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의 상위 문서: 대한민국의 저출산/원인
1. 개요[편집]
2. 능력주의에 의한 출세 지향적 사고 - 비교, 경쟁 문화[편집]
나부터 살아야 하니 애를 안 낳지[2]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가장의 역할과 헌신을 강조하는 한국의 전통 문화가 경쟁, 자본주의 등과 합쳐 변질[3]되어 양육 비용 부담이 높아져 저출산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타국에 비해 경쟁 심리가 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높은 경제 성장을 이끌긴 했지만 만족하질 못하고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물질을 벗어나 협력을 강조하는 주장이 있지만, 소수의 의견일 뿐이다.
이 경쟁은 평범해지는 일을 어렵게 만들어 사전적 의미의 평균이 국평오라는 조롱을 받게 되었으며 자식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게 만들었다.[4]
또한 한 기업의 사장이 자녀들에게는 온갖 특혜를 주지만 다른 직원들에게는 특유의 갑질을 시전하는 등의 이기주의로 인해 자식이 출세하지 못하면 멸시를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저출산 풍조가 심해질 수 있다.
경쟁 심리는 자녀의 성공에 집착하여 양육비를 증가시키며 원치 않는 진로를 강요하거나 경제적 독립을 늦추는 경향을 만들게 되었다.
학벌중시사회도 이의 일환이며 취직을 했어도 공무원 등 특수 계층을 제외하면 경쟁이 지속되어 한국 특유의 개인주의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와 함께 행복의 기준을 남에게서 찾는 것으로 볼수 있다. 경제적인 안정이 행복의 기준이 된 것이다. 강력한 유교적 가정에서 살았던 한국인은 자신이 경험했던 경쟁의 피로나 멸시를 자식에게 보여주지 않거나 자신의 삶에서 포기하는 부분이 많아서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5]
종합하면, 이는 곧 입신양명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동양유교문화권인 한국에서 능력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 문서에서 확인 할 수 있겠지만, 초경쟁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능력주의라는 미명으로 소위 "패배자"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비난, 멸시 그리고 조롱은 곧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행위가 자신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겪을 수많은 경쟁과, 패배했을때 지어지는 사회적 굴레[6]를 감수해야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즉 능력주의라는 냉혹한 현실은 저출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만들 수 밖에 없다.
또한 개인주의가 체면중시 수동형 문화와 합쳐 피로감을 안기기도 한다. 여기에 익숙하지 않음을 느끼면 눈치를 보는 문화도 만연해져 삶의 기준을 남에게 맞추어[7] 물질주의적 삶을 추구하도록 한다. 어쩌면 ‘개인주의’는 타인의 시선에 지친 모습을 설명한다고도 볼 수 있다.
2.1. 물질주의[편집]
물질로 사람을 평가하는 한국에서 자식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모습은 지탄받기 쉽다. 이를 위해 아래와 같은 경제관을 가져 출산을 기피하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는 대한민국이 농업사회였기에 인구수가 곧 생산력이었고 계급 상승의 복권이 되었기에 자식을 많이 낳았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호황이 끝나면서 이 기대가 사라졌으며 육아비용은 급격히 늘어 현대 부부들은 자식 잘 키워봤자 성공의 가능성은 낮은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특히 1990년대생들은 불황 속에서 자라 최악의 실업률 속에서 기성 세대의 갑질에 신음하게 되었다. 거기다 이들과 사고방식 자체가 틀린 1980년대생 이전 세대와의 갈등, 집단주의 문화, 억압과 권위주의 문화 등에 진을 치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여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들이 도리어 갈등을 조장하는 등 무기력을 학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이것이 결혼 포기 등으로 직결되면서 최악의 저출산을 이끌게 되었다.[8] 1980년대생 이전 세대만 하더라도 윗사람에 대한 공경이나 예의따위는 무조건 지켰지만 1990년대생 이후 세대 부터는 그런거 없다. 이미 이들은 '나만 아니면돼' 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이들은 일본의 신인류 세대처럼 설령 경기가 호전되도 더 어린 세대나 외국인노동자에 밀려 그대로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 더욱 암울하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데, 물질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자녀를 일종의 투자 대상으로 여겨 지나치게 사회적 성공의 기준에만 맞추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가의 육아용품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 세태에 대응하는 모습도 있지만, 2016년 설문조사에서도 96%의 엄마가 한국 육아문화가 과소비적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대한민국이 농업사회였기에 인구수가 곧 생산력이었고 계급 상승의 복권이 되었기에 자식을 많이 낳았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호황이 끝나면서 이 기대가 사라졌으며 육아비용은 급격히 늘어 현대 부부들은 자식 잘 키워봤자 성공의 가능성은 낮은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특히 1990년대생들은 불황 속에서 자라 최악의 실업률 속에서 기성 세대의 갑질에 신음하게 되었다. 거기다 이들과 사고방식 자체가 틀린 1980년대생 이전 세대와의 갈등, 집단주의 문화, 억압과 권위주의 문화 등에 진을 치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여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들이 도리어 갈등을 조장하는 등 무기력을 학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이것이 결혼 포기 등으로 직결되면서 최악의 저출산을 이끌게 되었다.[8] 1980년대생 이전 세대만 하더라도 윗사람에 대한 공경이나 예의따위는 무조건 지켰지만 1990년대생 이후 세대 부터는 그런거 없다. 이미 이들은 '나만 아니면돼' 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이들은 일본의 신인류 세대처럼 설령 경기가 호전되도 더 어린 세대나 외국인노동자에 밀려 그대로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 더욱 암울하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데, 물질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자녀를 일종의 투자 대상으로 여겨 지나치게 사회적 성공의 기준에만 맞추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가의 육아용품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 세태에 대응하는 모습도 있지만, 2016년 설문조사에서도 96%의 엄마가 한국 육아문화가 과소비적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2.1.1. 물질주의의 부작용[편집]
베이비붐 세대엔 자녀에게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5%이상의 고성장의 전망은 전혀 없으나 출산정책을 주장하는 자들은 항상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나 정작 상당수는 악화되고 있다. 거기다 계급고착현상까지 심각해진 마당에 성장의 혜택은 오직 금수저의 몫이 되었다. 금수저도 또한 은수저, 동수저의 끊임없는 도전에 대항해 더욱더 큰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다.
2.1.2. 이국적인 시각의 비판[편집]
위처럼 국내에서 자식은 경제적인 부담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인구가 짐이라면 인구가 많은 기성 세대가 더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모습도 이상하다.
경제관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인은 성공을 중시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9]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들은 자식의 성공을 중시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행복을 자신에게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스페인등 한국과 비슷한 경제력의 국가가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은 이유를 설명하려면 한국 사회가 물질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부모들이 자식의 동반자라는 생각을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특히 선진국 중 출산율이 높은 노르웨이의 시각에서는 자식을 ‘나와 같이’ 행복하기 위해 낳고, 출세보다는 정상적인 상식과 사고를 갖출 것을 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저출산 고령화를 담당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조차 아기를 아예 낳지 않고, 자신이 왜 그런지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2017년에는 세 자녀를 둔 보건복지부의 여성 사무관이 아이 돌보는 일, 야근과 주말 출근을 못 견디고 과로사한 사건이 있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평가받는 직장에 가까운 곳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자식을 3명을 낳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를 종합하면, 한국의 가족관은 자식을 풍요롭고 교육 수준 높게 키우는 데는 큰 기여를 하였지만, 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양면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제관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인은 성공을 중시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9]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들은 자식의 성공을 중시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행복을 자신에게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스페인등 한국과 비슷한 경제력의 국가가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은 이유를 설명하려면 한국 사회가 물질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부모들이 자식의 동반자라는 생각을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특히 선진국 중 출산율이 높은 노르웨이의 시각에서는 자식을 ‘나와 같이’ 행복하기 위해 낳고, 출세보다는 정상적인 상식과 사고를 갖출 것을 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저출산 고령화를 담당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조차 아기를 아예 낳지 않고, 자신이 왜 그런지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2017년에는 세 자녀를 둔 보건복지부의 여성 사무관이 아이 돌보는 일, 야근과 주말 출근을 못 견디고 과로사한 사건이 있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평가받는 직장에 가까운 곳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자식을 3명을 낳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를 종합하면, 한국의 가족관은 자식을 풍요롭고 교육 수준 높게 키우는 데는 큰 기여를 하였지만, 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양면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2. 학벌중시사회와 과도한 양육비[편집]
2019년 대한민국 양육비 계산기 자식의 평균 양육비가 3억 6천만원이라는 통계가 있으며 사교육비가 70% 정도인데, 그 이유가 대학을 중시하는 학벌중심사회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취업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결혼, 출산을 기피하게 된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 당시 명문고,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한 교육열이 아주 높았다. 다만 교육열에 뛰어들 수 있는 학생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는데, 평균 자녀 수가 6명을 넘기던 시절. 아무리 특출난 재능이 여럿 있어도 이중에서 단 한 명의 교육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이 많았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형제자매들 중에서 박학다식한 한 두명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뒷바라지 하는 가정이 부지기수였다. 여성을 공부시키기 꺼려하는 풍토 때문에 이 때 많은 여성들이 반강제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진출을 하였다.
경제가 성장하고 이전보다 생활이 풍족해지자, 모든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부모들이 많이 늘어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교육을 박탈당했던 그들에게 있어 자녀들에게 제시할 신분상승의 길은 아주 명확했다. 고등교육을 받아 학력을 높이면 지금의 아비어미보다 잘 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학벌에 열등감을 느낀 부모세대는 자녀를 통해서라도 꿈을 이루려는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기득권으로 올라갈 사람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곧 고등교육만 받는다고 신분상승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흔들리게 된다. IMF 사태 이후, 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학벌경쟁에서 먼저 우위에 설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조기교육을 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에 불어닥친 조기교육 광풍이었다. 사교육비가 급속히 증가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자녀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벌경쟁의 승리를 위해 부모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으며 자라왔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 서비스를 반강제적이라 할 지라도 받은 세대이다. 그와 동시에 대학 졸업, 이후 대학원까지 이전의 베이비 붐 세대보다 경쟁 기간이 늘어나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와 자녀가 세밀하게 계획한 교육과정을 착실하게 밟더라고 신분상승을 장담할 수 없다. 부모는 자녀의 행복과 성공이 가장 큰 바람인데 현 세대는 당장 자신의 행복과 성공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어릴 적으로 되돌아가도, 성공의 열쇠가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의 학벌경쟁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 지, 성공할 수 있는 지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 줄 수 없을 지경에까지 과열된 것이다. 학업에, 스팩에 치이고 치여서 미래의 자녀에게 맡기고 기대할 꿈조차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풍토가 강해지는 것이다.
한국은 기술직과 고졸을 멸시하는 풍토가 심해 용접, 미용, 요리 등을 천시하는 경향이 크다.[10][11] 결국 고학력 백수양성은 결혼기피와 출산저하를 부르며 이성에 대한 관심은 공부에 밀리게 된다.
