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편집]
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4. 2차대전 전후[편집]
5. 현대[편집]
5.1. 독일 사회[편집]
5.2. 2010년대 중반 외교적 갈등[편집]
민간사이에서는 흔한 외국인 노동자 문제로 인한 사회갈등에 그치고 있었으나, 정치 및 외교에서도 삐걱대는 조짐이 2010년대 들어서 늘어났다. 2016년에 들어서면서 에르도안을 풍자한 코미디언이 터키 정부로부터 고소당하는 등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메르켈 총리는 터키의 EU 가입 협상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고,# 터키가 개헌을 하는 과정에서 언론탄압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뒤 터키군인, 외교관, 가족들이 독일로 망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터키에서 독일 특파원이 체포되고,# 양국간에도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이 터키 개헌지지집회를 불허한 것에 대해서도 항의했고,# 에르도안은 독일의 집회불허방침에 대해 독일을 나치라고 비유하면서 논란을 빚었고 갈등이 있었다가 에르도안이 나치발언에 일축하며 냉정을 유지하자고 밝혔다.# 하지만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측에서는 단교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독일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터키에게 레드라인을 넘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고,# 3월 18일에는 유럽과의 외교갈등으로 터키의 EU가입이 멀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메르켈 총리도 네덜란드에 지지와 연대의사를 밝혔다.# 그러다가 터키측이 독일과 갈등을 겪자 독일내 개헌찬성집회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터키가 대통령제 개헌 통과 이후, 독일에서 터키의 사형제부활투표를 실행하려고 하자 독일측을 불허했다.#
근데 터키가 독일 정치인들을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일어나면서 독일 정치권에서는 반발했다.# 게다가 독일측은 터키의 독일군 기지를 다른 기지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의 국회의원들의 터키방문을 터키측이 불허하면서 메르켈 총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했고 터키의 독일군기지를 이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7년 4월 17일에 터키가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투표가 통과되자 메르켈 총리는 반대파를 존중하며 대화한다고 발언했다.# 2017년 6월 5일에 독일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터키를 방문하면서 양국간의 갈등을 봉합시도하기 위해 터키의 메블뤼트 차우쇼울루 장관과 회담을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독일은 터키의 독일군철수를 결정하고 요르단으로 군기지를 옮겼다.## 게다가 터키에서 독일의 인권운동가가 체포되는 사건가 발생되자 독일측이 반발했다.# 결국 독일은 터키와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터키의 여행경보단계를 상향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독일에 망명을 신청중인 터키군인들과 터키에 억류된 독일 기자를 맞바꾸자는 것을 둘러싸고 독일과 터키측은 진실공방을 벌였다.#
2017년 8월 18일에 에르도안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선 독일내 터키계 유권자들이 메르켈과 슐츠에게 표를 줘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독일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계 터키인 작가인 도안 아칸리를 테러혐의로 인터폴에 요청하고 스페인 정부가 체포했다가 가석방한 사건으로 독일과 갈등이 생겼고,## 독일의 가브리엘 장관의 부인이 설전을 벌이자 에르도안이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국적자 2명이 터키에서 체포되자 독일은 터키를 규탄했고 메르켈 총리는 터키에 대한 정책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터키를 제재할 수 있다는 발언도 시사했다.#
터키군이 이프린 작전을 펼치면서 시리아내 쿠르드족들을 공격할때 독일제 전차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독일의 정치인들은 터키로 무기수출중단을 촉구했다.# 거기에다 독일과 터키는 외교갈등을 겪고 있음에도 독일은 터키측에 무기판매를 계속했다.# 2018년 5월 26일에 독일이 쿠르드 정당의 집회를 허용하자 터키측은 반발했다.# 그리고 터키측은 독일영사관 부속 학교를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2018년 6월 24일에 터키에서 총선이 있었는데, 독일내 터키계 3분의 2가 에르도안에 몰표를 줬다.# 그리고 독일내에서 터키계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는 외질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밝히는 등 터키계를 포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터키가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자 다시 훈풍을 타고 있다.# 그리고 터키 정부는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린 터키계 독일인 언론인을 독일로 돌아가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2018년 9월 27일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했지만, 독일에서는 인권문제를 두고 시위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9월 28일에 회담을 가졌지만, 양측은 협력만 강조했고 서로 양보를 거부했다.#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공화인민당 후보가 재선거결정으로 시장자리에 물러난 사태를 두고 독일측은 비판했다.# 또한, 2019년 10월에 터키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을 공격하자 독일측은 터키를 비판했고 다른 EU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로의 무기수출을 중단했다.# 폭스바겐도 터키에 공장을 지을려고 했던 것을 보류했다.#
