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기출은 1899년 12월 7일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경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의 승려였다. 그러던 중 박명호(朴明浩)ㆍ곽영준ㆍ정호극(鄭鎬克)ㆍ윤만성(尹萬成)ㆍ최일만(崔壹萬) 등과 함께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에 소재한 천도교구실에서 회합하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정하고 양재은을 군자금을 보관하는 군자금모집단주(軍資金募集團主)로 임명하였다.
1920년 음력 8월 박명호 등이 작성한 '대한신정부(大韓新政府) 재무총장(財務總長) 이시영'의 인장(印章)이 날인된 대한신정부 군자금 모집원 사령서(辭令書) 및 금전영수서(金錢領收書) 등을 사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8월 23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多文里), 음력 9월 2일 오후 10시경 강원도 홍천군 동면(東面) 노천리(魯川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김기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0년 음력 8월 박명호 등이 작성한 '대한신정부(大韓新政府) 재무총장(財務總長) 이시영'의 인장(印章)이 날인된 대한신정부 군자금 모집원 사령서(辭令書) 및 금전영수서(金錢領收書) 등을 사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8월 23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多文里), 음력 9월 2일 오후 10시경 강원도 홍천군 동면(東面) 노천리(魯川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김기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