은 물론 앨범 자켓과 광고에도 앗짱이 전부 중심이었기 때문에 앗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오지 못하는 타 멤버 팬들의 불만도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 이렇듯 캐릭터적인 면에서나 여러 면모에서 일본에서도 한국 팬에서도 처음 앗짱을 접할 때는 거의 대부분이 예외없이 "왜 쟤가 센터인가요?"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지만 일단 팬이 되면 덕후력 쩌는 반응을 보이게 만드는 확실하고도 신기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볼매.

애초에 그녀는 센터를 처음부터 강력하게 원했던 것도, 자신감을 보였던 것도 아니었다. 데뷔 당시 앗짱이 처음으로 솔로곡인 <渚のCherry>을 부르게 됐을 때 자기 혼자서 노란 옷을 입고 다른 멤버 세 명은 파란 옷을 입고 백을 서서 코러스만 담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혼자서 눈에 띄이는 건 싫어"라고 울었다고 한다. 2시간 동안 문을 잠그고 농성하며 울었다고.[2] 아키P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힘내고 있으니 당신이 필요하다'고 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앗짱은 상황을 순응할 수 있었다. 이 '渚のCherry'는 팀 A의 두번째 오리지널 공연 '会いたかった' 세트리스트에 들어 있는 곡이다. 첫 번째 세트리스트 'PARTYが始まるよ'의 부진을 씻기 위해서 스타가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챈 종합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가 '마에다 아츠코 스타 만들기'를 시작했던 시점. 이 곡 이전까지는 그렇게까지 눈에 띄게 센터로 밀어준다거나 하지 않았었다.

아키모토 야스시는 마에다 아츠코가 센터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3]
아키모토 야스시 : 그래도 나라면 말이지, 마에다 아츠코를 목표로 하지 않아. 이길 수 없는 걸. 비주얼이 사시하라와 마에다 중 어느 쪽이 이기고 지는 게 아니야. 에이스라고 하는 것은 열 명 중 아홉 명을 적으로 돌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없으면 감당해낼 수 없으니까.

사시하라 리노 : 헤에~

아키모토 야스시 : 예를 들면 여기에 초밥이 있단 말이지. 그렇지만 2개밖에 없어. 주위에 선배라든지 나이 많은 멤버들이 많이 있어. 사시하라라면 성게 초밥에 손을 댈 수 있을까?

사시하라 리노 : 댈 수 없어요!

아키모토 야스시 : 오이 초밥 쪽으로 손을 대겠지. 나도 그래. 그런 건 스타성이 없다고. 그렇지만 마에다는 가는거야. "2개밖에 없네"하고 웃으면서 덥석. 사시하라가 먹지 않고 있으면 "성게 싫어했었니?"하고 순진하게 묻는거야. 비꼬는 거든 뭐든 없어. 본심으로 묻는거야. 그러니까 6년간 에이스의 중압을 참아 올 수 있던 것이고 이런 마이페이스의 천성이 사시하라에 없는 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거야.

(사시하라 리노 1st 포토북 <사시코>의 아키모토 야스시와의 대담 中)[4]

본인이 이런 성격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키모토 야스시 개인이 판단한 사실이니 너무 이것만으로 앗짱의 이미지를 확정짓지는 말도록 하자.

3. 안티[편집]

안티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사실 AKB48이라는 그룹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마에다가 그룹의 대표격인 중심의 멤버로써 필요 이상의 욕을 과도하게 먹은 점이 없잖아 존재했다.

안티가 재직 시절 내세웠던 가장 큰 이유는 엄청난 푸쉬를 받는데도 의욕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후술하겠지만 AKB의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는 '아키P는 오시멘이 마에다다'[5]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앗짱은 강력 푸쉬를 받았었다. 그런데 방송에서 졸리니? 라는 질문을 듣기도 했고[6] 대답을 성의 없이 한다던가 하는 의욕 없는 태도를 많이 보인다는 것이 주요 주장이었다.

하지만 사실 재적 후는 물론이고 재적 시절 당시에도 철저하게 금욕적으로 몸매 조절을 하고 수많은 곡들의 센터로서 안무를 소화하고 곡을 외운 사람인데 활동에 의욕이 없을 리가 없다. 오히려 끈기있다 못해 독하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실제로 졸업 이후에도 자신의 영화덕력을 꾸준히 트위터에 어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감독 팬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녀서 영화 일거리를 획득하거나 CM을 꿰차고 있다.[7]