대학 졸업자의 30% 이상은 비정규직으로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으며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심각한 피해를 받았는데 그렇게 취업을 해도 집 하나 구하기도 힘들며 생활비 조차 결코 싸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주장하는 인간도 있지만 청춘 세대가 타의에 의해 아파야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해당 서적의 작가도 자의적인 목표에 의해 아픔을 견디고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 당시 명문고,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한 교육열이 아주 높았다. 다만 교육열에 뛰어들 수 있는 학생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는데, 평균 자녀 수가 6명을 넘기던 시절. 아무리 특출난 재능이 여럿 있어도 이중에서 단 한 명의 교육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이 많았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형제자매들 중에서 박학다식한 한 두명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뒷바라지 하는 가정이 부지기수였다. 여성을 공부시키기 꺼려하는 풍토 때문에 이 때 많은 여성들이 반강제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진출을 하였다.
경제가 성장하고 이전보다 생활이 풍족해지자, 모든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부모들이 많이 늘어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교육을 박탈당했던 그들에게 있어 자녀들에게 제시할 신분상승의 길은 아주 명확했다. 고등교육을 받아 학력을 높이면 지금의 아비어미보다 잘 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학벌에 열등감을 느낀 부모세대는 자녀를 통해서라도 꿈을 이루려는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기득권으로 올라갈 사람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곧 고등교육만 받는다고 신분상승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흔들리게 된다. IMF 사태 이후, 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학벌경쟁에서 먼저 우위에 설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조기교육을 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에 불어닥친 조기교육 광풍이었다. 사교육비가 급속히 증가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자녀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벌경쟁의 승리를 위해 부모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으며 자라왔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 서비스를 반강제적이라 할 지라도 받은 세대이다. 그와 동시에 대학 졸업, 이후 대학원까지 이전의 베이비 붐 세대보다 경쟁 기간이 늘어나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와 자녀가 세밀하게 계획한 교육과정을 착실하게 밟더라고 신분상승을 장담할 수 없다. 부모는 자녀의 행복과 성공이 가장 큰 바람인데 현 세대는 당장 자신의 행복과 성공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어릴 적으로 되돌아가도, 성공의 열쇠가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의 학벌경쟁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 지, 성공할 수 있는 지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 줄 수 없을 지경에까지 과열된 것이다. 학업에, 스팩에 치이고 치여서 미래의 자녀에게 맡기고 기대할 꿈조차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풍토가 강해지는 것이다.
한국은 기술직과 고졸을 멸시하는 풍토가 심해 용접, 미용, 요리 등을 천시하는 경향이 크다.[10][11] 결국 고학력 백수양성은 결혼기피와 출산저하를 부르며 이성에 대한 관심은 공부에 밀리게 된다.
대학 졸업자의 30% 이상은 비정규직으로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으며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심각한 피해를 받았는데 그렇게 취업을 해도 집 하나 구하기도 힘들며 생활비 조차 결코 싸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주장하는 인간도 있지만 청춘 세대가 타의에 의해 아파야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해당 서적의 작가도 자의적인 목표에 의해 아픔을 견디고 성공을 거두었다.
2.3. 상대적 박탈감[편집]
자신이 남과 차별된다는 생각을 갖거나, 실제로 차별되면 좋을 리는 없다. 물론 중산층, 고학력자 계층, 지식인 계층이 상류층, 최상위 1% 계층의 부정부패나 특혜 등을 보고 비판의식을 지닌다 해서 이들이 딱히 더 도덕적,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근거야 없다. 자신보다 잘사는 상류층, 상위 1%를 보고 상대적 박탈감에 찌든 나머지 성격이 꼬이고, 심성이 뒤틀린 인간들도 나타나게 되었다. 심하면 이런 뒤틀린 성격과 심성은 피해의식과 반사회성이 될 수도 있고, 주변에 불쾌감과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중산층, 고학력자 계층, 지식인 계층은 정보를 쉽게 접할 기회가 되기에 상류층이나 최상위 1%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층, 서민,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의 입장에서는 중산층, 고학력자 계층, 지식인 계층도 자신들보다는 잘 사는 계층이기 때문에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과 정보력의 확산으로 이에 따른 감정 대립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1993년의 인터넷 보급 이전에는 뉴스, 신문, 독서 혹은 정치적인 모임이나 담론 등은 거의 중산층, 고학력자 계층, 지식인 계층만이 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로 다른 계층에 대한 몰이해와 기피 현상은 신분제 붕괴 이후는 나타나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전쟁 직후에 가난과 기근으로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듯 했지만, 사회가 안정화 되면서 서로 다른 계층에 대한 기피, 거부 현상도 자연스럽게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다만 군사독재 치하에서는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하여 말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지만, 민주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으로 그런 서로 다른 계층에 대한 기피, 거부 현상도 자연스럽게 다시 나타났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중산층, 고학력자 계층, 지식인 계층은 정보를 쉽게 접할 기회가 되기에 상류층이나 최상위 1%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층, 서민,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의 입장에서는 중산층, 고학력자 계층, 지식인 계층도 자신들보다는 잘 사는 계층이기 때문에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과 정보력의 확산으로 이에 따른 감정 대립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1993년의 인터넷 보급 이전에는 뉴스, 신문, 독서 혹은 정치적인 모임이나 담론 등은 거의 중산층, 고학력자 계층, 지식인 계층만이 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로 다른 계층에 대한 몰이해와 기피 현상은 신분제 붕괴 이후는 나타나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전쟁 직후에 가난과 기근으로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듯 했지만, 사회가 안정화 되면서 서로 다른 계층에 대한 기피, 거부 현상도 자연스럽게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다만 군사독재 치하에서는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하여 말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지만, 민주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으로 그런 서로 다른 계층에 대한 기피, 거부 현상도 자연스럽게 다시 나타났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2.4. 정보통신기술 및 영상매체의 발전[편집]
2019년 기준 스마트폰 보급률은 95% 이상으로 전국민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유튜브의 탄생과 LTE 등을 기반으로 접할 수 있는 매체가 크게 증가한 결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며 더 나은 경제적 삶을 확인하게 해준 점이 저출산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꼭 이 예가 아니더라도 정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 많은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느 위치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 등에서 수십억원의 건물을 매입했다거나 수억원 상당의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을 손쉽게 보게 되고 그 결과 자신도 더 나은 경제적 위치를 위해 집중하느라 출산은 늦춰지게 된다.
꼭 이 예가 아니더라도 정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 많은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느 위치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 등에서 수십억원의 건물을 매입했다거나 수억원 상당의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을 손쉽게 보게 되고 그 결과 자신도 더 나은 경제적 위치를 위해 집중하느라 출산은 늦춰지게 된다.
2.5. 청년실업[편집]
2.5.1. 고학력자의 과잉 공급[편집]
고학력자들이 누리는 특권이나 가정이 어려워 공부를 못한 설움 등이 한국 특유의 고학력 중시 풍토를 불러왔고 이에 따라 한국은 고학력 백수가 많은 나라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따른 수요를 넘어서는 공급으로 인하여 일부는 반드시 경쟁에서 밀려 퇴출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원인은 1993년 이후의 무분별한 대학 설립을 꼽을 수 있다. imf 구제금융으로 곳곳에 실직자가 발생하는데도 이 현상은 2010년대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고학력자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투자된 시간과 돈, 시선을 의식해서 걸맞지 않는 직종을 기피하게 된다.
여기에 가사노동보다 여가를 중시하는 세대가 기성세대에 진입하게 되었으며 1992년 이후 확산된 인권의식과 민주주의, 개인주의 의식 확산과 겹쳐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일자리의 거부감은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가사노동보다 여가를 중시하는 세대가 기성세대에 진입하게 되었으며 1992년 이후 확산된 인권의식과 민주주의, 개인주의 의식 확산과 겹쳐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일자리의 거부감은 커지기 시작했다.
2.5.2. 캥거루족의 등장과 증가[편집]
한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이 나이에 따른 사회적 역할을 할 것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며 대학을 졸업하고도 백수로 생활하는 인간이 등장하며 이런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동시에 개인주의 확산과 정보 습득의 확산 등으로 취직을 단념한 인간도 증가하게 되었다.
취직을 포기하여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늦은 나이까지 받는 캥거루족 문화가 한국의 60% 가량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러한 남성들은 결혼 배제 되상이 되었으며 취직을 한 남성들도 역시 여성들의 조건을 보며 결혼을 배제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한국은 N포세대라는 이름으로 높은 기준에 포기하는 경향이 강한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도 울고갈 외모를 가졌거나 말발이 뛰어나다거나 자산가 집안이 아닌 이상 결혼의 전단계인 연애에서 조차 배제당하게 된다.[12]
취직을 포기하여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늦은 나이까지 받는 캥거루족 문화가 한국의 60% 가량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러한 남성들은 결혼 배제 되상이 되었으며 취직을 한 남성들도 역시 여성들의 조건을 보며 결혼을 배제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한국은 N포세대라는 이름으로 높은 기준에 포기하는 경향이 강한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도 울고갈 외모를 가졌거나 말발이 뛰어나다거나 자산가 집안이 아닌 이상 결혼의 전단계인 연애에서 조차 배제당하게 된다.[12]
2.6. 사회 진출 연령대의 상승[편집]
사회의 고학력화와 함께 사회 진출 연령대도 그만큼 올라가게 되었다.[13] 사회진출 연령대의 상승이 산업현장에 진출하는 청년의 수가 감소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면 보통 연령대는 18세~19세가 되나 대학에 진학한다면 빨라도 21세~24세에 처음 이력서를 들고 구직시장에 나오게 된다. 남성의 경우 군대로 인해 2~3년이 추가되어 26세까지 오를 수 있다. 여기에 재수생의 존재도 급증하고 있어, 1~2년이 더 늦추어질수 있어 결과적으로 남성의 경우 30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다른 선진국들은 이 나이대면 이미 자녀가 있고 집안의 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은 백수 신세로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경력직 채용, 고령자 우대, 퇴직자를 다시 고용 등으로 청년층이 취직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면 보통 연령대는 18세~19세가 되나 대학에 진학한다면 빨라도 21세~24세에 처음 이력서를 들고 구직시장에 나오게 된다. 남성의 경우 군대로 인해 2~3년이 추가되어 26세까지 오를 수 있다. 여기에 재수생의 존재도 급증하고 있어, 1~2년이 더 늦추어질수 있어 결과적으로 남성의 경우 30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다른 선진국들은 이 나이대면 이미 자녀가 있고 집안의 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은 백수 신세로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경력직 채용, 고령자 우대, 퇴직자를 다시 고용 등으로 청년층이 취직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2.7. 정신질환에 걸린 청년?[편집]
사춘기를 지나고도 불안증세를 겪거나 우울증, 강박증 등을 띄는 청년 정신질환도 점차 증가하여 본인이 원치 않아도 취업, 결혼 등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높아진다. 이런 청년들이라면 자의적인 저출산 보다는 타의에 의한 비출산에 가깝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한국 청년들은 소위 나약하게 자라서 각종 사회문제가 나타난다고 결론내린다.
이런 주장은 청년실업/원인, 구직단념자 등 다른 문서에도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저출산에 한해 다루어 그 신빙성을 보고자 한다.
