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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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陶器 騎馬人物形 明器
소재지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토기
수량/시설
1쌍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신라시대(5세기)

1. 개요2. 내용3. 기타4. 바깥고리5. 국보 제91호

1. 개요[편집]

陶器 騎馬人物形 明器. 일제강점기 1924년 경주시 금령총에서 출토된 토기 한 쌍으로, 신라시대 도자기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자,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과 함께 고대 기마인물을 묘사한 대표적인 걸작 토기이다. 기마인물 도상(騎馬人物陶像) 또는 기마 인물형 토기 등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국보 제91호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2. 내용[편집]

한 쌍으로 이루어진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을 타고 있는 인물이 직사각형 판 위에 올라가 있는 형태이다. 얼핏 보면 단순히 말을 탄 사람 형상 조각상처럼 보이지만, 말 위에는 잔이 있는데 아래에 있는 말 뱃속으로 연결된 구멍이 뚫려 있어서 이 구멍으로 액체를 넣을 수 있고, 말의 앞 가슴 쪽에 있는 대롱에는 말의 뱃속으로 들어간 액체를 따를 수 있는 긴 관이 있다. 즉, 일종의 주전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본 유물은 실제로 일상에서 사용된 것이라기 보다는, 문화재명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1] 무덤에 부장하기 위한 용도인 것으로 추정한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한 쌍. 좌측이 주인상, 우측이 하인상이다.
말에 올라 타 있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각각 주인과 하인(또는 시종)으로 보는데, 주인은 하인보다 더 크게 묘사되어 있다. 주인의 경우 타고 있는 말에 하인의 말보다 더 화려한 장식이 더해져 있으며, 주인의 머리에는 삼각뿔 형태의 모자가 씌워져고 있고, 말 안장 위에 갑옷을 두른 듯한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하인의 경우 인물상이나 타고 있는 말이나 장식이 별로 없으며, 하인의 머리는 상투머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한 쌍의 토기는 신라시대 유물 중에서도 중요한 유물로 평가 받는데, 신라 시대의 마구[2] 및 말 장식의 형태, 신라 시대의 의복(특히 모자)의 형태, 무기 등이 섬세하게 묘사 되어 있어서, 현재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당시 신라의 문화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그 미적, 사료적 가치를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91호로 지정되었다.

3. 기타[편집]

  •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1977년 8월 15일, 1983년 6월 15일에 발행된 80원권 보통우표와 1979년 10월 15일 발행된 20원권 한국미술 5천년 특별 기념우표의 도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4. 바깥고리[편집]

5. 국보 제91호[편집]

경주시 금령총에서 출토된 한 쌍의 토기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주인상은 높이 23.4㎝, 길이 29.4㎝이고, 하인상은 높이 21.3㎝, 길이 26.8㎝이다. 금령총에서 1924년에 배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되었으며, 죽은 자의 영혼을 육지와 물길을 통하여 저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주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두 인물상은 두꺼운 직사각형 판(板)위에 다리가 짧은 조랑말을 탄 사람이 올라 앉아있는 모습이다. 말 엉덩이 위에는 아래로 구멍이 뚫린 등잔이 있고, 앞 가슴에는 긴 부리가 돌출되어 있어 비어있는 말의 뱃속을 통해 물을 따를 수 있게 되어 있다.

두 인물상의 모습은 말 장식이 화려한 주인상의 경우 고깔 형태의 띠와 장식이 있는 삼각모(三角帽)를 쓰고 다리위에 갑옷으로 보이는 것을 늘어뜨렸다. 하인상은 수건을 동여맨 상투머리에 웃옷을 벗은 맨 몸으로 등에 짐을 메고 오른손에 방울같은 것을 들고 있어 길을 안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 인물상 형태의 토기는 신라인의 영혼관과 당시의 복식, 무기, 말갖춤 상태, 공예의장(工藝意匠) 등에 대한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1] 본 문화재의 명칭은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인데 여기서 말하는 명기(明器)란 장사지낼 때 죽은 사람과 함께 무덤 속에 묻는 그릇 등의 기물을 뜻한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 명기7 明器[2] 이를테면 등자와 같은 마구가 적어도 6세기경에는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1977년 발행[4] 1979년 발행[5] 1983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