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村基之 (1931년 ~ )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다섯살 무렵이던 1930년대 일본에서 조선인이 차별당하는 모습을 본 뒤 조선을 돕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무렵 도쿄수의대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미국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1968년 여름 첫 한국 방문 때 청계천 빈민가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1980년대 중반까지 50여 차례 서울을 오가며 빈민 선교를 했었다.
2006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청계천 사진 등 5천여점을 서울시의 청계천문화관에 기증했다.
2012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에 무릎을 꿇고 속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전쟁 무렵 도쿄수의대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미국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1968년 여름 첫 한국 방문 때 청계천 빈민가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1980년대 중반까지 50여 차례 서울을 오가며 빈민 선교를 했었다.
2006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청계천 사진 등 5천여점을 서울시의 청계천문화관에 기증했다.
2012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에 무릎을 꿇고 속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