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김두석은 1915년 11월 17일 경상남도 마산시 성호동에서 독실한 기독교 교인인 부친 김규태와 모친 허영 사이에 태어났다. 그녀는 부산 동래일신여학교에 입학했고, 1930년 우등으로 졸업했다.이후 마산 의신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37년 9월 신사참배를 강요받자 이에 반발하여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교사직에서 해임된 그녀는 1938년 평양여자신학원 교사를 맡으면서 1940년 5월 17일부터 1941년 7월 30일까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대한 거부와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반대하다가 5회에 걸쳐서 구금당하였다. 1942년 8월 23일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식민지 탄압정책이 가중되었을 때 신사참배요구와 일제의 식민지정책을 비판하다가 다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결국 교사직에서 해임된 그녀는 1938년 평양여자신학원 교사를 맡으면서 1940년 5월 17일부터 1941년 7월 30일까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대한 거부와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반대하다가 5회에 걸쳐서 구금당하였다. 1942년 8월 23일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식민지 탄압정책이 가중되었을 때 신사참배요구와 일제의 식민지정책을 비판하다가 다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44년 9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 광복 직후 출옥하였다.
김두석은 이후 교직 생활을 했으며, 1985년 회고록 <두 감나무 고목에 활짝 핀 무궁화>를 출간했다. 그녀는 이 서적에서 자신이 신사참배를 한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다. 물론 교회 안에서 하는 동방요배와 일장기 경례도 하지 않았다. 가정에 있는 사람 같으면 혼자 하지 않는 것으로 끝난다. 허나 나는 교사였다."
2004년 1월 7일 서울에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두석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4년 그녀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