2020년 11월 22일에 독일 프리깃함 한 척이 지중해에서 리비아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를 시행한다며 터키 화물선에 대해 강제 수색을 실시하고 터키가 불법적인 수색이라고 반발하면서 11월 23일에 터키와 독일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뒤 터키군인, 외교관, 가족들이 독일로 망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터키에서 독일 특파원이 체포되고,# 양국간에도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이 터키 개헌지지집회를 불허한 것에 대해서도 항의했고,# 에르도안은 독일의 집회불허방침에 대해 독일을 나치라고 비유하면서 논란을 빚었고 갈등이 있었다가 에르도안이 나치발언에 일축하며 냉정을 유지하자고 밝혔다.# 하지만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측에서는 단교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독일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터키에게 레드라인을 넘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고,# 3월 18일에는 유럽과의 외교갈등으로 터키의 EU가입이 멀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메르켈 총리도 네덜란드에 지지와 연대의사를 밝혔다.# 그러다가 터키측이 독일과 갈등을 겪자 독일내 개헌찬성집회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터키가 대통령제 개헌 통과 이후, 독일에서 터키의 사형제부활투표를 실행하려고 하자 독일측을 불허했다.#
근데 터키가 독일 정치인들을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일어나면서 독일 정치권에서는 반발했다.# 게다가 독일측은 터키의 독일군 기지를 다른 기지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의 국회의원들의 터키방문을 터키측이 불허하면서 메르켈 총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했고 터키의 독일군기지를 이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7년 4월 17일에 터키가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투표가 통과되자 메르켈 총리는 반대파를 존중하며 대화한다고 발언했다.# 2017년 6월 5일에 독일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터키를 방문하면서 양국간의 갈등을 봉합시도하기 위해 터키의 메블뤼트 차우쇼울루 장관과 회담을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독일은 터키의 독일군철수를 결정하고 요르단으로 군기지를 옮겼다.## 게다가 터키에서 독일의 인권운동가가 체포되는 사건가 발생되자 독일측이 반발했다.# 결국 독일은 터키와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터키의 여행경보단계를 상향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독일에 망명을 신청중인 터키군인들과 터키에 억류된 독일 기자를 맞바꾸자는 것을 둘러싸고 독일과 터키측은 진실공방을 벌였다.#
2017년 8월 18일에 에르도안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선 독일내 터키계 유권자들이 메르켈과 슐츠에게 표를 줘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독일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계 터키인 작가인 도안 아칸리를 테러혐의로 인터폴에 요청하고 스페인 정부가 체포했다가 가석방한 사건으로 독일과 갈등이 생겼고,## 독일의 가브리엘 장관의 부인이 설전을 벌이자 에르도안이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국적자 2명이 터키에서 체포되자 독일은 터키를 규탄했고 메르켈 총리는 터키에 대한 정책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터키를 제재할 수 있다는 발언도 시사했다.#
터키군이 이프린 작전을 펼치면서 시리아내 쿠르드족들을 공격할때 독일제 전차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독일의 정치인들은 터키로 무기수출중단을 촉구했다.# 거기에다 독일과 터키는 외교갈등을 겪고 있음에도 독일은 터키측에 무기판매를 계속했다.# 2018년 5월 26일에 독일이 쿠르드 정당의 집회를 허용하자 터키측은 반발했다.# 그리고 터키측은 독일영사관 부속 학교를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2018년 6월 24일에 터키에서 총선이 있었는데, 독일내 터키계 3분의 2가 에르도안에 몰표를 줬다.# 그리고 독일내에서 터키계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는 외질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밝히는 등 터키계를 포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터키가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자 다시 훈풍을 타고 있다.# 그리고 터키 정부는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린 터키계 독일인 언론인을 독일로 돌아가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2018년 9월 27일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했지만, 독일에서는 인권문제를 두고 시위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9월 28일에 회담을 가졌지만, 양측은 협력만 강조했고 서로 양보를 거부했다.#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공화인민당 후보가 재선거결정으로 시장자리에 물러난 사태를 두고 독일측은 비판했다.# 또한, 2019년 10월에 터키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을 공격하자 독일측은 터키를 비판했고 다른 EU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로의 무기수출을 중단했다.# 폭스바겐도 터키에 공장을 지을려고 했던 것을 보류했다.#
2020년 11월 22일에 독일 프리깃함 한 척이 지중해에서 리비아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를 시행한다며 터키 화물선에 대해 강제 수색을 실시하고 터키가 불법적인 수색이라고 반발하면서 11월 23일에 터키와 독일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1] 나치 독일은 중동의 이슬람권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석유 확보가 한 몫 했다. 이란 제국은 친추축국적 성향을 보였고, 이라크 왕국은 아예 추축국 측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프랑스의 식민지이던 시리아도 본국에 독일의 괴뢰 정부인 비시 정부가 들어서며 나치 독일의 간접지배 영역으로 확대된다. 다만 터키는 석유가 거의 없으니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회유한 가능성이 높다.[2] 1938년에 사망했다. 2차대전 발발 1년 전이다.[3] 가끔 이 네오 나치들이 그리스인을 터키계로 오인(...)해 그리스인이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리스인 역시 터키인과 별개로 독일 네오 나치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