이 주장이 간과하는 사실은 먼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의지가 나약해서 병에 걸린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져 있었지만[14] 최근에는 인식이 상당히 좋아지는 추세이며 정신질환자들도 자신의 병을 치료를 받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15]
통계적으로 볼 때도 정신질환의 증가가 저출산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청년 정신질환은 2012년과 2016년 사이 공황장애가 65%, 우울증이 22.2%, 알코올 중독이 20.9%가 늘었다.[16] 통계를 자세히 보면 정신질환자가 2016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고 출산율은 이미 1987년에 2명 이하였다.[17] 즉 청년 정신질환의 증가와 출산율 감소는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즉 사회적 불신이 두 현상을 동시에 고착화시키고 있기에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혼동될 수 밖에 없는 것.
이렇게 결과(청년 정신질환)가 원인(저출산)을 만드는 것처럼 오도하고 이를 개인의 임의적 편견으로 정당화하는 행위는 인과전도의 오류에 해당한다. 취업난으로 정신질환이 증가한 것이지 정신질환 때문에 취업난이 생긴 게 아니다. 근본 원인을 짚지않고 현상만 보고 정신병 탓을 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여지껏 겪지못한 최악의 경제불황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애먼 현대청년들을 정신병자로, 혹은 나이든 사람들의 편견에 따라 단순히 나약한 놈으로 치부하기 위한 악의가 담긴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주장은 청년실업/원인, 구직단념자 등 다른 문서에도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저출산에 한해 다루어 그 신빙성을 보고자 한다.
이 주장이 간과하는 사실은 먼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의지가 나약해서 병에 걸린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져 있었지만[14] 최근에는 인식이 상당히 좋아지는 추세이며 정신질환자들도 자신의 병을 치료를 받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15]
통계적으로 볼 때도 정신질환의 증가가 저출산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청년 정신질환은 2012년과 2016년 사이 공황장애가 65%, 우울증이 22.2%, 알코올 중독이 20.9%가 늘었다.[16] 통계를 자세히 보면 정신질환자가 2016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고 출산율은 이미 1987년에 2명 이하였다.[17] 즉 청년 정신질환의 증가와 출산율 감소는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즉 사회적 불신이 두 현상을 동시에 고착화시키고 있기에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혼동될 수 밖에 없는 것.
이렇게 결과(청년 정신질환)가 원인(저출산)을 만드는 것처럼 오도하고 이를 개인의 임의적 편견으로 정당화하는 행위는 인과전도의 오류에 해당한다. 취업난으로 정신질환이 증가한 것이지 정신질환 때문에 취업난이 생긴 게 아니다. 근본 원인을 짚지않고 현상만 보고 정신병 탓을 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여지껏 겪지못한 최악의 경제불황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애먼 현대청년들을 정신병자로, 혹은 나이든 사람들의 편견에 따라 단순히 나약한 놈으로 치부하기 위한 악의가 담긴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2.8.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충돌[편집]
부모와 자식을 의무를 강조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는 한국에서는 개인주의는 저출산을 유발하기 쉽다. 그리고 이는 행복추구권과도 맞물린다. 흔히 신중한 출산을 강조하는 세태에 출산을 억제해야 할 본능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의 의견에 따르면 저출산 세태도 생존 본능의 일부라고 한다. 일반인이 언급하는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까닭은 대개 이렇다.
- 직장생활, 전문성, 자기 계발에 충실하기 위해서 결혼, 출산을 더욱 기피하고 꺼린다.
- 메리트가 충분하지 않은 상대와 결혼하느니 미혼으로 남는 것이 낫다.
- 자녀 양육비 지원이 되지 않아서 저출산이 심화된다.
- (주로 남성의 경우) 경제적 부담이 한 쪽에 지워진 결혼을 하기 힘들다.
첫째 주장은 전문성을 추구하면 사회에 크게 일조하므로 쉽게 비판하기 어렵다.
둘째 주장은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을 찾겠다는 말로,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남녀 모두 자신의 삶을 하향 평준화 시킬 정도의 상대와 결혼해서 고생하며 살아야 될 이유는 없다.
셋째 주장은 양육비를 지원한대도 자녀의 사교육비에 투자하므로 비판의 여지가 있다.
넷째 주장은 남성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이 현실은 남성은 집, 여성은 혼수를 마련하는 문화에서 매우 높은 집값이 제일 큰 원인으로 자리한다. 그렇기에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남성들이 빠르게 결혼시장에서 탈락하는 반면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성들 또한 직업이 없거나 좋지 않은 여성들과 결혼하느니 그냥 결혼을 하지 않는다.
다섯째 주장을 보면 과거와 달리 현재 우리 사회에선 여성에게 남편과의 육아를 분담하면서도 경제 능력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0]
여성이 하향 결혼을 하려는 인식도 생겨나지만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집단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 소울메이트 간의 결합이 아닌 사회적 지위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간주되니 출산 거부를 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살기 힘든 상황에서 무책임한 출산은 가족들 모두에게 역효과를 일으킨다.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을 정죄하는 것은 인권 침해일 뿐이며 이를 인정하는지 여부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판별하는 척도가 되었다. [21]
2.8.1. 인간관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편집]
과거에는 다른 사람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작게는 가족, 크게는 사회라는 '집단'에 소속되어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이 시대에는 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을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으며, 낯을 가리거나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어른답지 못하다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매우 강해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매우 강한 사회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개인주의 사상이 확산됨에 따라 사람을 만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감정적/정서적 부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인간관계가 넓어져 봐야 이득이 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면서 신경써야할 것들은 그만큼 늘어난다는 식의 인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필요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을[22] 유지하면서 그 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서, 혹은 매우 친밀한 극소수의 사람과만 교류하며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활 측면에서도 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모든 물건의 구성이 정해져 혼자서는 뭐든지 양이 너무 많아 불편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마트나 편의점 등에서는 식재료를 1인분, 많아도 2~3인분정도씩 소량 포장해서 판매하거나 아예 전자레인지 등으로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식품들도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건조기와 일체화된 세탁기나 로봇 청소기 등을 이용해 빨래, 청소와 같은 집안일도 쉽고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는 등 혼자서도 생활에 불편함이 거의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혼자 살기 불편해서' 결혼을 택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여기에 더해 TV나 인터넷 등 각종 매체를 통해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컨텐츠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혼자 있기 외로워서' 결혼을 택하려는 사람들의 수마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기까지 하다.
즉, 굳이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거나,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지 않고서도 충분히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보통 출산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혼인률이 늘어나야 하고, 혼인의 전 단계는 보통 인간관계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연애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상은 출산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인간관계 그 자체에 염증을 느끼거나 인간관계 자체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경제적 상황이 아무리 풍족해 지더라도 인간관계 중에서도 가장 밀접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는 결혼 같은 것은 애시당초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게 되기 때문에 이들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개인주의 사상이 확산됨에 따라 사람을 만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감정적/정서적 부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인간관계가 넓어져 봐야 이득이 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면서 신경써야할 것들은 그만큼 늘어난다는 식의 인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필요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을[22] 유지하면서 그 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서, 혹은 매우 친밀한 극소수의 사람과만 교류하며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활 측면에서도 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모든 물건의 구성이 정해져 혼자서는 뭐든지 양이 너무 많아 불편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마트나 편의점 등에서는 식재료를 1인분, 많아도 2~3인분정도씩 소량 포장해서 판매하거나 아예 전자레인지 등으로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식품들도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건조기와 일체화된 세탁기나 로봇 청소기 등을 이용해 빨래, 청소와 같은 집안일도 쉽고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는 등 혼자서도 생활에 불편함이 거의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혼자 살기 불편해서' 결혼을 택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여기에 더해 TV나 인터넷 등 각종 매체를 통해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컨텐츠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혼자 있기 외로워서' 결혼을 택하려는 사람들의 수마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기까지 하다.
즉, 굳이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거나,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지 않고서도 충분히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보통 출산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혼인률이 늘어나야 하고, 혼인의 전 단계는 보통 인간관계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연애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상은 출산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인간관계 그 자체에 염증을 느끼거나 인간관계 자체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경제적 상황이 아무리 풍족해 지더라도 인간관계 중에서도 가장 밀접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는 결혼 같은 것은 애시당초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게 되기 때문에 이들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3. 거세지는 반출생주의[편집]
위에서 언급한대로 남들과 비교했을 때 ‘중간은 가는 수준’은 되어야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자격이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경제나 사회는 자체는 발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 구성원들의 만족감과 행복은 사회 발전과 별개의 문제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남들 부럽지 않을 자격을 맞추기 위한 허들은 높아지고 있다. 허들이 높아짐과 동시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인식은 당연스럽게 퍼져있다.
아이를 가진 월 200만원, 300만원 사회인을 향해 200충, 300충이라는 혐오적 표현이 나오거나# “태어나면 사는게 지옥이다. 출산하면 자식에게 너무 미안하다”# 등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아도 이를 조금 엿볼 수 있다.
이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 정책,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아이를 낳지않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구성원들의 주관적 만족감과 행복감이 사회 발전과 평행하지 않는 이유를 파해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한톨이라도 풀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경제나 사회는 자체는 발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 구성원들의 만족감과 행복은 사회 발전과 별개의 문제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남들 부럽지 않을 자격을 맞추기 위한 허들은 높아지고 있다. 허들이 높아짐과 동시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인식은 당연스럽게 퍼져있다.
아이를 가진 월 200만원, 300만원 사회인을 향해 200충, 300충이라는 혐오적 표현이 나오거나# “태어나면 사는게 지옥이다. 출산하면 자식에게 너무 미안하다”# 등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아도 이를 조금 엿볼 수 있다.
이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 정책,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아이를 낳지않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구성원들의 주관적 만족감과 행복감이 사회 발전과 평행하지 않는 이유를 파해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한톨이라도 풀 수 있을 것이다.
4. 전통적 가족관의 잔재[편집]
한국의 유교의 기원을 두고 권위주의를 통해 변질된 가족 제도는 상대적으로 엄격하다. 보수적인 가족관 탓에 혼인율은 높으나, 혼인이 없으면 자녀를 거의 두지 않는다. 따라서 출산 자체가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좋게 말해서 한국인들은 자녀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자녀를 많이 두지 않은 것인데, 집착이 커서 자녀를 많이 두면 힘든 것이다.
지금도 유지되었다면 출산율이 지금보다는 낮지 않았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자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좋다거나 남자 유치원 교사를 좋지 않게 보는 등 일부 부분에는 여전히 변질된 유교적 전통이 도덕적 규범의 수준으로 강하게 남아 있으며, 특히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부분은 경쟁의 심화로 더 강조되는 측면도 있다.
지금도 유지되었다면 출산율이 지금보다는 낮지 않았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자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좋다거나 남자 유치원 교사를 좋지 않게 보는 등 일부 부분에는 여전히 변질된 유교적 전통이 도덕적 규범의 수준으로 강하게 남아 있으며, 특히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부분은 경쟁의 심화로 더 강조되는 측면도 있다.
