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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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
자 | 명숙(明淑), 사실(士實) |
호 | 능백(能伯)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기용은 1883년 5월 13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오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5일 청송 진보시장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가했으며, 다음날 현서면에서 조현욱(趙炫郁)·조병국(趙柄國) 등과 함께 화목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피체되어 3개월간 구금되었다.
출옥 후 영천시 창구동으로 이주한 그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한 장진홍과 회합하여 1928년 결사대원이 되었다. 이후 영천경찰서와 고향의 친일부호인 이인석(李仁錫)의 집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장진홍으로부터 폭탄 2개를 전달받아 폭탄투척을 위한 예행연습을 하며 기회를 노리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1930년 4월 24일 대구복심법언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예비죄로 징역5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장진홍이 옥중에서 변사(變死)하자 그 진상을 추궁하기 위하여 형무소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다가 간수가 폭언을 하자 분개하여 대한고립만세를 부르며 감옥을 파괴하다가 가중형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자택에 은거했고, 1938년 7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정부는 1980년 김기용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출옥 후 영천시 창구동으로 이주한 그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한 장진홍과 회합하여 1928년 결사대원이 되었다. 이후 영천경찰서와 고향의 친일부호인 이인석(李仁錫)의 집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장진홍으로부터 폭탄 2개를 전달받아 폭탄투척을 위한 예행연습을 하며 기회를 노리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1930년 4월 24일 대구복심법언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예비죄로 징역5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장진홍이 옥중에서 변사(變死)하자 그 진상을 추궁하기 위하여 형무소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다가 간수가 폭언을 하자 분개하여 대한고립만세를 부르며 감옥을 파괴하다가 가중형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자택에 은거했고, 1938년 7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정부는 1980년 김기용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