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6대 국왕 康王 강왕 | ||
시호 | 강왕(康王) | |
연호 | 정력(正曆) | |
성씨 | 대(大) | |
휘 | 숭린(崇隣) | |
왕자 | 대원유(大元瑜), 대언의(大言義), 대명충(大明忠) | |
생몰연도 | 음력 | ? ~ 809년 |
재위기간 | 음력 | 794년 ~ 809년(15년)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문왕 대흠무가 붕어한 후 두 명의 왕(폐왕 대원의, 성왕 대화여)이 폐위 혹은 단명하는 등 짧은 재위 시기로 발해는 혼란에 빠져 있으나, 강왕 즉위 후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아[1] 국력을 발전시켰다. 재위 중 당나라와 교류하였고 일본과 적극적인 교류를 진행시켰다.
선왕이 조카인 성왕 대화여인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조카가 죽은 후 삼촌이 왕위에 오를 일은 없다. 성왕이 어린 나이에 자식없이 요절한 것도 있지만 무엇인가 일이 있었던 모양. 다만 기록이 없다보니 명확하지 않을뿐. 강왕의 출생년도는 알 수 없으나 정효공주가 757년생이라 하니 그 전이나 그 즈음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세 아들이 모두 왕위에 올라 신라의 경문왕[2]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세 아들들 모두 10년 안에 죽고 말았다.
선왕이 조카인 성왕 대화여인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조카가 죽은 후 삼촌이 왕위에 오를 일은 없다. 성왕이 어린 나이에 자식없이 요절한 것도 있지만 무엇인가 일이 있었던 모양. 다만 기록이 없다보니 명확하지 않을뿐. 강왕의 출생년도는 알 수 없으나 정효공주가 757년생이라 하니 그 전이나 그 즈음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세 아들이 모두 왕위에 올라 신라의 경문왕[2]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세 아들들 모두 10년 안에 죽고 말았다.
[1] 25년간 왕이 6번 바뀌는 혼란기에 15년간 재위하였다. 의외의 사실인데 재위 기간은 혼란기를 끝마친 선왕(12년)보다도 길었다.[2] 또는 프랑스의 앙리 2세. 여기랑은 세 아들이 모두 후손이 없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