4.1. 높은 금전적 눈높이[편집]
한국의 가족문화는 가족에게 투자를 많이 하는 면이 있다. 이민을 받아 출산율을 올리자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한데, 외국인들은 한국인만큼 가족에게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외국의 문화를 한국에서 지키려고 하면 주위의 시선이 나쁠 수 있다. 도덕관, 자녀에게 긍정적이겠는가를 떠나 한국의 가족 문화가 부담을 안기는 이유를 타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경제가 성장한 경우 타국에 비해 저출산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과거에는 경제 여건 상 경쟁이 쉬운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23] 요즘은 비판을 받는 출산율을 상승시키는 문화[24]도 유지되었기에 아래와 같은 문화를 갖고도 출산율이 높았다. 일본의 사례는 일본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스즈키 도루(鈴木透) 박사의 견해를 참고했다.
- 부모와 자식의 강한 연대: 부모가 물질적 부분에 있어 헌신적이다. 서울대와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물품을 갖춘 것으로 부를 따지면 잉글랜드, 노르웨이를 포함한 16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아동이 부유하다. (보고서) 대신 캥거루족도 나타나기 쉽다.
- 프랑스: 기다리고, 하지 말라는 말이 육아에서 중요하다고 한다. 가령 장난감을 사달라고 해도 함부로 사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키우면 배려와 지혜를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교육열: 부모에게 교육에 대한 지출은 의무에 가까우며, 대학을 나와야 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분위기가 있다. 부모가 자식을 성공하는 사람으로 만드려는 욕구가 강하다보니 일부 아이들은 자신을 부모의 대리인으로 느끼기도 한다.#
- 일본: 이 부분의 차이가 가장 심하다. OECD가 주관하는 PISA라는 평가에 따르면 학업성취도 차이는 거의 없다.#[28] 대신 한국의 교육이 사회적 위신을 포괄하는 성격이 크다. 2008년 조사이긴 한데, 한국의 어머니들은 92.8%가 자녀의 사회적 성공을 원했지만, 일본은 50.7%였다고 한다. 학력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냐는 질문에도 한국 학생들은 63%, 일본 학생들은 41%가 그렇다고 답했다. 대학에 가는 사람은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강남에 좋은 학원이 있어서 집값이 비싸다'는 개념을 이상하게 여기는 일본인이 있다. 대학진학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다른 길들이 열려 있다고도 하고, 등록금 관련 차별 대우가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걸로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는 적다고 한다.#
- 육체노동 경시 풍조: 양반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펜대를 굴리는, 화이트칼라 직종을 선호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좋은 대학에 가는 등 막대한 시간적, 금전적 투자가 필요하다.
- 일본: 한국처럼 화이트칼라가 아닌 직업을 무시하는 정도가 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블루칼라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게 있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주로 금전적 혜택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금전적인 혜택이 좋아도 문화의 뒷받침이 없으면 한계가 있다. 모두가 돈을 많이 벌게 되어도 문화에 기인한 사회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회적 위신을 갖출 수 있는 대상은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못해주겠으니 자녀를 못 두겠다는 인식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4.2. 가정 중심 책임 의식[편집]
한국은 부모와 자식이 분리되는 나라가 아니기에 자식을 돌보는 책임은 지금도 중시된다. 그러나 이 관심이 변질되어 극성으로 변해간다는 주장이 나온다.
결혼이 의무였던 시대의 가족관은 자식은 효도할 의무를, 부모는 가계를 이어줄 의무를 가졌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훌륭히 가르치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든가, 아버지에게는 가장이라는 지위가 부여되어 가족을 통솔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과거에는 이런 제도가 큰 경제적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자식들은 수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한 희생과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니 은연 중 이런 인식을 받아들여 결혼과 육아란 부모가 수많은 의무를 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식을 키우려다보니 양육비는 비싸고, 구직 경쟁도 치열하다.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불안해지다보니 자식에게 많은 돈을 쏟아붓거나, 아예 결혼부터 기피하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여 누릴 것도 많아지다 보니 부모의 책임을 지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이는 '내 자식이 효도를 해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다시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한국에서 부모가 될 사람은 서구나 일본에 비해 높은 수준의 헌신에 기반한,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는' 책임감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한국학 교수인 클락 W. 소렌슨 교수는 미국 부모들은 자식들이 감정적으로 불구가 되는 것과 스스로 못 해내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식에게 매달리지 않으며, 한국적 가족관을 두고 이런 정신적 건강함에 악영향을 끼쳐 유해하게 여길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한국 부모들은 자율을 가치로 삼지 않고 미국적 가치관을 차갑고 매정하게 여긴다고 보았다. 위에 언급했듯 프랑스 등 서구에는 전반적으로 이런 가치관이 있으며, 실제로 위의 출처에 실린 글을 보면 프랑스식 양육을 시행해보려니 주위에서 매정하게 볼 것 같고, 자신도 그런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경험담이 있다. 이런 관념은 제가(집안을 다스림)를 잘 해야 치국(나라를 다스림)을 잘 할 수 있다는 유교적 관념에 기초한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이런 정서가 양육비를 많이 들게 하여 저출산의 원인이 될 수 있어도, 고쳐야 하는가와는 별개의 문제다. 출처: 한국 가족의 가치와 의미(영문)
다른 종교의 가족관은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국내의 독실한 기독교도만 해도 아이들이 어두운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고, 아이들은 각각의 목적과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연구가 있다.# 국내 불교계에서는 필요한 수준의 지원은 인정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사랑과 공경으로 이어진 독립적인 인격이며, 자녀에 대한 과보호나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마을 공동양육'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였으며, 부모가 양육을 맡으면 기대가 과해진다고 하여 조부모가 양육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구의 경우 차이가 더 심해서, 자식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비혼 출산으로 대표되는 차이가 큰 도덕 관념을 보고 한국 부모가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결혼이 의무였던 시대의 가족관은 자식은 효도할 의무를, 부모는 가계를 이어줄 의무를 가졌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훌륭히 가르치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든가, 아버지에게는 가장이라는 지위가 부여되어 가족을 통솔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과거에는 이런 제도가 큰 경제적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자식들은 수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한 희생과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니 은연 중 이런 인식을 받아들여 결혼과 육아란 부모가 수많은 의무를 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식을 키우려다보니 양육비는 비싸고, 구직 경쟁도 치열하다.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불안해지다보니 자식에게 많은 돈을 쏟아붓거나, 아예 결혼부터 기피하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여 누릴 것도 많아지다 보니 부모의 책임을 지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이는 '내 자식이 효도를 해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다시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한국에서 부모가 될 사람은 서구나 일본에 비해 높은 수준의 헌신에 기반한,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는' 책임감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한국학 교수인 클락 W. 소렌슨 교수는 미국 부모들은 자식들이 감정적으로 불구가 되는 것과 스스로 못 해내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식에게 매달리지 않으며, 한국적 가족관을 두고 이런 정신적 건강함에 악영향을 끼쳐 유해하게 여길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한국 부모들은 자율을 가치로 삼지 않고 미국적 가치관을 차갑고 매정하게 여긴다고 보았다. 위에 언급했듯 프랑스 등 서구에는 전반적으로 이런 가치관이 있으며, 실제로 위의 출처에 실린 글을 보면 프랑스식 양육을 시행해보려니 주위에서 매정하게 볼 것 같고, 자신도 그런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경험담이 있다. 이런 관념은 제가(집안을 다스림)를 잘 해야 치국(나라를 다스림)을 잘 할 수 있다는 유교적 관념에 기초한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이런 정서가 양육비를 많이 들게 하여 저출산의 원인이 될 수 있어도, 고쳐야 하는가와는 별개의 문제다. 출처: 한국 가족의 가치와 의미(영문)
다른 종교의 가족관은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국내의 독실한 기독교도만 해도 아이들이 어두운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고, 아이들은 각각의 목적과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연구가 있다.# 국내 불교계에서는 필요한 수준의 지원은 인정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사랑과 공경으로 이어진 독립적인 인격이며, 자녀에 대한 과보호나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마을 공동양육'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였으며, 부모가 양육을 맡으면 기대가 과해진다고 하여 조부모가 양육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구의 경우 차이가 더 심해서, 자식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비혼 출산으로 대표되는 차이가 큰 도덕 관념을 보고 한국 부모가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4.2.1. 부모의 간섭[편집]
앞서 언급한 부모의 책임이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는 선에서 지켜졌다면, 저출산이 유발되더라도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기며 행복해했을 것이다.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된다.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지위에 부모들이 너무 집착하거나, 자신의 관념을 자식의 의사에 반하여 투영하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생 2자녀 특히 1자녀 집안에서 성장한 자녀는 부모와 과도하게 밀착한 환경에서 자랐다. 이들 중 1990년대생의 경우 과잉보호+경제호황과 맞물린 상태에서 자라왔기에 이들은 윗세대에 비해 환경요건이 매우 나은 편이다. 간혹 맞벌이 부부인 부모에게서 성장하거나, 결손가정, 방치된 환경에서 성장한 케이스도 존재하나 대부분의 자녀가 부모와 과잉 밀착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형제가 여러명인 환경에서 자란 그 부모세대는 1인 혹은 2인인 자기 자녀에게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쏟아부었다. 이후 자녀가 20세, 30세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는 자녀의 인생에 참여, 간섭하기 시작하였고, 자녀의 연애 문제, 결혼 문제에까지 관여, 간섭한다. 30대, 40대인 성인 자녀의 사생활까지도 통제하는 부모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30대, 40대가 되도록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해서 생활하는 자녀들의 존재가 미국과 유럽은 1980년대, 일본은 2000년대부터 사회 문제가 되어왔다. 중화권의 홍콩, 싱가포르, 대만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그런데 서구와 일본, 중국[29]은 한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는 이런 경향이 약해 그나마 한국보단 출산율이 높다. 자녀들 역시 부모의 피해의식에 입각한 무리한 요구, 눈높이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고 직접 생계에 뛰어드는 것보다, 부모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면서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30] 자녀들로서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면서 불편함, 경제적 문제, 고생을 감수하는 것보다, 20살이 넘더라도 부모의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편리하게 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청년층 스스로 도전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취직, 구직문제 외에도 결혼, 연애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또한 애초에 꿈 자체가 없는 것도 있지만 설령 꿈이 있더라도 경기 침체, 계층 이동이 경색된 상황에서는 리스크만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수저가 아니라면 가정까지 파탄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부모 세대도 자본 가지고 어설프게 새로운 도전을 했다가 말아먹는 판국에, 부모의 지원 없이 한 번 혼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복구가 매우 어렵고, 노인빈민율을 고려했을 때 자신은 부모 세대만큼의 노후 보장조차도 기대할 수 없다. 마마보이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유교사상과 가부장제 가치관에 따라 결혼은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인습적 가치관이 20세기 이후에도 존재하게 되었다.[31] 따라서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 하면 결혼조차 힘들었고, 함께 산다고 해도 경제적 문제 등으로 찢어지거나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부모도 자신의 하나뿐인, 둘뿐인 자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자녀의 인생에 과도하게 개입했고, 일부는 성인이 된 뒤에도 자기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자녀 역시 부모의 지원을 거부하고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보다, 부모의 말대로 움직이면 편하다는 것을 인식하여 굳이 부모의 뜻을 거스르려 들지 않는다. 부모의 과도한 간섭으로 헤어진 커플의 존재, 부모의 과잉보호로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성인의 등장은 결혼률과 출산율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쳐왔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생 2자녀 특히 1자녀 집안에서 성장한 자녀는 부모와 과도하게 밀착한 환경에서 자랐다. 이들 중 1990년대생의 경우 과잉보호+경제호황과 맞물린 상태에서 자라왔기에 이들은 윗세대에 비해 환경요건이 매우 나은 편이다. 간혹 맞벌이 부부인 부모에게서 성장하거나, 결손가정, 방치된 환경에서 성장한 케이스도 존재하나 대부분의 자녀가 부모와 과잉 밀착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형제가 여러명인 환경에서 자란 그 부모세대는 1인 혹은 2인인 자기 자녀에게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쏟아부었다. 이후 자녀가 20세, 30세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는 자녀의 인생에 참여, 간섭하기 시작하였고, 자녀의 연애 문제, 결혼 문제에까지 관여, 간섭한다. 30대, 40대인 성인 자녀의 사생활까지도 통제하는 부모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30대, 40대가 되도록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해서 생활하는 자녀들의 존재가 미국과 유럽은 1980년대, 일본은 2000년대부터 사회 문제가 되어왔다. 중화권의 홍콩, 싱가포르, 대만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그런데 서구와 일본, 중국[29]은 한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는 이런 경향이 약해 그나마 한국보단 출산율이 높다. 자녀들 역시 부모의 피해의식에 입각한 무리한 요구, 눈높이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고 직접 생계에 뛰어드는 것보다, 부모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면서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30] 자녀들로서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면서 불편함, 경제적 문제, 고생을 감수하는 것보다, 20살이 넘더라도 부모의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편리하게 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청년층 스스로 도전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취직, 구직문제 외에도 결혼, 연애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또한 애초에 꿈 자체가 없는 것도 있지만 설령 꿈이 있더라도 경기 침체, 계층 이동이 경색된 상황에서는 리스크만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수저가 아니라면 가정까지 파탄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부모 세대도 자본 가지고 어설프게 새로운 도전을 했다가 말아먹는 판국에, 부모의 지원 없이 한 번 혼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복구가 매우 어렵고, 노인빈민율을 고려했을 때 자신은 부모 세대만큼의 노후 보장조차도 기대할 수 없다. 마마보이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유교사상과 가부장제 가치관에 따라 결혼은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인습적 가치관이 20세기 이후에도 존재하게 되었다.[31] 따라서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 하면 결혼조차 힘들었고, 함께 산다고 해도 경제적 문제 등으로 찢어지거나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부모도 자신의 하나뿐인, 둘뿐인 자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자녀의 인생에 과도하게 개입했고, 일부는 성인이 된 뒤에도 자기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자녀 역시 부모의 지원을 거부하고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보다, 부모의 말대로 움직이면 편하다는 것을 인식하여 굳이 부모의 뜻을 거스르려 들지 않는다. 부모의 과도한 간섭으로 헤어진 커플의 존재, 부모의 과잉보호로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성인의 등장은 결혼률과 출산율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쳐왔다.
