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1966년 4월 15일 (71~72세) |
불명 | |
묘소 | 평양직할시 룡성구역 재북인사릉 |
본관 | |
재임기간 | 제2대 내무부 차관 |
1949년 1월 5일 ~ 1949년 3월 21일 | |
제3대 내무부 장관 | |
1949년 3월 21일 ~ 1950년 2월 7일 | |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3대 내무부 장관.
2. 생애[편집]
1894년 경상남도 초계군 양동면 유하촌(現 합천군 초계면 유하리)에서 태어났다.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한국민주당에서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6월 1일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49년 1월부터 같은 해 3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역임하였는데 이 때문에 1949년 1월 대한민국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같은 해 3월부터 1950년 2월까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리하여 1966년 북한에서 사망하였다.
8.15 광복 이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한국민주당에서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6월 1일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49년 1월부터 같은 해 3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역임하였는데 이 때문에 1949년 1월 대한민국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같은 해 3월부터 1950년 2월까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리하여 1966년 북한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