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로베르튀스 율리아뉘스 라모트 (Robertus Julianus Lamoot)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오스텐더[1]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77cm / 74kg |
소속팀 | KV 오스텐더 (1928-1933) 로열 다링 클럽 몰렌베이크 (1933-1938) 루아얄 올랭피크 클뢰브 드샤를루아 (1938-1947) US 상트레 에느상피에르 (1947-1949) |
국가대표 | 7경기 / 2골 (1933-1939) |
1. 생애[2][편집]
1.1. 선수 생활[편집]
1.1.1. 클럽[편집]
1929년, 라모트는 고향팀 KV 오스텐더(Ostend)에서 데뷔했고 팀은 그 해에 2부 리그로 승격했다. 라모트는 팀에서 곧 자리를 잡았지만 오스텐더는 다시 3부 리그로 떨어졌다가 2부 리그로 올라가는 승격과 강등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라모트는 1933년, 로열 다링 클럽 몰렌베이크(Royal Daring Club Molenbeek)로 10만 벨기에 프랑에 이적했고 몰렌베이크에서도 곧 주전 자리를 꿰찼다. 라모트는 몰렌베이크 데뷔 시즌에 24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 2위에 올랐고 소속팀 역시 준우승을 거뒀다.
당시 벨기에 리그에서는 루아얄 위니옹 생질루아즈(Royale Union Saint-Gilloise)가 60경기 무패 행진을 벌이며 리그 3연패를 거두고 있었는데 그 무패 행진을 깬 팀이 라모트의 몰렌베이크였다. 그리고 생질루아즈의 무패 행진이 종료된 이후 몰렌베이크는 리그 우승 2회, 컵대회 우승 1회의 성적을 냈다.
1938년, 라모트는 로열르 올랭피크 클뢰브드샤를루아(Royale Olympic Club-de-Charleroi)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그 곳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지만 전쟁이 앞을 가로막았다. 전쟁이 끝난 후 샤를루아는 1946-47 시즌에 클럽 역사상 최고 성적인 1부 리그 2위의 성적을 냈는데 이것이 라모트의 마지막 1부 리그 기록이다. 그는 1부 리그에서 총 209경기 출전, 77골을 기록했다.
1947년, 36살의 라모트는 3부 리그 소속인 US 상트레 에느상피에르(US Centre Haine-Saint-Pierre)에서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냈다. 라모트는 1947-48 시즌에 에느상피에르를 2부 리그에 올려놓았고 1949년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러다 라모트는 1933년, 로열 다링 클럽 몰렌베이크(Royal Daring Club Molenbeek)로 10만 벨기에 프랑에 이적했고 몰렌베이크에서도 곧 주전 자리를 꿰찼다. 라모트는 몰렌베이크 데뷔 시즌에 24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 2위에 올랐고 소속팀 역시 준우승을 거뒀다.
당시 벨기에 리그에서는 루아얄 위니옹 생질루아즈(Royale Union Saint-Gilloise)가 60경기 무패 행진을 벌이며 리그 3연패를 거두고 있었는데 그 무패 행진을 깬 팀이 라모트의 몰렌베이크였다. 그리고 생질루아즈의 무패 행진이 종료된 이후 몰렌베이크는 리그 우승 2회, 컵대회 우승 1회의 성적을 냈다.
1938년, 라모트는 로열르 올랭피크 클뢰브드샤를루아(Royale Olympic Club-de-Charleroi)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그 곳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지만 전쟁이 앞을 가로막았다. 전쟁이 끝난 후 샤를루아는 1946-47 시즌에 클럽 역사상 최고 성적인 1부 리그 2위의 성적을 냈는데 이것이 라모트의 마지막 1부 리그 기록이다. 그는 1부 리그에서 총 209경기 출전, 77골을 기록했다.
1947년, 36살의 라모트는 3부 리그 소속인 US 상트레 에느상피에르(US Centre Haine-Saint-Pierre)에서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냈다. 라모트는 1947-48 시즌에 에느상피에르를 2부 리그에 올려놓았고 1949년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1.1.2. 국가대표[편집]
라모트는 1933년부터 1939년까지 벨기에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라모트의 데뷔전 상대는 독일이었는데 뒤스부르크 원정 경기에서 벨기에는 1대8로 깨박살이 났다. 그나마 라모트의 골로 영패를 면한 게 위안이었다.
그 이후 라모트는 1936년 5월까지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월드컵이 있었지만 라모트는 대회 참가에만 의의를 둬야 했다.
1936년 5월의 3경기와 1937년 4월의 독일전 이후로 대표팀 출전을 못한 라모트는 1939년 5월에서야 다시 경기를 뛸 수 있었다. 라모트는 5월 18일, 프랑스에 1골을 넣었지만 벨기에는 1대3으로 패했고 5월 27일에 3대3으로 비긴 폴란드전이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그 이후 라모트는 1936년 5월까지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월드컵이 있었지만 라모트는 대회 참가에만 의의를 둬야 했다.
1936년 5월의 3경기와 1937년 4월의 독일전 이후로 대표팀 출전을 못한 라모트는 1939년 5월에서야 다시 경기를 뛸 수 있었다. 라모트는 5월 18일, 프랑스에 1골을 넣었지만 벨기에는 1대3으로 패했고 5월 27일에 3대3으로 비긴 폴란드전이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