4.2.2. 혼외출산 기피[편집]
전문가 중에는 서구와 다르게 한국인들은 눈에 띄게 결혼이 있어야 자식을 가지는 습관이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혼외출산을 권장하면 저소득층이 자녀를 많이 두어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게 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저출산의 원인을 기계적으로 두고 보면 꽤 중요한 원인으로 취급된다.
한국은 OECD평균보다는 혼인율이 높은데도 출산율이 낮으며, 이런 상황에서도 혼인율을 올리는 것이 저출산 극복 방안으로 여겨질 정도다. 서양에서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처럼 동거 중에 자식을 가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서구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한다는 주장이 이 문서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결혼하지 않고 자식을 낳을 권리를 포함한다. 핀란드, 에스토니아 같이 학업 성취도가 한국과 비슷한 서구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도덕이 중시되는 나라에서는 혼외 출산은 어렵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일본, 중동권의 국가 수준으로 혼외 출산 비율이 낮은데, 그 중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하여 OECD국가 중 가장 혼외 출산 비율이 낮다.# 다만 그렇다고 혼외 출산을 장려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도 반대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신 모든 계층에서 결혼과 양육을 쉽게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법적으로도 혼외출산을 어렵게 하는데, 여성이 정자기증을 받으려면, 법적인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곧 국가 정책으로도 혼인을 강요한다고밖에 보이는 것. 일본도 정자기증을 통한 임신 및 출산은 합법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후지타 사유리가 이렇게 해서 아들을 낳았다.
한국은 OECD평균보다는 혼인율이 높은데도 출산율이 낮으며, 이런 상황에서도 혼인율을 올리는 것이 저출산 극복 방안으로 여겨질 정도다. 서양에서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처럼 동거 중에 자식을 가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서구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한다는 주장이 이 문서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결혼하지 않고 자식을 낳을 권리를 포함한다. 핀란드, 에스토니아 같이 학업 성취도가 한국과 비슷한 서구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도덕이 중시되는 나라에서는 혼외 출산은 어렵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일본, 중동권의 국가 수준으로 혼외 출산 비율이 낮은데, 그 중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하여 OECD국가 중 가장 혼외 출산 비율이 낮다.# 다만 그렇다고 혼외 출산을 장려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도 반대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신 모든 계층에서 결혼과 양육을 쉽게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법적으로도 혼외출산을 어렵게 하는데, 여성이 정자기증을 받으려면, 법적인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곧 국가 정책으로도 혼인을 강요한다고밖에 보이는 것. 일본도 정자기증을 통한 임신 및 출산은 합법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후지타 사유리가 이렇게 해서 아들을 낳았다.
4.3.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편집]
소득이 대한민국 수준이거나 그보다 높은 국가에서, 일가정 양립을 쉽게 만든 스웨덴 같은 나라들 만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었다. OECD는 한국 저출산의 가장 큰 요인으로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꼽는다. # 한국에서는 기업에서 출산, 육아 휴가로 인한 빈 자리를 채울 효과적인 대책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
4.3.1. 출산휴가[32]와 출산여성 해고 문제[편집]
김광수경제연구소 김광수 소장과 PD수첩 인터뷰 - 저출산 대책(2014.12.29) |
경제활동에서도 전체 맞벌이 가구 비율은 50%대로 진입하는 것에 반해(이것 또한 현재 초혼하는 청년 세대로 보면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육아 휴직자의 5%정도만이 남성 육아 휴직으로 여성에게 경력 단절 및 육아 부담이 전가 된 상황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이 사회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고자 하거나 개인화된 사회에서 경제적 안정을 유지 하기 위해서는 출산 기피로 귀결되기 쉽다.
4.4. 전통적 가족관에 대한 반감[편집]
4.4.1. 강요되는 성 역할에 대한 반감[편집]
성 평등을 지향하는 현대의 대한민국에도 가부장제의 잔재는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남아 있긴 하다. 비혼주의자나, 딩크족이 늘어나는 이유가 된다.
여성들은 가부장제로 보아왔던 손해를 꺼리며 결혼을 기피한다. 맞벌이 여성들의 경우 남편보다 더 오랜 시간 집안일을 한다는 통계 자료가 말해준다. 아직도 가사와 육아에서는 여성의 의무가 조금 더 강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안 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경제와 육아가 나누어져 있었기에 이런 노력을 개인의 일로 받아들였지만, 현재의 젊은 여성들은 이를 이혼, 비혼, 비출산으로 거부한다. 결혼을 원하는 여성들도 집안일을 회피하는 남편이나 며느리 도리를 요구하는 시가를 만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집안일에 대해서는 외벌이 집안마저도 가사분담은 여성이 더한다는 이야기도 있기에 여성들도 굳이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된 통계청에서 12000가구 대상 27000명 대상으로 한 통계에 따르면 맞벌이의 경우 여성 가사 시간 3시간 13분(193분), 남성 41분으로, 4.7배 정도로 나타났다.[33] 여성 외벌이의 경우에도 여성 가사 시간 2시간 39분(159분), 남성 가사시간 1시간 39분(99분)으로 오히려 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강요되는 성역할로 집안노동을 과도하게 떠안을 리스크나 경력단절의 위험(15-54세 기혼여성 37.5% 경력단절 경험*)을 감수해가며 결혼을 할 필요성을 특히 애를 낳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남성들의 경우 능력, 연봉으로 대표되는 부양력에 대한 압박이 많은 편이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가 남아있는 집인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이 기혼여성의 재량시간 활용과 시간관리 실태연구의 통계 자료를 보면 맞벌이 부부일지라도 일주일 평균 하루 유급노동시간은 남자가 411분, 여자가 327분으로 남자가 1.26배 이상 더 많다. OECD 국가별 노동시간 순위에서도 1,2위를 다툴만큼 열악한 한국의 근로 환경에 시달리고 있는게 다수의 남성 근로자들인데, 이는 맞벌이 여성들의 이직율과 월급 하락 등을 비추어볼 때 남성에게 더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남성들은 더 많은 경제적 의무와 가사와 육아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지라는 압박을 받게 되었고 남자가 집안을 잇는다는 관점에서 탈피하고 외동인 여성들이 늘어남으로서 처가살이에 대한 압박 또한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을 찾는다. 한국인의 76%는 육아에 전념하는 아빠를 루저로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으며, 이는 다른 주요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인도나 브라질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기사
2000년대까지만 해도 사랑 낭만주의가 한국에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로 소비된지 겨우 10여년 남짓 지난데다가, 과거 산업화세대로 불리던 세대들이 아직 현역이거나 생존해 있었기에 억지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산업화 세대의 퇴장 및 사망으로 환경이 바뀐 2010년대에 와서는 점차적으로 가부장제 역할 강요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남녀 모두에게서 기존의 성 역할을 거부, 회피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일본은 1980년대 부터, 한국은 2000년대 부터 연애나 결혼에 관심이 없는 초식남 들이 계속 늘어왔다. 또한 오타쿠로 불리는 유형도 급격히 확산되었다. 초창기에는 이들을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변명 정도로 취급하였다. 이들은 연애시장, 결혼시장에서 자발적으로 나가주었다.[34] 이성과의 연애나 결혼, 그 전에 인간관계에 느끼는 스트레스를 참느니, 자신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애시장 결혼시장의 남초가 해소되진 않았는데, 여성들 또한 비연애, 비혼 비출산 성향이 심해졌기 때문. 근본적인 원인은 결혼적령기의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에 비해 거의 20%정도 더 많기 때문이다(...). 80년대 여아 낙태, 1가구 1자녀 장려삽질정책 때문에 출산률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80-90년대에 남아 선호로 인해 여아 낙태 문제가 심각하였기에 결혼적령기 여성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이런 성비 불균형에 따라 자연스레 국제결혼 건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속도도 가팔라지고 있다. 다만 현재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혜택들로 여아 선호 사상이 더 확산되어 어야가 더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에, 10년 이내에는 반대로 상황이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여성들은 가부장제로 보아왔던 손해를 꺼리며 결혼을 기피한다. 맞벌이 여성들의 경우 남편보다 더 오랜 시간 집안일을 한다는 통계 자료가 말해준다. 아직도 가사와 육아에서는 여성의 의무가 조금 더 강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안 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경제와 육아가 나누어져 있었기에 이런 노력을 개인의 일로 받아들였지만, 현재의 젊은 여성들은 이를 이혼, 비혼, 비출산으로 거부한다. 결혼을 원하는 여성들도 집안일을 회피하는 남편이나 며느리 도리를 요구하는 시가를 만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집안일에 대해서는 외벌이 집안마저도 가사분담은 여성이 더한다는 이야기도 있기에 여성들도 굳이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된 통계청에서 12000가구 대상 27000명 대상으로 한 통계에 따르면 맞벌이의 경우 여성 가사 시간 3시간 13분(193분), 남성 41분으로, 4.7배 정도로 나타났다.[33] 여성 외벌이의 경우에도 여성 가사 시간 2시간 39분(159분), 남성 가사시간 1시간 39분(99분)으로 오히려 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강요되는 성역할로 집안노동을 과도하게 떠안을 리스크나 경력단절의 위험(15-54세 기혼여성 37.5% 경력단절 경험*)을 감수해가며 결혼을 할 필요성을 특히 애를 낳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남성들의 경우 능력, 연봉으로 대표되는 부양력에 대한 압박이 많은 편이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가 남아있는 집인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이 기혼여성의 재량시간 활용과 시간관리 실태연구의 통계 자료를 보면 맞벌이 부부일지라도 일주일 평균 하루 유급노동시간은 남자가 411분, 여자가 327분으로 남자가 1.26배 이상 더 많다. OECD 국가별 노동시간 순위에서도 1,2위를 다툴만큼 열악한 한국의 근로 환경에 시달리고 있는게 다수의 남성 근로자들인데, 이는 맞벌이 여성들의 이직율과 월급 하락 등을 비추어볼 때 남성에게 더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남성들은 더 많은 경제적 의무와 가사와 육아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지라는 압박을 받게 되었고 남자가 집안을 잇는다는 관점에서 탈피하고 외동인 여성들이 늘어남으로서 처가살이에 대한 압박 또한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을 찾는다. 한국인의 76%는 육아에 전념하는 아빠를 루저로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으며, 이는 다른 주요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인도나 브라질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기사