의욕이 없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앗짱의 예능 캐릭터가 기존의 전력투구형 아이돌이 아니라 특유의 마이페이스적인 성격에안티들의 미친 까임과 함께 자연적으로 한 때 생길 수밖에 없었던소극적인 면을 중점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였기 때문인데 일단 앗짱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안티를 깔고 갈 수밖에 없는 그룹의 절대적 센터이자 에이스라는 포지션이었는데 여기에 뭔가 센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런 캐릭터가 안티들에게는 마구 까내리기 좋은 먹이로 보였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그리고 슬픈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재적 시절 당시의 예능을 보면 앗짱이 특유의 마이페이스적인 개그로 웃기는 경우도 꽤 있고 근본적으로 대응은 열심히 한다. 오히려 앗짱의 이런 캐릭터가 수록할 때 의외의 웃음을 만들어낸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그녀 나름의 귀여움으로 팬들도 많이 모은 편이니 결코 예능을 성의 없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성의가 없다는 것. 즉,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코멘트를 하는 게 아니라 왕도적인 코멘트+자신의 기분이나 소감을 넣은 멘트들만 말하게 된 것도 사실 이러한 과도한 안티들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무슨 말을 해도 결국에는 까이고 마는 포지션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최대한 말을 아끼고 그나마 말하더라도 트집잡히지 않을 왕도적인 말만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은 앗짱이 지금 운영중인 트위터에서도 잘 보이는 사실. 트위터는 가볍게 쓸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민이나 가벼운 상황보고는 구경도 하기 힘들고 트위터의 99.9%는 영화 덕질이나 애완동물 이야기, 일 관련해서 남기는 멘트뿐이다. 한때는 셀카 보기도 힘들었다(...) 최근 들어 그나마 사진은 좀 많이 올려주는 추세...였으나 2015년 초, 유료 팬클럽에 한하여 공개되는 블로그를 갱신하며 '시덥잖은 얘기는 블로그를 많이 이용하겠다' 고 했다. 팬들과 눈치보는 일 없이 소통하는 것을 원하는 듯. 그리고 정말로 이후 블로그는 느리지만 꾸준히 갱신되고 있다.

악수회에서의 대응도 까임의 한 이유였다. 어떤 말을 들어도 え、本当ですか?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로 끝낸다며 이 말의 약자인 '에혼아'로 까였었다. 앗짱 귀엽네 →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하고 있어 →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정도라면 별 문제될 게 없지만 오늘은 피곤하지 않아? →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 나 앗짱에서 유코로 응원멤버 바꿨는데 →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와 같이 로봇처럼 대응한다고 디스(...)

사실 악수회는 엄청난 감정노동과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힘든 일이고 이 때문에 에혼아조차 제대로 대응이 안 되는 멤버들도 나오는 중이라 저게 까여야 할 일이었는지는 미묘하다. 스다 아카리오오시마 유코처럼 신급 대응을 보여주는 멤버랑 비교받기도 하는데 사실 쟤네가 비정상적으로 쩌는 거다(...). 또 앗짱의 악수회가 항상 저렇지만은 않았다. 다만 앗짱의 컨디션에 따라서 기복이 조금 있었다는 듯. 예를 들어 앗짱이 컨디션이 좋아서 기분이 좋을 때 가면 일명 '카미대응'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앗짱이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서 기분이 좋지 못할 때 가면 앞에서 서술한 '에혼아'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듯. 전악을 가면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에혼아를 말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2011년 들어서는 에혼아라고 불리우는 행위 자체도 많이 줄었지만 이런 모습은 가뜩이나 앗짱에게만 이어지는 푸쉬를 싫어하는 팬들에게는 미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악수회의 살인적인 힘듦이 재조명되고 악수회 대응이 에혼아를 넘어서 소금대응인 경우도 생기면서 에혼아도 무난하고 좋은 대응이었다고 재조명되고 있다.

사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생활을 오랫동안 이어온 탓에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온 적도 잦았다. 자주 컨디션이 나빠졌고,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 위문공연때는 과호흡증후군이 일어나기도 했다. AKB 다큐멘터리 2탄에서는 세이부돔 백스테이지의 영상이 나왔는데 과호흡발작까지 일으켰다. 물론 세이부돔은 공연장 상태가 열악해 많은 멤버들이 앓아누운 콘서트이기는 하나, 2일차 세이부돔 콘서트에는 리허설 중 과로와 긴장으로 몸살이 심하게 나서 모두가 참석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팀A 원진 직전에야 도착할 수 있었을 정도.

물론 멤버의 발전을 바라는 비판은 어느 정도 있어야 좋은 것임에 당연하다. 하지만 단순히 비판을 넘어 2009년 1회 총선거 때 2위를 발표하기 전 2위가 마에다였으면 좋겠다는 의미의 마에다콜로 대변되기도 하는 그야말로 악성적인 수준의 안티들의 비난행위가 과연 정당한 행위였는지에 대한 것은 의문으로, 이 사건에 대해 앗짱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미움받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말을 했다.# 2011년 3회 총선거에서 한 '저는 싫어해도 AKB는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 그리고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또한 악수회에까지 찾아와 대놓고 1대 1로 앗짱에게 욕을 했던 안티들도 많았다고. 악수회에서 살해위협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

졸업 이후 안티들의 활동이 급격하게 줄면서 앗짱 본인도 팬들의 사랑 속에 원래의 성격을 되찾고 별 무리도 문제도 없이 꾸준히 배우 활동을 해 나가는 것을 보면 당시의 안티들의 활동이 얼마나 악성적이었는지를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당시 기승을 부렸던 안티 사례의 일례로, 2012년 앗짱의 졸업발표 직후에 모 국내 여초사이트에 적힌 '열도의 편애쩌는 아이돌' 이라는 글로 여초 커뮤니티 등지에서 앗짱의 이미지가 그야말로 상상 이상으로 나빠진 일이 있었다. 재능은 하나도 없으면서 소속사의 총애만으로 다른 멤버들의 기회를 빼앗고 센터를 꿰찬 아이(...) 라는 식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 이 글은 라이벌 멤버의 당시 유명 팬 블로그 주인이 쓴 글로(...) 팩트를 가장해 의도를 다분히 내보이는 안티성 글이었다. 현재 원문과 팬 블로그는 삭제된 상태. 그럼 뭐해 이미 똥 다 뿌려놓고 그러나 한일을 막론하고 당시의 안티들이 교묘하게 팩트인 척 위장해놓았던 루머들 탓에 아직도 앗짱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마에다 아츠코는 그런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통탄할 점.

