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1948년 10월 11일 미시시피 토니 스타크빌(Starkville)에서 출생, 미시시피 애커먼에서 동네 철물점 주인의 외아들로 자랐다. 동네 공립 고등학교를 상위 5% 우등생으로 졸업한 뒤 미시시피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을 상위 10% 우등생으로 졸업하며 법무박사(JD) 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 미합중국 해군에 입대하여 함정병과 장교로 미 해군 순양함 USS 리틀 록 (CLG-4)함에서 근무한 후 1972년 해군 중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에는 미 제5연방항소법원에서 인턴쉽으로 법원 행정사무직 근무를 하기도 했다.
메이버스는 미 워싱턴DC에 있는 미합중국 국회 농업위원회 법률자문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그의 고향인 미시시피에서 미국 민주당의 윌리엄 윈터가 주지사로 당선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주지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1983년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미시시피 주 감사원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84년부터 1988년까지 감사원장을 역임하며, 공금횡령과 허위지출을 수사하는 미 연방수사국(FBI) 작전에 공조 수사를 하기도 했다. FBI 작전 결과 25개 카운티에서 57명의 관리자들이 적발되었으며 그 중 2명은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87년 그가 39세가 되었을 때 미시시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53%의 득표율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선거가 가난한 백인과 여피의 선거구도였음에도 백인 유권자의 30%만 그를 지지하였고, 전체 유권자의 30%에 불과한 흑인층이 압도적으로 그를 지지하여 당선될 수 있었다. 주지사 재직 중 그는 학교 교사들을 위해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봉급인상률로 처우를 개선하는 등 교육문제에 집중하여, 미국 경제지 포춘지가 선정한 10명의 교육 주지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88~1992년까지 그가 주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미시시피 주는 새로운 일자리가 꾸준히 증가했고, 투자와 관광수지, 수출이 증가했다. 그의 성공적인 행정에 힘입어 그가 미시시피 주에서는 100년만에 첫 재임 주지사가 될거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1991년 선거에서 48% 득표에 그치는 바람에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였다.
1994년에는 빌 클린턴 미합중국 대통령이 그를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로 지명했다.[1] 재임기간 중인 1994년 예멘 내전으로 인한 사우디 국경위기와 1994년 이라크 위기사태를 맞았다. 1995년에는 6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사관에 차량폭탄 테레공격을 수습하기도 했으며, 아동유괴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와 미국 기업(보잉 및 AT&T) 사이에서 160억달러 이상의 계약 체결을 돕기도 했다. 미시시피에 대한 애착이 있었는지 대사 관저와 집무실 탁자를 미시시피 전화번호부로 장식하거나 벽면을 미국 국기와 미시시피 주기로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한동안은 정계에서 일하지 않고, 대신 기업 쪽에서 일했다. 2006년~2007.4월까지 그는 Foamex International사의 회장 겸 CEO로 재직하며 회사를 파산으로부터 구해냈으나 CEO 취임 9개월만에 결국은 파산하고 말았다. 2007.8월 그는 세계 최대의 산업용 건전지 유통 제조업체인 에너시스사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메이버스는 미 워싱턴DC에 있는 미합중국 국회 농업위원회 법률자문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그의 고향인 미시시피에서 미국 민주당의 윌리엄 윈터가 주지사로 당선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주지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1983년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미시시피 주 감사원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84년부터 1988년까지 감사원장을 역임하며, 공금횡령과 허위지출을 수사하는 미 연방수사국(FBI) 작전에 공조 수사를 하기도 했다. FBI 작전 결과 25개 카운티에서 57명의 관리자들이 적발되었으며 그 중 2명은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87년 그가 39세가 되었을 때 미시시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53%의 득표율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선거가 가난한 백인과 여피의 선거구도였음에도 백인 유권자의 30%만 그를 지지하였고, 전체 유권자의 30%에 불과한 흑인층이 압도적으로 그를 지지하여 당선될 수 있었다. 주지사 재직 중 그는 학교 교사들을 위해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봉급인상률로 처우를 개선하는 등 교육문제에 집중하여, 미국 경제지 포춘지가 선정한 10명의 교육 주지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88~1992년까지 그가 주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미시시피 주는 새로운 일자리가 꾸준히 증가했고, 투자와 관광수지, 수출이 증가했다. 그의 성공적인 행정에 힘입어 그가 미시시피 주에서는 100년만에 첫 재임 주지사가 될거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1991년 선거에서 48% 득표에 그치는 바람에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였다.
1994년에는 빌 클린턴 미합중국 대통령이 그를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로 지명했다.[1] 재임기간 중인 1994년 예멘 내전으로 인한 사우디 국경위기와 1994년 이라크 위기사태를 맞았다. 1995년에는 6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사관에 차량폭탄 테레공격을 수습하기도 했으며, 아동유괴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와 미국 기업(보잉 및 AT&T) 사이에서 160억달러 이상의 계약 체결을 돕기도 했다. 미시시피에 대한 애착이 있었는지 대사 관저와 집무실 탁자를 미시시피 전화번호부로 장식하거나 벽면을 미국 국기와 미시시피 주기로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한동안은 정계에서 일하지 않고, 대신 기업 쪽에서 일했다. 2006년~2007.4월까지 그는 Foamex International사의 회장 겸 CEO로 재직하며 회사를 파산으로부터 구해냈으나 CEO 취임 9개월만에 결국은 파산하고 말았다. 2007.8월 그는 세계 최대의 산업용 건전지 유통 제조업체인 에너시스사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1] 여담으로 아랍권과 관련된 공부나 경험은 없지만 미국에서 대사는 대통령이 자기 측근들에게 여러 정치적 경험을 쌓게 해주는 커리어패스나 보은인사로 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