2000년대까지만 해도 사랑 낭만주의가 한국에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로 소비된지 겨우 10여년 남짓 지난데다가, 과거 산업화세대로 불리던 세대들이 아직 현역이거나 생존해 있었기에 억지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산업화 세대의 퇴장 및 사망으로 환경이 바뀐 2010년대에 와서는 점차적으로 가부장제 역할 강요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남녀 모두에게서 기존의 성 역할을 거부, 회피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일본은 1980년대 부터, 한국은 2000년대 부터 연애나 결혼에 관심이 없는 초식남 들이 계속 늘어왔다. 또한 오타쿠로 불리는 유형도 급격히 확산되었다. 초창기에는 이들을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변명 정도로 취급하였다. 이들은 연애시장, 결혼시장에서 자발적으로 나가주었다.[34] 이성과의 연애나 결혼, 그 전에 인간관계에 느끼는 스트레스를 참느니, 자신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애시장 결혼시장의 남초가 해소되진 않았는데, 여성들 또한 비연애, 비혼 비출산 성향이 심해졌기 때문. 근본적인 원인은 결혼적령기의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에 비해 거의 20%정도 더 많기 때문이다(...). 80년대 여아 낙태, 1가구 1자녀 장려
4.4.2. 가임기 여성들의 급격한 의식변화[편집]
저출산이 문제되고 있는 시기의 가임기 여성들은 결혼을 '여성의 삶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았던 시대'가 아닌 남성들과 동등하게 '고등교육과 사회적 성공에 대한 야심을 주입받고 자란 세대'이다. 실제로 이들의 대학 진학율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적을 보면 남성들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으며 일부 지표는 앞서기도 한다. 에코세대는 극심한 성비불균형을 겪었던 세대이지만 동시에 10년 좀 넘는 시간동안 빠르게 성비불균형이 해소될 만큼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달라졌던 시대이기도 하다.
또 의식변화로 인해 결혼,임신,출산,육아를 겪는 순간 일터에서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것을 깨닫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남자 형제들과 동등하게 서포트받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까지 출산, 육아에 투자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경력단절 문제에 관해선 거의 해소된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2018년 통계청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고용률은 기혼남성의 고용률보다 28%p 낮게 집계되어 남성 81%에 비해 53.4%에 불과하게 나타났으며[35] 15~54세 기혼여성 중 경력단절 경험비율이 37.5%로 나타났다.* 경력단절만 집계했는데 전 취업여성 중 1/3넘게 경험했다고 나온 것. 전체적인 경력 불이익까지 고려하면 퍼센티지가 훨씬 높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다가 어찌저찌 결혼시기를 놓쳤지만 커리어는 빛나는 여성을 골드미스라고 불렸는 데 이 용어는 약간 양가적인 뉘앙스가 있었다. 현재는 비혼 트렌드가 많아지면서 보통 그렇게 부르던 유별난 호칭인 노처녀 같은 용어도 사라져가는 중이기 떄문에 그냥 본인이 하고싶은 거 하고 살면서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여성도 많아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국의 경우 201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즘 열풍 때문에 '결혼은 필수',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을 뛰어넘어 아예 '결혼은 손해다' 라는 인식이 널리 펴져가고있는 상황이다. 페미니즘의 주축인 1990년대생의 경우 안그래도 결혼에 대해 호의적인 인식이 약간이라도 있는 바로 윗세대인 1980년대생에 비해 이들은 한 숱 더 떠 결혼에대한 생각이 없고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9년 기준으로 20대(1990년대생) 한국 여성 출산율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다. 해당 세대 출산 연령대인 20대 후반이 바로 윗세대에 비해 인구수가 많음에도 불구, 2년 연속으로 전년대비 10%대로 하락한 역사상 유래없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때문에 해당 연령대의 혼인인구가 예상보다 적을 수도 있다는게 중론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참고로 이시기 한국의 출산율은 전 세계 국가들 중 가장 낮은 0.92명'이다.
또 의식변화로 인해 결혼,임신,출산,육아를 겪는 순간 일터에서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것을 깨닫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남자 형제들과 동등하게 서포트받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까지 출산, 육아에 투자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경력단절 문제에 관해선 거의 해소된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2018년 통계청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고용률은 기혼남성의 고용률보다 28%p 낮게 집계되어 남성 81%에 비해 53.4%에 불과하게 나타났으며[35] 15~54세 기혼여성 중 경력단절 경험비율이 37.5%로 나타났다.* 경력단절만 집계했는데 전 취업여성 중 1/3넘게 경험했다고 나온 것. 전체적인 경력 불이익까지 고려하면 퍼센티지가 훨씬 높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다가 어찌저찌 결혼시기를 놓쳤지만 커리어는 빛나는 여성을 골드미스라고 불렸는 데 이 용어는 약간 양가적인 뉘앙스가 있었다. 현재는 비혼 트렌드가 많아지면서 보통 그렇게 부르던 유별난 호칭인 노처녀 같은 용어도 사라져가는 중이기 떄문에 그냥 본인이 하고싶은 거 하고 살면서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여성도 많아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국의 경우 201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즘 열풍 때문에 '결혼은 필수',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을 뛰어넘어 아예 '결혼은 손해다' 라는 인식이 널리 펴져가고있는 상황이다. 페미니즘의 주축인 1990년대생의 경우 안그래도 결혼에 대해 호의적인 인식이 약간이라도 있는 바로 윗세대인 1980년대생에 비해 이들은 한 숱 더 떠 결혼에대한 생각이 없고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9년 기준으로 20대(1990년대생) 한국 여성 출산율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다. 해당 세대 출산 연령대인 20대 후반이 바로 윗세대에 비해 인구수가 많음에도 불구, 2년 연속으로 전년대비 10%대로 하락한 역사상 유래없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때문에 해당 연령대의 혼인인구가 예상보다 적을 수도 있다는게 중론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참고로 이시기 한국의 출산율은 전 세계 국가들 중 가장 낮은 0.92명'이다.
4.4.3. 개인주의의 증가와 인간관계의 문제[편집]
지금 2·30대는 한두명의 형제를 가졌거나 외동자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생활고와 맞벌이 증가로 방치되어 자란 이들이 많다. 학교를 졸업하면 절친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을 상대할 일도 줄어들게 된다. 옛날에는 즐겁게 살려면 밖에서 부딪치며 인간 관계 스킬을 익혀야만 했지만, 1980년 이후의 미국, 유럽과 1989년 이후의 한국에서는 퍼스널 컴퓨터의 가정 보급과 인터넷 등 통신망 보편화로 다른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도 혼자서 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인터넷 취미 동호회나 친목단체 등 새로운 소통 채널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만남을 가져도 공통된 주제 이상의 깊은 대화는 나누기 힘들다.
핵가족 가정에서 자라 개인주의에 익숙한 세대 중 일부는 인간관계가 서툴다. 심한 경우 가족이나 친한 소수가 아닌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힘들어한다. 인간관계에 미숙한 사람들이 유의미하게 늘어난 만큼 연애나 결혼이 성사되는 일도 줄어들었다.
과거 고성장 저학력 시대에야 이런 악행에 반대되는 적절한 보상이 있어서 소위 정이나 가족주의처럼 전체주의적 악행을 견디고 자기합리화 해줄 요량이라도 있었지만 21세기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보상은 거의 없어졌는데 가족주의 악행들만 남아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으며, 고학력자가 늘어나고 정보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이런 가족주의 악행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런 가족주의적 악행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결혼과 출산같은 가족형성 과정을 부정적 혹은 무관심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핵가족 가정에서 자라 개인주의에 익숙한 세대 중 일부는 인간관계가 서툴다. 심한 경우 가족이나 친한 소수가 아닌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힘들어한다. 인간관계에 미숙한 사람들이 유의미하게 늘어난 만큼 연애나 결혼이 성사되는 일도 줄어들었다.
과거 고성장 저학력 시대에야 이런 악행에 반대되는 적절한 보상이 있어서 소위 정이나 가족주의처럼 전체주의적 악행을 견디고 자기합리화 해줄 요량이라도 있었지만 21세기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보상은 거의 없어졌는데 가족주의 악행들만 남아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으며, 고학력자가 늘어나고 정보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이런 가족주의 악행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런 가족주의적 악행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결혼과 출산같은 가족형성 과정을 부정적 혹은 무관심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4.4. 가치관의 다양화에 따른 대립과 갈등[편집]
가치관의 다원화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부류도 증가하였다.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불쾌감을 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아 생각처럼 고치기가 어려운 편이다.