4. 말, 말, 말[편집]

"노래를 마친 마에다는 어두운 인상이었지만 질문을 받았을 때 생긋 웃는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습니다. 그 웃는 모습은 모두를 '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지요. 심사위원들 간에도 '어두운 인상이지만 웃는 얼굴이 굉장하다'라는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 前 AKB48 극장 지배인 토가사키 토모노부
"아츠코가 있었던 당시의 AKB48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척 빛나고 있었고,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돌'을 만들어 준 것은 마에다 아츠코였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그녀는 AKB48에 있어 크나큰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앗짱이 제일 힘들었던 걸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으니까. 센터로 있어줬다는 건 누구보다도 플러스가 되는 것도 있겠지만, 안좋은 것도 전부 떠안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태평하게 신경쓰지 않고 있어줬어. 그래서 AKB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지금 되돌아보면, 역시 마에다상은 대단했구나라고 느낍니다. 제가 같은 포지션에 서 보니, 최근에는 특히 그렇게 생각해요. 이 포지션에 선 사람밖에 알지 못하는 것이 있어요. 제가 예전에 본 마에다상을 되돌아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역시 센터에 선 자로서 '확고한 것'을 가지고 계셨다고 생각해요."

"멤버를 보고 처음에 귀엽다고 생각한 사람은 마에다상. 그 후의 활약을 보고 '역시!'라고 생각했죠(웃음). 마에다상과는 동갑이라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아이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첫 날의 무대가 열렸을 때 내 앞에서 춤추는 앗짱을 보고 충격받았어. 대단해, 눈부셔! 하면서. 이런 세계구나. 아이돌이라거나 스타라는 건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했어. 손님들과 같이 무대 위의 앗짱의 웃는 얼굴에 끌려갔어."

"앗짱은 「나는 센터의 그릇이 아니다」하고 계속 생각하면서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희들이 보면 그녀가 빠진 후에는 「역시, 앗짱은 센터였구나」하고 생각하지요. 앗짱과 이야기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는 진공 같은 존재예요. 제가 무척 빛나기보다는 모두가 저를 둘러싸주고 있어서 그걸로 팀이 되고 있다. 제가 가운데 있는 것으로 모두가 정리돼요」라고 말해준 것. 그녀는 여러가지 생각으로 센터를 맡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군지 사유미
"당시 AKB48은 아직 브레이크하기 전이었습니다. 단지 흥미로 아키하바라의 극장에 놀러갔을 때 가장 눈을 끌었던 건 그녀였습니다. 뭐라고 할까, 같은 스테이지 위에 있는데도 그녀만이 어딘가 다른 장소에 있는 듯이 느껴졌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재미있다고 느껴졌습니다."

- 드라마 PD 무라세 켄
"전혀 의욕 없이 연습하는 아이도 있었고 주변에 있는 아이들의 성적에만 신경쓰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마에다는 탐욕스레 동작을 기억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연습에 임했고, 주위 아이들의 성적같은 것에 전혀 신경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집중력을 보고 「이 아이는 분명 연예계에서 살아갈 수 있어」라고 생각했죠."

- 안무가 나츠 마유미
"너무 바빠서 몸이 안 좋아졌던 시기가 있었잖아? <B.L.T.>에서 AKB를 촬영했을 때 모두에게 점프를 시켰지만 그녀에게만은 의자를 줬어요.「테스트 때는 앉아도 좋아」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자 본방!」이라고 했을 때 의자를 치우고 모두 팟! 점프를 했는데 가장 좋은 얼굴로 웃었다고, 이 사람 (웃음)."

- 사진작가 시노야마 키신
"마에다상은 자기가 가장 빛나겠다는 의도된 반짝반짝함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 반짝임에 끌려들었어요. 엄청 미소짓게 되고 귀여우시지만 갑자기 확 무뚝뚝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인지 단정지을 수가 없으니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져요."

