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 |
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덕기는 1914년 5월 29일 경상북도 봉화군 내성면(현 봉화읍) 해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9년 내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집에서 독학하던 중 중앙일보 봉화지국을 경영하던 김창신(金昌臣)의 지도를 받아 무정부주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그 사상에 공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2년 11월, 그를 비롯한 김창신·김중헌(金重憲)·김중열(金重烈)·김중문(金重文)은 김창신의 집에 모여 일제를 타도하고 사유재산제도를 소멸한 새사회를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흑색청년자유연합회(黑色靑年自由聯合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이들은 무정부주의 사상을 연구·토의하는 한편 동지규합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1933년 4월 같은 동네의 김창정(金昌鼎)이 물야면(物野面) 사방공사장(砂防工事場)의 십장이며 일제의 앞잡이인 권시약에게 폭행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분개한 김중문 등 10여명의 청년들이 권시약(權時鑰)을 집단 구타하였고, 이로 인하여 김중문은 일경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흑색청년자유연합회의 조직이 발각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그도 일경에 붙잡혀 1934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봉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8년 7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김덕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이후 이들은 무정부주의 사상을 연구·토의하는 한편 동지규합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1933년 4월 같은 동네의 김창정(金昌鼎)이 물야면(物野面) 사방공사장(砂防工事場)의 십장이며 일제의 앞잡이인 권시약에게 폭행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분개한 김중문 등 10여명의 청년들이 권시약(權時鑰)을 집단 구타하였고, 이로 인하여 김중문은 일경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흑색청년자유연합회의 조직이 발각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그도 일경에 붙잡혀 1934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봉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8년 7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김덕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