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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룩셈부르크에서 1854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한 통화이다. 역사적인 이유로 벨기에 프랑과 1:1 통화교류를 맺고 있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벨기에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금융강국인 룩셈부르크라도 물량에서 벨기에에게 전적으로 밀리다보니 벨기에에선 그냥 아오안 취급(...)했다고. 도토리 키재기라는건 둘째치고 반대로 벨기에 프랑을 룩셈부르크에서 받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ISO 4217코드는 LUF, 환율은 40.3399프랑/EUR (약 32~33원/프랑), 보조단위로 상팀=센트가 있었지만 보통 1프랑이 최소 거래단위이고 동전은 1, 5, 10, 20, 50 프랑이 출시되었다.
2. 도입 이전[편집]
나폴레옹 정권때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한데 묶어서 취급했었기 때문에 1839년에 벨기에 프랑이 유입되었다가 1842년 독일과의 관세동맹때문에 프로이센 탈러가 유입되며 교체되었었다. 그러다 동맹이 끊긴 1848년에 다시 벨기에 프랑이 도입되었고, 1854년에 통화독립한 후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로 하여금 라틴통화동맹을 결성하였다. 1921년 프랑스 본국의 문제로 동맹이 와해되었으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와의 관계는 여전하여 별도로 맺은 벨기에-룩셈부르크 통화동맹을 계기로 1932년에는 경제동맹까지 맺어 2002년까지 이어졌다. 다만 1941년부터 1944년까지는 독일제국에게 점령당해서 독일제국 마르크를 사용했었다.
3. Grand-Duché de Luxembourg (유로화 이전 구권)[편집]
국립중앙은행 발행권 | |||
10Fr | 20Fr | 50Fr | 100Fr |
샤를로테 다리 (구 시가지와 유럽광장 방면을 잇는 붉은색 다리) | 모셀르 강의 댐 | 철강소 직원들 (금융업이 발전하기 전에는 철강업으로 발전했었다.) | 아돌프 다리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를 잇는 유서깊은 다리) |
4. Institut Monétaire Luxembourgeois (IML)[편집]
"룩셈부르크 통화연구소"라는 뜻이며 국립중앙은행의 기관으로서 1983년 개관하였다. 하지만 3종류의 통화를 발행한...게 사실상 업적의 전부가 되고 말았다.
최종권 | ||
100Fr | 1,000Fr | 5,000Fr |
성곽의 모습이 살아있는 옛날 룩셈부르크 | 룩셈부르크 시티 구시가지 내의 건물들 | 17세기 룩셈부르크의 지도와 유럽광장(룩셈부르크시티 신시가지)의 건물들 |
- 앞면은 모두 쟝 대공(Grand Duke Jea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