"지금 생각하면 마에다상은 아이돌스러운 귀여운 곡에서도, 멋있는 곡에서도 당연한 듯이 무엇이든 소화하고 있었구나 라고. 어떤 곡이 오더라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정말로 정중앙이 어울렸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11년 여름의 세이부돔에서의 콘서트는 기온이 높아서 컨디션이 무너진 멤버가 많았어요. 마에다상도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게 돼서 저는 급히 언더로 스탠바이하고 있었습니다. 마에다상은 출연하셨지만, 결코 베스트 컨디션이 아닌데도 스테이지에서 그런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센터를 맡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봤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시절의 AKB48란 멤버 한 명 한 명 모두가 개성적이어서 빛났어요. 그 안에서 마에다상은 무색이지만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모두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녀는 당당하게 AKB48의 센터로 서 있었어요. 그 분위기를 저도 언젠가 HKT48에서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약해보이는 여자아이가 무리한 촬영을 견딜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에다는, 주저없이 수조에 머리를 넣거나 배를 입으로 물어서 건져 올리고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필사적으로 코끼리를 돌보고, 물을 싫어하는 것도 관계없이 수영을 하고 열심히, 그리고 필사적으로 방송을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런 마에다가 AKB를 졸업한다고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아주 쓸쓸한 기분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정한 그 결단력이 있다면 어디가서도 멋진 활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에다 아츠코 상! 방송을 이끌어줘서 정말 고마워! 앞으로 주간AKB는 마에다 아츠코 상을 응원하겠습니다. 다음은 연예계의 센터를 목표로 열심히 해주세요!"

- 주간AKB 프로듀서 고토 요시오

5. 활동[편집]

5.1. 2005년 ~ 2006년[편집]

2005년 10월 30일 'AKB48 오프닝멤버 오디션'에 20인[8]의 멤버 중 하나로 최종합격하게 된 이후 팀 A의 센터이자 AKB48의 센터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5.2. 2007년 ~ 2008년[편집]

2007년 4월 28일 영화 <내일의 나를 만드는 방법>에서 하나다 카나코 역할을 맡아 준주연으로 영화에 처음으로 출연하게 된다.

2007년 7월, 같은 멤버 오오시마 유코, 오노 에레나와 함께 오오타 프로덕션에 입사하게 된다.

2007년 10월 후지TV의 드라마 <스완의 바보! 용돈 3만엔의 사랑>에 쿠로다 히나코 역을 맡아서 첫 연속드라마 고정 출연을 달성한다.

2008년 1월 일본의 호러만화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를 영상화한 니혼TV의 드라마 <시오리와 시미코의 괴기 사건부>에서 시미코 역을 통해 첫 드라마 주연을 맡는다.

2008년 6월 영화 <나스 소년기>에 사사하라 메구미 역을 맡아서 출연한다.

2008년 7월 후지TV게츠쿠 드라마 <태양과 바다의 교실>에서는 후나키 마유 역을 맡아 키타가와 케이코와 함께 출연했다.

5.3. 2009년 ~ 2010년[편집]

2009년에 열린 AKB48 제1회 총선거[9]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나이는 17세. 당시 1위를 경쟁하고 있던 동료이자 라이벌 오오시마 유코와 2위 순위 발표를 기다리고 있을 때, 2위에 불리라는 의미에서의 '마에다콜'을 받기도 했다. 수상 소감으로는 "자신의 인생은 AKB48에 바치겠다고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AKB48를 응원해줄 것을 부탁했다. 아래는 소감 전문.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어도 괜찮은 걸까'라고...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해 왔는데요,
저는 AKB48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고 정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러분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서 힘내겠습니다.
저에게 투표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AKB48을 잘 부탁드립니다!

2010년 1월 NHK의 대하드라마 <료마전>에서 주인공 료마의 조카 사카모토 하루이 역으로 출연했다.

2010년 TV도쿄양아치 AKB48 멤버들이 연기하는 드라마 <마지스카 학원>에서 드라마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2010년 4월 5일부터 TOKYO FM에서 <마에다 아츠코의 Heart Songs>라는 5분짜리 레귤러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2017년 12월 들어 종영하기 전까지 약 7년 반을 진행해 온 장수 프로그램.

2010년 AKB48 제2회 총선거에서는 오오시마 유코에게 1인자 자리를 내주었다. 아래는 당시의 소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솔직히 분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있는 스스로가 있습니다.
저는 역시 1위라는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작년에 1위를 불리기 전에 가장 AKB를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울음)
저에게는 제대로 해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팬들 : 그렇지 않아! 울지 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이번에는, 그렇네요. 하지만 역시, 많은 분들이 기대해 주신 것만큼 해내지는 못했는데요,
이번에는 저도 5년차가 되고, 1기생이기 때문에 정말 멤버들을 이끌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올해는 이 순위에서 열심히 해내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혹시 리벤지가 가능하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수 있도록 힘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또 리벤지(의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는 가슴을 펴고 AKB48의 멤버를 이끌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힘내겠습니다.
정말로,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 때 비록 싱글 한 장의 선발을 정하는 의미의 총선거이지만 아키모토 야스시가 1인자는 1년 단위로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기에 AKB48 팬들은 드디어 센터가 바뀌는 거냐고 여러모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키모토 야스시의 처음 발언과는 상반되게도 오오시마 유코가 센터를 맡은 <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다음 싱글인 <Beginner>센터가 또 마에다 아츠코가 되었기 때문에 또 다시 아키모토 야스시의 과도한 푸쉬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중.[10] 사실 총선 결과가 선발 및 센터에 영향을 주는 것은 1년 단위가 아니라 직후 싱글 1번뿐이라는 것. 실제로 가위바위보 선발도 그렇고 총선도 그렇고 1곡의 센터 및 선발을 결정하는 데 쓰이기는 한다. 다만 앗짱의 경우에는 부동의 센터 포지션이었기에 다른 멤버 오시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듯.

