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1903)

역사 raw
대문 랜덤 문서 최근 토론
동명이인 독립운동가에 대한 내용은 김마리아(1891) 문서를 참고해 주세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김마리아
金瑪利亞 | Mariya Elenovna Kim[1]
김마리아(좌)와 아들 이인종(우)
출생
한성부 성동방 대구면 송천리
(現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망
1970년 2월 10일 (향년 66세)
본관
별칭
호(號): 추산(秋山)
아명(兒名): 김수란(金秀蘭)
부모
배우자
자녀
장남 이부흥, 차남 이인종
학력
국방대학교 (졸업 / 1기)
종교
군복무
상훈
건국포장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2.1. 사후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903년 생으로, 러시아로 귀화한 교포 경주 김씨 김미하일로비치(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딸[2]로, 마상 쌍권총 실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만주에서 활동하다 일본제국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적이 있고, 이때의 후유증으로 병을 얻게 되었다.

1925년 8월에 후일 광복군 참모장,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이 되는 이범석과 만나 결혼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편 이범석과 이기붕이 권력 암투를 벌일 때 이를 지원하며 이기붕의 아내인 박마리아[3]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싸움에서 밀려 이범석이 실각하자 직접 경무대로 가서 이승만과 말다툼을 벌였다는 일화가 있다.

1970년, 만성 당뇨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2.1. 사후[편집]

1977년에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1] 러시아명[2] 1901년생이라는 기록도 있으며 김미하일로비치가 1896년생인데 어떻게 딸인지 가계 조사가 필요하다[3] 이 쪽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여성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