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브란트는 타이핑 속기교육을 받으며 법학을 공부했다. 이후 독일 내무성에서 근무하다가
1932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해에
나치당에 가입한 그는
1933년부터 친위대에 들어가
12월에
카를 볼프의 친위대 전국지도자 개인참모부에서 근무하며 패전까지
하인리히 힘러의 측근으로 일했다.
1930년 말기에 브란트는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비서가 되어 힘러와 내무성 사이를 연결하는 연락장교가 되었다.
1943년부터 힘러가 내무성의 장관이 되자 힘러의 조언자로도 일했는데 브란트는
강제수용소에서 실시된 친위대 의사에 의한
인체실험의 조사와 관리를 담당했다. 그는 아우구스트 힐트 박사의 인종별 두개골 샘플취득을 위해 86명의
유대인을 살해하는 것에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