2010년 9월 28일. 카스퍼스키의 신제품 'Kaspersky Internet Security 2011'의 CM에서 카스퍼스키 연구소장에 취임했다.

2010년 10월 NTV의 골든타임 드라마 <Q10>에 감독에게 직접 지명되어 주연배우로 나섰다. 남자 주연 배우는 사토 타케루. 이외에도 렌부츠 미사코, 카쿠 켄토, 후일 친한 친구가 되는 타카하타 미츠키, 이케마츠 소스케, 에모토 토키오 등 현재 잘나가는 배우들이 많이 등장했다. 여기에서 앗짱은 'Q10'라는 이름의 로봇 역할을 맡았는데 그 역할로 인해 나온 명대사가 빠흐. 돈자야 빠흐해봐 참고로 이 때 드라마 홍보를 위해 잡지취재를 많이 했는데 무려 26개의 잡지에서 취재를 했다. 여기에 AKB로서 취재한 것까지 합치면 잡지 전체의 30%에 나왔다고 한다. 가히 전국적인 인기.

5.4. 2011년: AKB는 싫어하지 말아주세요[편집]

2011년 6월에 개봉한 영화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의 여주인공이 된다. 원작의 작가는 AKB48의 프로듀싱에도 관여한 바가 있어 원작 여자 캐릭터들의 모티브를 AKB48 멤버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그런데 여주인공의 모델은 다른 멤버인 미네기시 미나미로 알려져 있지만 미나미는 정작 다른 역할을 맡고 마에다 아츠코가 여주인공을 맡은 것은 역시 어른의 사정. 이 영화의 홍보를 위해서 출연한 TV프로그램이 30개 이상, 잡지와 WEB매체는 100개 이상이 되었다. 이 중에서 잡지 표지를 앗짱이 장식한 것은 20개 이상이었다.

2011년에 열린 3회 총선거에서는 대략 1만 6천 표의 차이로 다시 1위가 되었다. 통곡하다시피 울면서 "저를 싫어해도 AKB는 싫어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되었다.[11] 여기는 그 수상소감의 전문.
여러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1년간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매일을 생활해왔습니다.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여러분이 있는데
어딘가에서 고독과 싸우면서, 매일을 지내온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다시 한 번...
많은 분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물론, 저를 싫어하는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제가 싫어도... AKB를 싫어하지는 말아주세요..!
여러분께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저 나름대로 노력해 가겠습니다.
정말로 따뜻하게 지켜봐주신 여러분.
그리고 이렇게 응원해주신 여러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뮤직 스테이션에서 자신의 모습을 VCR로 보고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서 이 행동을 킨타로라는 개그우먼이 이때 앗짱의 울먹이는 목소리와 행동을 흉내내서 크게 히트를 쳤고 이것을 고깝게 본 앗짱의 극성 팬들은 그 개그우먼을 향해 살인위협을 하겠다고 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와 반대로 앗짱 본인은 킨타로의 개그를 상당히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코멘트했고 킨타로가 유행시킨 <フライングゲット>[12]TV프로에서 몸소 시전하기도 했다.(덧글 영상 참조)

참고로 총선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로부터 "마에다상 이번 공약은 뭐죠?"라고 장난기 섞인 질문을 받았는데 마에다 아츠코의 대답은 "죄송한데 공약이란 게 무슨 말이에요?" 바보...

2011년 6월 22일 1st Single<Flower>로 솔로 데뷔를 했다. 초동 판매량은 17.7만장으로 AKB48의 파생유닛과 솔로를 합쳐서도 최고 기록이다. 이 기록은 7년이 지난 2018년 현재까지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기록.

2011년 7월 후지TV의 골든타임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남 파라다이스 2011>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이 드라마의 7일 방송에서 'LITTLE BOY'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나와 논란이 되고 있는데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의 통칭명이 'LITTLE BOY'이고 방송된 7일은 원폭 바로 다음날이기 때문.

2011년 7월 10일 마이니치 방송의 인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정열대륙>에 출연하였다. 그런데 최근의 드라마 촬영현장을 취재한 스탭을 향해 얼굴을 대본으로 가려서 인터넷상에서 두고두고 까이고 있다. 물론 여과없이 본인의 생활을 담는다는 프로그램 특성상 그대로 방송되었다. 사실 얼굴을 가린 이유는 드라마 촬영에 몰입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고, 후에 정열대륙 스탭도 이 사건에 대해 얘기하며 앗짱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류의 코멘트를 남기기도. 이유야 어쨌든 프로그램 스탭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평가도 존재했던 편. 또, 정열대륙에서 앗짱 본인은 자신 스스로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스태프가 어떤 부분이냐고 묻자 전부라고 대답하기도. 내새끼 짠내 봐 #

2011년 8월 25일 오오시마 유코, 장근석과 함께 TBC[13]의 CM을 찍었다.영상 1영상 2

2011년 9월 패션센스가 좋은 덕분에 유니클로(와 다이에)가 런칭한 새 브랜드인 g.u.[14] 모델로 선발되었다.[15]

