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내용
1946년 10월에 독일의 소련 점령지구에서 투표를 통해 독일 공산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이 합병하여 성립했다. 그러나 동베를린에서는 소련군에 의해서 투표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실제 투표를 할 수 있던 것은 서베를린의 당원 뿐이었다. 그 결과, 공산당과의 통일에 찬성한 표는 불과 12%였기 때문에 통일사회당 성립 후에도 일정 기간 사회민주당이 존속했다. 반면 서쪽 점령지구의 독일 사회민주당은 그대로 존속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베를린에는 서베를린 통일사회당도 존재했다. 동베를린에서도 서베를린 사회민주당 활동이 허용되고 있었다.
통합 후 초기에는 지도부의 50%씩이 구 공산당과 구 사민당이었지만, 구 독일 사회민주당계의 당원은 서서히 제명되어 실세는 공산당이었다. 다만 1946년 당시 존재했던 정당 중 최고인 독일 사회민주당은 전국에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 이용가치는 매우 높았다고 여겨졌다.
1949년 소련 점령지구가 독일민주공화국이 되면서 국가를 지도하는 당으로서 사실상의 일당 독재체제를 시행해 동독을 지배하였다.
1963년 서베를린 지부가 별도의 서베를린사회주의통일당(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Westberlins, SEW)으로 독립했다. 이 당은 1993년까지 존속하였다.
1989년의 민주화와 통일 이후 민주사회당으로 개명하고 선거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꾸준히 구 동독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하다가 독일 사회민주당을 탈당한 오스카 라퐁텐의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Arbeit und soziale Gerechtigkeit – Die Wahlalternative; WASG)과 통합해서 좌파당을 창당하였다. 현재도 연방 하원 의회에서 제4당으로서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구 동독에서는 뿌리 깊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 외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우경화로 인해 구 서독 지역에서도 지지를 얻고 있다.
통합 후 초기에는 지도부의 50%씩이 구 공산당과 구 사민당이었지만, 구 독일 사회민주당계의 당원은 서서히 제명되어 실세는 공산당이었다. 다만 1946년 당시 존재했던 정당 중 최고인 독일 사회민주당은 전국에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 이용가치는 매우 높았다고 여겨졌다.
1949년 소련 점령지구가 독일민주공화국이 되면서 국가를 지도하는 당으로서 사실상의 일당 독재체제를 시행해 동독을 지배하였다.
1963년 서베를린 지부가 별도의 서베를린사회주의통일당(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Westberlins, SEW)으로 독립했다. 이 당은 1993년까지 존속하였다.
1989년의 민주화와 통일 이후 민주사회당으로 개명하고 선거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꾸준히 구 동독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하다가 독일 사회민주당을 탈당한 오스카 라퐁텐의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Arbeit und soziale Gerechtigkeit – Die Wahlalternative; WASG)과 통합해서 좌파당을 창당하였다. 현재도 연방 하원 의회에서 제4당으로서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구 동독에서는 뿌리 깊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 외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우경화로 인해 구 서독 지역에서도 지지를 얻고 있다.
3. 역대 당수
- 총서기
4. 휘하 단체
- 자유독일청년동맹(Freie Deutsche Jugend, FDJ) - 청년단체
- 노이에스 도이칠란트(Neues Deutschland) - 당 기관지. 오늘날까지도 신문 자체는 이어지고 있다. 좌파당이 여전히 부분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 국가 인민군 - 군사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