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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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김광(金光)
이명
고영선(高永善) ,고영희(高永喜)
생몰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광은 1909년생이며 황해도 해주군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성군사범학교(成郡師範學校)를 졸업하고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당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는 등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1932년 2월에는 중국 상해에서 엄상빈(嚴商斌) 등과 함께 흥사단 단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견 간부로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해 오던 그는 1940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軍務部)에서 중국의 항일투쟁을 후원·협력하기 위해 이준식을 대표로 하는 군사특파단(軍事特派團)을 결성하자, 안춘생(安椿生)·서파(徐波)·이영여(李英如)·노태준등과 함께 단원으로 선발되어 산시성으로 파견되었다. 산시성으로 파견된 군사특파단은 중국 옌시산 장군의 항일군사활동을 후원·협조하였다.

1940년 9월,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유일당인 한국독립당의 당군으로 한국광복군총사령부가 창설되고 간부를 편제할 당시 유능한 인재가 부족하자, 군사특파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와 동지들은 광복군총사령부로 소환되어 충칭으로 되돌아 왔다. 그 후 1940년 11월 광복군총사령부가 충칭에서 섬서성(陝西省) 서안으로 이주하게 됨에 따라 총사령 대리 황학수 등과 함께 2백여 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같은 달 29일 서안(西安)에 도착하여 항일투쟁을 준비하였으며, 광복군의 직제 개편시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政訓處) 선전과장(宣傳課長)으로 선임되어 중국과의 외교 활동을 원만히 처리하는데 노력하였다.

또한 1941년 12월, 광복군총사령부에서 군관학교 내에 전시간부훈련단(戰時幹部訓練團)이라는 광복군장교훈련소(光復軍將校訓練所)를 특설하기로 결정하자, 총사령부의 선전과장으로 광복군 장교 선발모집 등 선전사업을 담당하였으며, 1943년 인도 면전전구(緬甸戰區)의 영국군 당국이 광복군에 군사 파견을 요청하자, 광복군의 기술부대와 한지성(韓志成) 등을 파견하는데 협력하는 등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44년 중국 베이징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광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