2011년 9월 20일 'AKB48 24th Single 제2회 가위바위보 대회'에서는 첫 경기에서 아키모토 사야카에게 패배해 지금까지 모든 싱글 곡에서 선발 멤버로 선발되어 왔지만 그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

2011년 11월 19일 라식 수술을 받았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2011년 탤런트 CM 기용사수 랭킹 여성 부문에서 마에다는 17개 사에서 기용되어 2위를 차지했다. [16]

2011년 12월 21일 홍백대항가합전에서 라이브로 마츠이 레나의 솔로곡 <고엽의 스테이션>을 불렀다. 안타깝지만 생방송+라이브여서 몹시 긴장했고 결국 상당히 처참한 무대가 나와버렸다. 박자를 맞추지 못했고 가사까지 약간 틀렸다. 쉴 틈 없이 바빴던 건 물론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연습을 했더라면... 마지막에는 울먹거렸을 정도.

2011년 12월 30일 일본 레코드대상에서 자신의 센터곡 <フライングゲット>로 AKB48이 첫 레코드대상을 타게 되었다. 발표가 나자마자 함께 가장 많은 고생을 견뎌 온 다카하시 미나미, 오오시마 유코와 서로 부여잡고 오열하면서 무대로 올라갔다. 작년에는 아쉽게 달성하지 못했던 레코드대상이었고, 더군다나 본인의 센터곡이라서 감회가 깊었던 듯. 그리고 4년 후 레코대 대상 곡이 뭐였는지 까먹는다

5.5. 2012년: 졸업[편집]

2012년 1월 TBS 테레비의 골든타임 드라마 <최고의 인생을 마감하는 방법 ~엔딩 플래너~>에 주인공 야마시타 토모히사의 여동생 이하라 하루카 역으로 출연하였다. 여기서 인상깊은 투척연기가 화제가 되었다.

2012년 1월 27일부터 장 르노도라에몽으로 나오는 토요타의 CM에서 퉁순이(쟈이코)를 연기하고 있다. 2018년 4월 현재까지도 쟈이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쟈이코는 CM을 통틀어 인기 있는 캐릭터로 손꼽힌다.

AKB48 25th Single <GIVE ME FIVE!>발매 전 앗짱이 노래를 듣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팬들은 '슬픈 노래인가?'라고 생각했으나 발매 후 확인해보니 밴드 풍의 졸업노래. 그리고 몇 달 후 SSA에서 마에다 아츠코가 졸업을 발표했다.


앗짱은 2012년 3월 25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의 콘서트 마지막 날에 졸업을 발표했고, 머지않아 그 예정일도 발표되었다. 도쿄 돔 콘서트가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열리므로 그 다음날인 27일 극장에서 졸업을 한다고. 앗짱의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

사전에 얘기가 있었던 다카하시 미나미와 발표 당일날 사실을 알게 된 시노다 마리코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모양인지 관중은 물론, 모든 멤버는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라이벌이자 친구인 오오시마 유코는 앗짱의 졸업발표를 듣고 눈이 커지더니 끝내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흘렸고 사전에 알고 있었던 다카하시 미나미는 아예 발표 전부터 울먹였다. 다카하시 미나미의 인터뷰에 따르면 도쿄돔 공연 결정을 발표하는 영상이 나오기 직전, 앗짱이 해맑게 웃으면서 "이제 마지막이야~" 라고 말했다고(...).

마에다 아츠코가 졸업을 발표하고 7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앗짱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 아키모토 야스시가 쓴 글이다.
마에다 아츠코가 졸업을 발표했습니다.
몇번이고 상담해왔기 때문에, 물론, 말렸습니다만 '최종적으로 자신이 결정해라'라고 얘기했습니다.
만약, 발표한다면 SSA의 최종일이라는 얘기는 했습니다.
구성적으로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끝난 다음의 MC겠죠.
마에다가 가슴에 손을 얹고, 침착해지려고 하는 것을 본 순간, "발표할 작정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에다 아츠코는 자신에게 엄격합니다.
얼버부리는 관계가 싫어서 자신을 몰아넣습니다.
고독합니다.
자신에게 초조해하는 것이, 때로는 "기분이 좋지 않은 것"으로 오인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에게 신경써주는 것도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이대로 AKB의 편안한 환경에 있다가, 점점 제멋대로 되어가는 자신이 무서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굳이 엄격한 세계에 나아가려고 생각했겠지요.

그런 서투른 마에다를 6년 반이나 센터에 지명해버렸기 때문에 , 이제 마에다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일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모두 마에다의 졸업을 축하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했구나.
수고했어.

2012년 4월 13일 '제21회 일본 영화 비평가 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2년 4월 27일부터 후지TV의 'AKB 자동차부'에서 운전면허 취득에 도전했으며 1종 면허 취득에 성공했다. 다만 장롱면허가 되어버렸다

2012년 5월 23일 앗짱이 AKB48 현역 멤버로서 마지막으로 참가한 싱글 <真夏のSounds good!>이 발매되었다.

2012년 6월 20일 2nd Single <너는 나다>를 발매. 당시 주간 오리콘 차트 2위를 했고 곡이 좋았기 때문에 2016년 현재까지도 후배 기수의 멤버들에게도 자주 불리고는 하는 곡이다.