내성적인 인간, 개인주의적 인간 등을 기업가 입장에서 배척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여기에 쾌락을 추구하거나 타협을 모르는 인간도 배척받는 일이 등장하고 있다. 보통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장은 피하려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존재했지만 이런 요인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존재해 왔다.[36]
서구는 19세기, 동아시아는 1980년대[37] 이후 각각 나라마다 개인주의가 사회에 보편화되고 어떤 양보나 타협을 거부하는 분위기도 확산된 상태에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며 삶의 목표로 삼는 유형의 인간도 눈에 띌 만큼 나타났기에 이들과 타인간의 사회적 갈등, 대립도 증가하고 있다. 마음에 안드는 이웃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도시 지역 일부와는 달리, 직장 생활과 학교 생활에서는 이런 유형의 인간들도 상대해야 된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한다면 사실상 하루종일 봐야 된다. 가치관이 전혀 다른데 따른 스트레스와 감정 대립에 개인주의적 가치관, 양보나 협상을 거부하는 것이 겹치면서 역시 취직에 대한 적극적 거부나 회피, 소극적인 회피, 그밖에 채용 기피나 거부 등의 현상도 등장하고 있다.
반대로 어떤 종교적인 신념, 어떤 도덕윤리적 믿음을 가진 인간이 다른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대립, 갈등을 일으키는 새로운 유형의 트러블메이커로 주목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면 자기만 그대로 지키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강요하거나, 거부할 경우 매장하려 든다던가,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타인, 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반하는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와 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는 종교나 사상 등에 대한 어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런 배려를 해야 될 이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은 도덕적으로 항상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서로 최대한 피하거나, 부딛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다소 갈등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중 한쪽이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여, 피하지 않는다면 대립,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양쪽 다 자신이 옳다는 어떤 사상적, 종교적인 확신을 가졌다면 대립과 갈등은 더욱 더 피할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성적 쾌락 외에도 감각적인 쾌락, 만족을 추구하려는 유형의 인간이 증가하고 있다. 개인주의 확산, 인간관계에 서투른 인간, 외동자녀나 2명의 자녀라서 부모가 자녀에 대한 집착수준의 애정, 형제자매 많은 가정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자란 한국기준 86세대 이상, 일본기준 단카이세대 이상 세대들의 피해의식과 열등감 등 이런저런 환경적 요인도 갖추어졌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는 것에 대한 어떤 인식이 부족하거나, 타인을 신경쓰지 않으려는 것이 늘고 있다. 그리고 쾌락 추구에 반해 책임감이나 결과는 회피하려는 현상도 증가하여 갈등, 대립을 지속, 확산시키고 있다.
게다가 중장노년들이 젊은 세대애게 "결혼해서 애기 많이 낳아라", "셋 이상 낳아라" 하는 말에 대해서도 젊은 세대 사이에 "저들은 우리를 출산하는 기계로밖에 보지 않는 것인가?"라는 반감이 생기는 것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내성적인 인간, 개인주의적 인간 등을 기업가 입장에서 배척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여기에 쾌락을 추구하거나 타협을 모르는 인간도 배척받는 일이 등장하고 있다. 보통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장은 피하려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존재했지만 이런 요인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존재해 왔다.[36]
서구는 19세기, 동아시아는 1980년대[37] 이후 각각 나라마다 개인주의가 사회에 보편화되고 어떤 양보나 타협을 거부하는 분위기도 확산된 상태에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며 삶의 목표로 삼는 유형의 인간도 눈에 띌 만큼 나타났기에 이들과 타인간의 사회적 갈등, 대립도 증가하고 있다. 마음에 안드는 이웃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도시 지역 일부와는 달리, 직장 생활과 학교 생활에서는 이런 유형의 인간들도 상대해야 된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한다면 사실상 하루종일 봐야 된다. 가치관이 전혀 다른데 따른 스트레스와 감정 대립에 개인주의적 가치관, 양보나 협상을 거부하는 것이 겹치면서 역시 취직에 대한 적극적 거부나 회피, 소극적인 회피, 그밖에 채용 기피나 거부 등의 현상도 등장하고 있다.
반대로 어떤 종교적인 신념, 어떤 도덕윤리적 믿음을 가진 인간이 다른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대립, 갈등을 일으키는 새로운 유형의 트러블메이커로 주목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면 자기만 그대로 지키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강요하거나, 거부할 경우 매장하려 든다던가,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타인, 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반하는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와 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는 종교나 사상 등에 대한 어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런 배려를 해야 될 이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은 도덕적으로 항상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서로 최대한 피하거나, 부딛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다소 갈등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중 한쪽이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여, 피하지 않는다면 대립,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양쪽 다 자신이 옳다는 어떤 사상적, 종교적인 확신을 가졌다면 대립과 갈등은 더욱 더 피할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성적 쾌락 외에도 감각적인 쾌락, 만족을 추구하려는 유형의 인간이 증가하고 있다. 개인주의 확산, 인간관계에 서투른 인간, 외동자녀나 2명의 자녀라서 부모가 자녀에 대한 집착수준의 애정, 형제자매 많은 가정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자란 한국기준 86세대 이상, 일본기준 단카이세대 이상 세대들의 피해의식과 열등감 등 이런저런 환경적 요인도 갖추어졌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는 것에 대한 어떤 인식이 부족하거나, 타인을 신경쓰지 않으려는 것이 늘고 있다. 그리고 쾌락 추구에 반해 책임감이나 결과는 회피하려는 현상도 증가하여 갈등, 대립을 지속, 확산시키고 있다.
게다가 중장노년들이 젊은 세대애게 "결혼해서 애기 많이 낳아라", "셋 이상 낳아라" 하는 말에 대해서도 젊은 세대 사이에 "저들은 우리를 출산하는 기계로밖에 보지 않는 것인가?"라는 반감이 생기는 것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4.4.5. 갈등, 감정소모가 싫어서 결혼과 연애를 기피하거나 포기[편집]
한국 사회는 점차 개인주의성향이 확산되어가는 중이고,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경제위기, 취직 문제 등 금전적인 여유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또한 결혼이나 연애 과정에서 겪는 다른사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양보 등 정서적 스트레스나 감정소모를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현상도 증가하고 있다. 개인주의 현상은 점점 늘어나는데 반해 상대방의 가족까지 배려해야 하는 시스템[38]은 아직 남아있는 편이다. 점차 자신과 생각, 조건에 맞지 않는 사람과 만나서 피곤하게 사느니 혼자 산다는 식의 가치관도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네 수준, 집안 수준, 우리 수준, 체면 등의 이유로 부모나 집안에서 이래저래 간섭해왔다. 집안의 간섭은 사라졌지만, 부모의 간섭과 친구의 간섭, 아는 언니, 아는 동생 등의 간섭과 참견은 여전한 편이다. 이런 참견과 간섭이 부담스러워서 혹은 상대방 부모와 가족, 친구, 지인 등의 간섭과 참견을 부담스러워하지만, 그런 간섭과 참견은 여전히 존재하는 편이다. 이런 간섭과 참견에 대한 부담감 또한 감정소모,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2018년 현재, 과거 고정관념이 있는 기성세대나 집안 어른들의 눈치가 보여서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표현할 뿐, 결혼 자체를 귀찮거나 번거롭게 여기는 현상, 그런 가치관 역시 개인주의의 확산과 함께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초기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다 = (직업, 안정된 직장, 경제력 문제 등 때문에) 진짜 마땅한 사람이 없다였는데, 점차 마땅한 사람이 없다 = 별로 결혼하고 싶지 않다, 결혼하기 싫다로 의미가 변해간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점점 개인주의화가 심화 되면서, 친척이나 싫은 사람, 맞지 않는 사람, 부담스러운 상대방과의 만남이나 접촉 자체를 서로 피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고, 혼자서도 즐길만한 것이 점차 다양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대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님을 봐야 별을 딴다고 만나야 뭐가 진전이 되는데, 일단 만나지 않으니 서로 부딛칠 일이 없다.생각 차이, 가치관 차이로 서로 스트레스도 안 받고 서로간에 윈윈.
이는 통계적으로 확인되는데 대한민국의 혼인건수는 2008년 기준으로 전년대비 5%씩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에 비례해 출산율도 급감하는 상황이다. 반대로 혼인여성을 기준으로 한 출산율은 출산 지원정책 이후 꾸준히 증가 2000년 1.7명에서 2016년에는 2.23명으로 현재같은 출산기피문화속에서는 올릴 수 있을만큼 올린 상황이다. 출처
이 경우 본인이 아예 결혼할 의사 자체가 없으므로, 상대방이나 누군가 어떤 조건을 갖춰도 결혼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출산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 정자기증이나 대리모로라도 자녀를 낳겠다 하는 의지가 없는 이상, 출산에 기여할 일 자체가 없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는 그 무엇도 장사 없다.
여기에 네 수준, 집안 수준, 우리 수준, 체면 등의 이유로 부모나 집안에서 이래저래 간섭해왔다. 집안의 간섭은 사라졌지만, 부모의 간섭과 친구의 간섭, 아는 언니, 아는 동생 등의 간섭과 참견은 여전한 편이다. 이런 참견과 간섭이 부담스러워서 혹은 상대방 부모와 가족, 친구, 지인 등의 간섭과 참견을 부담스러워하지만, 그런 간섭과 참견은 여전히 존재하는 편이다. 이런 간섭과 참견에 대한 부담감 또한 감정소모,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2018년 현재, 과거 고정관념이 있는 기성세대나 집안 어른들의 눈치가 보여서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표현할 뿐, 결혼 자체를 귀찮거나 번거롭게 여기는 현상, 그런 가치관 역시 개인주의의 확산과 함께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초기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다 = (직업, 안정된 직장, 경제력 문제 등 때문에) 진짜 마땅한 사람이 없다였는데, 점차 마땅한 사람이 없다 = 별로 결혼하고 싶지 않다, 결혼하기 싫다로 의미가 변해간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점점 개인주의화가 심화 되면서, 친척이나 싫은 사람, 맞지 않는 사람, 부담스러운 상대방과의 만남이나 접촉 자체를 서로 피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고, 혼자서도 즐길만한 것이 점차 다양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대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님을 봐야 별을 딴다고 만나야 뭐가 진전이 되는데, 일단 만나지 않으니 서로 부딛칠 일이 없다.
이는 통계적으로 확인되는데 대한민국의 혼인건수는 2008년 기준으로 전년대비 5%씩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에 비례해 출산율도 급감하는 상황이다. 반대로 혼인여성을 기준으로 한 출산율은 출산 지원정책 이후 꾸준히 증가 2000년 1.7명에서 2016년에는 2.23명으로 현재같은 출산기피문화속에서는 올릴 수 있을만큼 올린 상황이다. 출처
이 경우 본인이 아예 결혼할 의사 자체가 없으므로, 상대방이나 누군가 어떤 조건을 갖춰도 결혼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출산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 정자기증이나 대리모로라도 자녀를 낳겠다 하는 의지가 없는 이상, 출산에 기여할 일 자체가 없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는 그 무엇도 장사 없다.
4.5. 이중잣대와 불공정 거래에 대한 반발[편집]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늦어도 산업혁명 때부터, 미국은 1960년대부터 결혼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 포장하였다. 그러나 결혼은 여태 대부분 거래였다. 전근대 사회까지만 해도 나는 못해도, 나는 이 조건을 못 갖추었어도 너는 갖추어야 된다, 너는 해야 된다는 생각이 통하기는 했다. 그것을 종교적 권위나 도덕 윤리의 이름으로 미화하면 더욱 반발하기 어렵기는 했다. 실제로 서구는 한국보다 결혼율이 낮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독립된 인격으로 보아 혼외 출산 같은 것도 가능한 것이다.
