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카인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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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9대 황제
同慶
동카인 | Dong Khanh
묘호
경종(景宗)
시호
배천명운효덕인무위공홍렬총통철민혜황제
(配天明運孝德仁武偉功弘烈總統哲敏惠皇帝)[1]
능호
사릉(思陵)
연호
동카인(同慶/동경)
성씨
응우옌(Nguyễn, 阮/완)
푹비엔(Phúc Biện, 福昪/복변)
생몰기간
재위기간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제9대 황제. 묘호는 경종(景宗), 시호는 순황제(純皇帝). 이름은 즉위 전에는 완복응시(阮福膺豉)이었으나, 즉위 후에는 완복변으로 고쳤다. 소치제의 손자이자, 순의견태왕(純毅堅太王) 완복홍해(阮福洪侅)의 아들. 재위기간 동안 사용했던 연호는 동카인(同慶/동경).

2. 생애[편집]

1885년, 동생인 함의제궁궐을 탈출하자, 프랑스에 의해서 즉시 옹립되어 황제로 즉위하였다. 프랑스는 동경제의 이름으로 무위신호(撫慰紳豪)를 발표하고, 함의제의 망명을 불법화시킨 후에 동조자들을 역적으로 몰았으나, 투항하는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었다. [2][3]

1889년, 동경제는 재위 4년만에 사망하였다. 아들로는 후에 계정제로 즉위하는 완복창이 있었으나, 완복창의 나이가 어려서 조카뻘인 성태제가 제위를 이었다.

[1] 통칭 순황제.[2] 프랑스는 함의제와 함께 반불운동에 나섰던 똔텃투옛 및 응우옌반뜨엉을 급히 체포하여 먼저 꼰다오 제도로 유배보냈고 끝까지 저항하던 똔텃투옛의 두 아들들은 프랑스에의해 즉결사형에 쳐해졌다. 이후 똔텃투옛은 청나라 광시성으로 추방당했고 응우옌반뜨엉은 프랑스에의해 프랑스령 타히티 제도로 유배당한다.[3] 똔텃투옛과 응우옌반뜨엉이 이때 새로이 내각이 생긴 베트남조정에 의하여 대역죄인으로 찍혔는데 프랑스의 압박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저 대신들이 2명의 황제(죽득황제,히엡호아 황제)를 맘대로 죽이고 황위를 갈아치우고 한 꼴을 보면 황실입장에서는 당연히 대역죄인이기도 하고 뜨득황제의 왕비와 간통하는 등 막장 세도정치를 펼치고있었다. 2명의 대신들이 반불독립운동가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실을 기만한 권신이라는점에서 현대 베트남 사학계에서 그렇게 좋은평가를 받지는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