2012년 상반기 여자연예인 CM 기용사수 랭킹에서 17사에 채용되어 1위를 차지했다.

2012년 7월 사쿠라이 야스코 역으로 출연한 영화 <고역열차>가 개봉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촬영으로 인해 앗짱은 졸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2012년 8월 24일에서 26일에 걸쳐 도쿄돔 콘서트를 치뤘다. '1830m의 꿈'으로 명명된 이 도쿄돔 콘서트 마지막 날에 졸업곡을 부른 이후, 앗짱은 눈물을 흘리며 도쿄돔을 한 바퀴 돌았고 AKB48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아래는 졸업곡 '꿈의 강' 의상을 입고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앗짱.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mheu9xhHIA1rv4ntqo1_500.gif
"AKB48는 제 청춘의 전부였습니다."

앗짱은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도전을 찾아 팀을 떠나지만, 한편으론 앞뒤가 다 막힌 후배 멤버들에게 자진해서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본인이 후배들을 위해서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고 말한 적도 있고. 어쨌거나 앗짱의 졸업은 이후, 1기생들을 비롯한 고참 멤버들의 잇단 졸업 러쉬를 여는 기폭제가 됨으로서 2막을 연다는 의미의 세대 교체에 기여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2016년 4월 다카하시 미나미가 졸업함으로서 세대 교체는 그런 대로 마무리가 된 셈.

2012년 8월 27일에 있는 마에다 아츠코 졸업공연의 경쟁률이 발표되었는데 경쟁률은 극장 공연 사상 최고의 916.38배. 2005년 극장공연 첫날 관람자의 3만 배 이상에 해당하는 22만 9096건의 응모가 있었다. 여담으로 이 날의 기록은 6년이 지난 2018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듯 하다. 가히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예상을 넘는 응모 수에 추첨에 탈락한 팬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직접 인사만이라도 하고 싶다' 라는 본인의 희망으로 극장 뒤의 거리에서 차량으로 길가의 팬에게 마지막 인사를 실시하고 나서 극장으로 들어간다고 한다고 했다가 결국 주위 주민의 반대로 인해 이는 무산되었고 졸업공연은 후지TV Hey×3, YouTube, Google+ 등지에서 생중계되었다.

파일:external/49.media.tumblr.com/tumblr_madbpzrxvd1rv4ntqo1_500.gif

그리고 2012년 8월 27일 오후 8시 56분, 아키하바라의 극장에서 마에다 아츠코가 AKB48을 졸업했다.

6. 참여곡[편집]

6.1. 선발 참여곡[편집]

AKB48
NO
커버
싱글명 / 발매일
0
0
1
会いたかった
W 센터
2006. 10. 25
2
制服が邪魔をする
W 센터
2007. 1. 31
3
軽蔑していた愛情
W 센터
2007. 4. 18
4
BINGO!
W 센터
2007. 7. 18
5
僕の太陽
센터
2007. 8. 8
6
夕陽を見ているか?
W 센터
2007. 10. 31
7
ロマンス、イラネ
W 센터
2008. 1. 23
8
桜の花びらたち2008
센터
2008. 2. 27
9
Baby! Baby! Baby!
센터
2008. 6. 13
10
大声ダイヤモンド
W 센터
2008. 10. 22
11
10年桜
W 센터
2009. 3. 4
12
涙サプライズ!
센터
2009. 6. 24
13
言い訳Maybe
센터
2009. 8. 26
14
RIVER
W 센터
2009. 10. 21
15
桜の栞
W 센터
2010. 2. 17
16
17
18
Beginner
센터
2010. 10. 27
19
20
桜の木になろう
센터
2011. 2. 16
21
22
フライングゲット
센터
2011. 8. 24
23
風は吹いている
W 센터
2011. 10. 26
25
GIVE ME FIVE!
센터
2012. 2. 15
26
真夏のSounds good!
센터
2012. 5. 23
43

6.2. 참여곡[편집]

#EA5783 센터곡·솔로곡
AKB48 - 싱글
NO
커버
싱글명 / 발매일
곡명
0
Dear my teacher
0
青空のそばにいて
1
会いたかった
2006. 10. 25
だけど…
3
涙売りの少女
4
BINGO!
2007. 7. 18
Only today
5
僕の太陽
2007. 8. 8
未来の果実
6
ビバ!ハリケーン
夕陽を見ているか? (ひまわり2.0Mix)
7
愛の毛布
ロマンス、イラネ (ひまわり 2nd 2.1 Mix)
8
最後の制服
9
夢を死なせるわけにいかない
10
109 (マルキュー)
大声ダイヤモンド (Team A Ver.)
11
10年桜
2009. 3. 4
桜色の空の下で
15
桜の栞
2010. 2. 17
マジスカロックンロール
16
マジジョテッペンブルース
17
野菜シスターズ
ラッキーセブン
18
Beginner
2010. 10. 27
君について
19
予約したクリスマス
胡桃とダイアローグ
20
キスまで100マイル
21
これからWonderland
ヤンキーソウル
22
青春と気づかないまま
アイスのくちづけ
野菜占い
24
ノエルの夜
隣人は傷つかない
25
GIVE ME FIVE!
2012. 2. 15
スイート&ビター
26
ちょうだい、ダーリン!
27
夢の河
AKB48 - 앨범
NO
커버
앨범명 / 발매일
곡명
1
Seventeen
2
神曲たち
2010. 4. 7
Baby! Baby! Baby! Baby!
君と虹と太陽と
3
少女たちよ
Overtake

君と僕の関係
ここにいたこと
4
1830m
2012. 8. 15
ファースト・ラビット
Hate
思い出のほとんど
大事な時間
ぐ〜ぐ〜おなか

行ってらっしゃい
青空よ 寂しくないか?
桜の花びら(Solo Ver.)