나는 되지만(혹은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너는 안된다는 사고방식은,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반감과 불쾌감을 주게 된다. 개인주의나 인권, 권리 의식에 민감한 개인이나 지역일수록 그런 이중잣대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은 강하다. 이런 이중잣대스러운 말과 행동을 보이는 본인은 그것을 잘못이나 차별이라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을 더 악화시킨다.
정보력이 부족한 시대이거나 고정관념, 종교적 가치관, 인습이 지배하던 시대일수록 그런 고정관념이 일부 먹혀들었고, 윗사람이나 연장자의 권위에 의해서, 집안에서는 부모나 집안어른들의 지시에 의해 대부분 순응하였다. 나는 못해도, 나는 이 조건을 못 갖추었어도 너는 갖추어야 된다, 너는 해야 된다는 생각을 넘어서, 그 조건이 안 되는 사람, 그 조건대로 못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조롱, 심하면 매장이 있었다. 이런 것은 인간의 평등한 권리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런 것이 일부 통하거나 묵인되었고, 한쪽의 양보로 넘어가거나, 이 외에도 많은, 암암리에 강요되는 부조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인간에게는 공격이 가해졌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그런 것은 어림없는 일이 됐다. 양육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개인의 마음이고, 그 조건을 선택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조건에 대한 대가나, 비슷한 조건을 자신이 어느정도 갖추었다면 이중잣대나 불공정거래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은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시집이라는 이유로, 여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려는 인간들의 존재이다. 상대방, 혹은 상대방 부모에게 피해의식이 있다면, 다른 상대방에게 가하는 이중잣대나 요구사항이 더 심하고, 가혹해진다. 이를 가리키는 용어로 갑질이라는 신조어도 2010년대 들어 등장하였다.
나는 되지만(혹은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너는 안된다는 사고방식은,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반감과 불쾌감을 주게 된다. 개인주의나 인권, 권리 의식에 민감한 개인이나 지역일수록 그런 이중잣대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은 강하다. 이런 이중잣대스러운 말과 행동을 보이는 본인은 그것을 잘못이나 차별이라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을 더 악화시킨다.
정보력이 부족한 시대이거나 고정관념, 종교적 가치관, 인습이 지배하던 시대일수록 그런 고정관념이 일부 먹혀들었고, 윗사람이나 연장자의 권위에 의해서, 집안에서는 부모나 집안어른들의 지시에 의해 대부분 순응하였다. 나는 못해도, 나는 이 조건을 못 갖추었어도 너는 갖추어야 된다, 너는 해야 된다는 생각을 넘어서, 그 조건이 안 되는 사람, 그 조건대로 못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조롱, 심하면 매장이 있었다. 이런 것은 인간의 평등한 권리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런 것이 일부 통하거나 묵인되었고, 한쪽의 양보로 넘어가거나, 이 외에도 많은, 암암리에 강요되는 부조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인간에게는 공격이 가해졌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그런 것은 어림없는 일이 됐다. 양육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개인의 마음이고, 그 조건을 선택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조건에 대한 대가나, 비슷한 조건을 자신이 어느정도 갖추었다면 이중잣대나 불공정거래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은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시집이라는 이유로, 여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려는 인간들의 존재이다. 상대방, 혹은 상대방 부모에게 피해의식이 있다면, 다른 상대방에게 가하는 이중잣대나 요구사항이 더 심하고, 가혹해진다. 이를 가리키는 용어로 갑질이라는 신조어도 2010년대 들어 등장하였다.
4.6. 구시대적 공동체주의의 한계[편집]
알다시피 한국은 산업화가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최근 그리고 짧은 기간 내에 급속했기 때문에 농촌사회적 공동체의식의 색채가 강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래서 선진국과 비교하여 개인주의의 지수가 낮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다른 개인주의적 국가와 비교하여 출산율이 유의미하게 떨어짐에는 시민의식이 외적인 시스템을 못따라옴을 추리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강박적으로 중시여기는 가치 중 하나가 사회성인데, 인구밀집도가 높은 교실에서 그것을 훈육 받는 면은 베이붐시대나 구조적으로 다를 바 없고, 형제가 적다하더라도 대신 학교와 학원에서 인간관계 처세술을 장기간 학습한다. 다만 양극화 지수만 늘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성을 중시여김에도 사회의 기초인 가정이 황폐화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의식함에 따라 지나치게 남의 평가에 호응하려는 심리는 양극화 현상에 의해 좌절되고, 위축되어 상대적 박탈감으로 승화가 된다. 비관적 사고는 번식을 포기함으로서 되물림을 방지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강박적으로 중시여기는 가치 중 하나가 사회성인데, 인구밀집도가 높은 교실에서 그것을 훈육 받는 면은 베이붐시대나 구조적으로 다를 바 없고, 형제가 적다하더라도 대신 학교와 학원에서 인간관계 처세술을 장기간 학습한다. 다만 양극화 지수만 늘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성을 중시여김에도 사회의 기초인 가정이 황폐화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의식함에 따라 지나치게 남의 평가에 호응하려는 심리는 양극화 현상에 의해 좌절되고, 위축되어 상대적 박탈감으로 승화가 된다. 비관적 사고는 번식을 포기함으로서 되물림을 방지한다.
[1] 이 사람의 사생활은 외도 등으로 논란이 있다.#[2]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양육이 과도한 지출을 일으킨다는 부담감을 안게 되어 출산을 꺼리게 된다고 한다.[3] 원래 유교에서는 남자도 육아를 부담하고 절약을 중시하는 풍속이 있었다. 변질된 유교적 전통 문서 참조.[4] 실제 한국의 아이는 잉글랜드보다도 갖춘 것이 많으나 주관적 만족감은 알제리보다 낮다.# 다만 잉글랜드는 차브족들이 갖춘 것의 평균을 왕창 깎아먹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한국도 영국의 차브족 출산 정책을 따라한다면 영국보다 평균이 훨씬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5] 비교 성향이 없다면 사랑만 주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자식을 키울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못난 부모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6] 고졸, 지잡대, 월2백충, 9급충, 엘사, 편돌이, 노가다꾼, 등등[7] 북유럽은 ‘얀테의 법칙’이라는 사고관으로 모든 종류의 자랑을 금기시한다. 이에 따라 스웨덴에서는 선진국 중 출산율이 1명대 후반으로 높지만 개인의 발전을 막는다는 비판도 있다.[8] 틀딱, 라떼는 말이야, 개저씨 등 특정 세대에 대한 신조어를 만든 것도 이들이다.[9] 실제 서구의 여러 국가는 이정도는 아니라고 하는 설문조사가 있다.[10] 대졸자들 중 이 직종을 선택하는 사람은 매우 보기 힘든 것으로 알 수 있다. 위 직업도 사회에 필요하고 수요도 높은데 단순히 인식이 나쁘다는 점에서 비효율적 사교육비가 발생한다는 점이다.[11] 다만 미용과 요리의 경우는 비교적 덜 숙련된 인력으로 메꿔질 수 있다. [12] 20대 중후반 정도만 되도 니트족이나 백수가 좋게 보이기 힘들다.[13] 통계지표에서는 1주일에 1시간이라도 일을 하고 있다면 취업자로 분류해버린다. [14] 예를 들어 꽤 흔한 병인 우울증에 대한 586 이상 세대의 인식은 “당장 먹고살기 급하면 우울할 틈이 어디 있냐?" 정도이다.[15] 비슷한 상황이 성폭력 통계에도 나타난다. 성폭력 건수를 보면 보통 선진국에서 성폭력 사건이 더 많이 보고되는데, 선진국 시민들이 후진국 사람들에 비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더 많이 드러내서 그런 것이다.[16] #[17]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 2018년 현재 가사 분담은 기본적인 사고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오히려,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진출하자 자기보다 우월한 남성이 아니면 결혼할 메리트가 떨어진 것. 물론 이는 현재의 이야기일 뿐, 자신들의 부모 세대를 보고 자라온 현재의 젊은 여성들에게 있어 결혼의 이미지가 좋으리라 보기는 어렵다.[19] 일부 1980~90년대생 여성은 부모가 딸을 낳는 게 손해였음에도 자신을 낳아주었기 때문에, 출가외인(出嫁外人)이 되지 않으려고 결혼을 포기한다. 특히 90년대생은 더더욱 심하다.[20] 그래서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월급이 나오는 동시에 육아 휴직 등의 복지 제도가 잘 보장되는 공무원이 1등 신부감이 되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21] 당장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22] 예를 들자면, 학생일 경우 학교의 교사/교수, 직장인일 경우 일적으로 관계되는 사람과 같이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인간관계[23] 먼 곳의 사람과 경쟁하기 보다는 당장의 노동력이 필요한 농업 생활, 미약한 도시화와 서울 집중이 약해 경쟁 대상이 적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나머지는 아래의 경제적 요건에 설명이 되어 있다.[24] 의무적 결혼, 남아선호사상(아들을 낳기 위해 딸이 많아도 자식을 두려 했다고 한다.) 등이 있겠다.[25] 즉, 자기 몫의 생활비는 자기가 부담한다고 생각하면 된다.[26] 집이나 차를 사는 일이 대표적이다.[27] 한국적 정서로는 매정하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의 정서로는 자식이 어른스럽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길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물론 자식이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할 지경이면 부모에게 얹혀살 수 있다. #[28] 저출산의 장점은 자녀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데 있다. 하지만 한국(1.0)보다 출산율이 높은 일본(1.4), 에스토니아(1.7)# 같은 국가가 한국과 학업성취도가 비슷한 것은 한국의 교육이 비용 대비 비효율이지 않은가 하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그런 문제 제기가 있다.에스토니아, 일본[29] 1자녀 가정이 많아 이러한 경향이 뚜렷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중국 특유의 공산주의식 교육 때문에 부모에 의한 과잉보호가 덜하다. 게다가 학벌주의도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니다.[30] 의외로 가정환경이 열악한 가정 출신들이 빨리 탈선하는 것 못지않게, 빨리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일이 많은 점도 주목해볼 만 하다.[31] 한국은 헌법상 만 18세, 다른 각국도 차이는 존재하나 18세~20세가 넘어가면 자국 헌법상 부모의 허락, 간섭이 없어도 스스로 결혼을 선택할 수 있다.[32] 출산전후휴가에 관한 상세는 유급 휴가 문서의 '임산부의 휴가' 항목으로.[33] 다만 이는 마찬가지로 남성에게 열악하게 적용되는 사회의 악습 때문이기도 하다. [34] 가부장제 가치관, 인습이 덜한 대도시나 신도시 지역에서 그런 경향이 강한 편이다.[35] 이는 기혼 여성자체가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대다수 한국 기업에게는 곧 사라질 인력으로만 취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의도적으로 기혼여성을 계약직으로 전환시키거나 아예 기용하지 않으려는 악덕기업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이다.[36] 이런 것을 코치하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37] 한국은 2000년대.[38] 그동안 한쪽에서만 받아 온 간섭을 이제부터 양쪽에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