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근(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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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근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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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등번호 26번
박재천
(1982)
김봉근
(1984)
유고웅
(1985~1988)
MBC 청룡 등번호 37번
결번
김봉근
(1985)
이재홍
(1986~1989)
청보 핀토스 등번호 30번
결번
김봉근
(1986~1987)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7번
팀 창단
김봉근
(1988~1989)
허정욱
(1990~1994)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27번
팀 창단
김봉근
(1990~1992)
이동석
(199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9번
결번
김봉근
(1999~2000)
유남호
(2001~2003)
추평호
(1995~1997)
김봉근
(2001~2003)
kt wiz 등번호 78번
팀 창단
김봉근
(2014~2015)
김일경
(2016)

이름
김봉근(金奉根)
생년월일
출신지
학력
함평향교초 - 숭의중 - 상문고등학교 - 동국대학교
포지션
투타
프로입단
소속팀

1. 소개2. 경력
2.1. 선수 시절2.2. 지도자 시절
3. 평가

1. 소개[편집]

2. 경력[편집]

2.1. 선수 시절[편집]

1984년MBC 청룡에서 데뷔, 1992년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커리어를 마쳤다. 1984년 9승 7패 2세이브 ERA 2.52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이후로는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2.2. 지도자 시절[편집]

은퇴 직후부터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투수코치로 더 유명해지게 된다. 처음에는 롯데(1993-1998), 그 다음엔 삼성(1999-2000), 그리고 김성한 감독 밑에서 기아 타이거즈코치를 맡았다.

(이하 내용은 김 코치의 스포츠 2.0의 인터뷰를 본 후 그 기억만 가지고 쓴 글이라 다소 편향적일 수 있음)

투수코치로서 김봉근 코치는 주로 초반에 구속을 높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해 오던 폼을 자신의 폼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되 구속을 높일 수 있고 부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투수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을 해 주면 고교 때보다 보통 2~3km/h, 최고 5km/h 정도까지 구속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며, 코치로 처음 활동한 1990년대 초반부터 체인지업[1]에 크게 관심을 보였고 대부분의 투수들에게 체인지업을 꼭 가르친다고 한다.

구단 입단 후에 들어온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직구 구속을 높임으로서 파이어볼러들을 양성하고, 손목이나 팔꿈치, 어깨 등에 무리가 덜 가고 직구 구속 저하와 영향이 적은 체인지업을 가르치는 것인데, 직구 - 체인지업의 두 구종만으로도 수싸움만(빠른공 - 느린공) 잘 해 주어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투수의 부상을 덜 수 있다는 점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또한 1990년대부터 투수의 부상방지를 위해[2] 투구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였고, 그로 인해 투수혹사하는 유형의 감독들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 김성한 감독 시절 (2001-2001년) KIA의 투수코치로 있다가, 투수혹사하는 김성한과 충돌을 빚고 SK로 가서 조범현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했다. 이후 조범현 SK감독이 물러나자 다시 KIA로 돌아와 서정환 감독 밑에서 투코를 했으나, 이 때(2007년) 야인으로 있던 조범현 감독을 개인적 친분으로 KIA의 배터리 코치로 시즌중 영입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후 서정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났고, 야구인들의 예상대로 조범현 감독이 기아 감독으로 부임하자 계속 함께 갈 것 같았으나, 2009년 시즌 중 2군으로 좌천되었고, 2009년 기아 우승 직후 조범현 감독에 의해 해임된다. 모종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나 확실한 건 두 사람만 아는 것이라서..

KIA 타이거즈 팬들은 KIA의 암흑기에 서정환 감독을 깔 때 같이 까는 경향이 강하지만 꼴찌를 한 시즌에도 기아의 마운드는 리그 4위 수준의 준수한 마운드였으며, 09년에 보여준 기아 팜의 수많은 파이어볼러들에게 있어 김봉근 코치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간과하는 것 같긴 하다. 기아 팬들이 원하는대로 김봉근 코치가 나가니 데스기모토가 오더라

야인으로 있다가 2013년 10월 7일 kt wiz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조범현과 함께 한 것이 이번이 몇번째냐??

그러나 2015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9년 강릉영동대 코치를 맡게 됐다.

3. 평가[편집]

위와 같이 젊은 투수들을 성장시키는 데는 어느정도 능력이 있는 듯 하나 시즌 중 투수운용은 안습인 측면이 있어서 평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1] 1990년대 초반에는 주로 속구-슬라이더 형태, 또는 속구-커브 류의 투피치가 대세였다.[2] 김봉근 코치 자체가 부상으로 선수 경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투수에 대한 보호가 각별하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