7. 역대 프로필 사진[편집]

8. 총선거 포스터[편집]


[1] 사실 힘찬 춤 스타일인 일명 탈골댄스이라는 정 반대의 스타일이라는 비교하기에 좋은 춤 스타일이 그룹 내에 존재했기 때문에 앗짱의 위치상 까임의 빌미 중 하나였을 뿐 사실 특유의 살랑살랑하면서도 그루브한 춤선을 그대로 살리고 골반사용률도 뛰어난 여성적인 춤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춤 스타일에는 탈골댄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부분은 명백히 취향의 영역. 그리고 애초에 앗짱이 처음 센터에 서게 된 이유는 "댄스의 선이 예쁘다"는 이유로 나츠 마유미 안무가가 추천했기 때문이었고, 원래 팀 결성 직후 센터는 다카하시 미나미였다. [2] 참고로 이 때 코러스로 참가하였던 미네기시 미나미는 자신의 파트가 코러스+솔로댄스 밖에 없다는 사실에 좌절해서 울었다. 둘이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3] 번역 출처 : AKB48 한국 팬클럽 포티에잇월드.[4] 이 오이초밥/성게초밥 아날로지는 <사시코> 제작과 비슷한 시기에 촬영한 카시와기 유키 주연의 드라마 '미에리노 카시와기'에도 등장한다.[5] 모든 멤버들에게 공정해야 하는 프로듀서가 앗짱만 푸쉬해준다는 뜻. 그 외에도 많다. '아키P는 쥬리나오시다.'라는 등 광푸쉬를 받는 멤버들이 생기면 꼭 저 얘기가 나온다.[6] 톤네루즈 쿠와즈기라이에 출연했을 때 이시바시 타카아키가 대놓고 "마에다짱, 자니?"라고 묻기도 했다. 다만 자니? 라고 물어본 것은 디스의 성격이라기보다는 농담의 성격이 강하게 들어간, 앗짱의 캐릭터를 살려주기 위한 일종의 네타성 개그였다. 실제로도 여러 번 반복되며 웃음의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7]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팬이라고 홍보하고 다니더니 고역열차에 캐스팅됐다. 이 인연이 꾸준히 이어져 현재 스페셜드라마화되기도 한 CM 타마코 시리즈에서도 공연 중이다. 트위터에서 영화 레미제라블에 대한 엄청난 덕력을 선보이며 4번이나 봤다고 쓰더니 기어이 레미제라블 DVD&블루레이 CM을 따내고야 만다. 다섯 번째 봐도 운다는 앗짱이 포인트.[8] 후에 시노다 마리코가 추가합격함으로서 21명이 된다.[9] 이때부터 매해 시행되고 있으며 인기 순위 상관 없이 밀어주는 멤버만 앞에 세우는 방식을 팬들이 비판하자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가 '그렇다면 니들이 좋아하는 오시들 선발 만들어봐라'란 의미로 시행. 요즘엔 쏠쏠한 돈줄이 되기에 계속 시행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총선거는 멤버들 모두 파워는 있는데 쪽수가 많은 쪽이 더 많은 파워를 갖고 1인1표제가 시행되지 않으며 선거권을 주식과 같이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총선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주주총회와 비슷하다.[10] 다른 멤버 팬들도 역시 분노하고 있다. 특히 성적에 비해 아키P에게 좋은 대접을 못 받는 멤버의 팬들의 불만이 크다.[11] 코지마 하루나는 이 발언을 미남이시네요 제작 발표회에서 디스 패러디했다. "저는 싫어해도 '미남이시네요'는 싫어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왠지 역할하고 잘 맞는다[12] AKB48의 싱글인 <フライングゲット>에서 따온 모노마네로 마에다 아츠코의 해당 파트를 상당히 희화화시켰다.[13] 일본에서 에스테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일본의 美'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덧붙여 영상 2에서의 장근석 씬은 한국의 인사동에서 촬영한 것이다.[14] 일본어 독음으로는 '자유'라는 의미[15] 다만 2012년 진행되고 있는 하루야마×AKB48 남성복 프로모션에는 타 의류 브랜드 광고 출연을 금지한 계약관계상 참석하지 못했는데 일본에는 동일분야의 겹치기 출연을 금기시하는 문화상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토요카도 의류 광고에 출연하고 있는 이타노 토모미도 같은 이유로 하루야마 프로모션에 참여하지 못했다.[16] 1위는 오오시마 유코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