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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여러 해에 걸친 사건의 경우, 시작 연도를 기준으로 연표 세부항목에 분류하였다.
2. 연표[편집]
2.1. 본편 이전[편집]
발생 연도 | 명칭 | 관련국 | 개요 |
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6세기 | 조선비사(朝鮮秘史) | 조선(朝鮮) | 작중 조선 국군(國君)들이 '자성 기씨'가 된 배경 및 그들의 '청동 옥좌'에 얽힌 배경 스토리 |
2.2. 본편[편집]
2.2.1. 기원전 403~400[편집]
발생 연도 | 명칭 | 관련국 | 개요 |
기원전 403년 | 주(周)의 삼진분립(三晉分立) 공인 | 주(周), 진(晉), 조(趙), 위(魏), 한(韓) | 진(晉) -> 조(趙), 위(魏), 한(韓) 주(周) 천자가 진(晉)이 조(趙), 위(魏), 한(韓) 3국으로 나뉘는 것을 공인하고 3국 군주들을 제후로 인정. |
기원전 403년 | 고 전투(顧戰鬪)[1] | 조(趙), 연(燕) vs 중산(中山) | 조(趙), 연(燕) 연합의 승리.[2] 위(魏)에 망했다 복국한 중산(中山)이 다시 패망. 그러나 중산의 국군(國君)인 환공은 6백여 병력과 함께 도주에 성공해 재차 기회를 노림. |
기원전 403년 | 송(宋)의 천도 | 송(宋) | |
기원전 403년 | 1차 서하 전투(一次西河戰鬪)[5] | 의거(義渠) vs 위(魏) | 위(魏)의 대승.[6] 위의 서진을 경계하던 진(秦)이 의거(義渠)를 부추겨 위의 서하군 지역을 공격하게 함. 명장 오기가 이끄는 위군이 일방적인 대승을 거둠. 이후 패주과정에서 흩어진 병력도 다수 발생해 의거군은 1/4 정도인 1만 5천여 명만을 수습함. |
기원전 403년 | 1차 남정 전투(一次南鄭戰鬪)[7] | 진(秦) vs 촉(蜀) | 촉(蜀)의 승리.[8] 1차 서하 전투로 인한 의거(義渠)와 위(魏)의 상호 소모로 여유가 생긴 진(秦)이 촉의 남정을 공격해 영토 확장을 시도하지만 실패. 이후 전투피해 이외 퇴각과정 등에서 추가 손실이 발생해 결과적으로 진군은 전 병력의 4할 정도인 1만 4천여 명만을 수습함. |
기원전 402년 | 의거 전투(義渠戰鬪) | 진(秦) vs 의거(義渠) | 진(秦)의 대승. 진이 1차 서하 전투의 대패로 후유증에 시달리던 의거(義渠)를 공격. 의거 군주를 사로잡고 의거를 진의 괴뢰국으로 만듦. |
기원전 402년 | 제(齊)의 국성교체 | 제(齊) |
2.2.2. 기원전 399~390[편집]
발생 연도 | 명칭 | 관련국 | 개요 |
기원전 398년 | 난릉대전(蘭陵大戰) | 월(越) 귀족파, 초(楚) vs 월(越) 국왕파, 노(魯), 송(宋), 제(齊) | |
기원전 398년 | 초(楚)의 천도 | 초(楚) | |
기원전 397년 | 정한전쟁(鄭韓戰争) | 정(鄭) vs 한(韓), 조(趙), 위(魏) | |
기원전 396년 ~ 기원전 395년 | 연나라 정벌(燕國征伐) | 조선(朝鮮), 중산(中山), 누번(樓煩) vs 연(燕), 조(趙) | |
기원전 395년 | 촉의 북벌 | 1 | 1 |
기원전 394년 | 중산국멸망전(中山國滅亡戰) | 1 | 1 |
기원전 394년 ~ 기원전 391년 | 1~4차 서하 약탈전 | 1 | 1 |
기원전 393년 | 산조 전투 | 1 | 1 |
기원전 393년 | 진나라 반정 | 1 | 1 |
기원전 393년 | 가정 전투 | 1 | 1 |
기원전 391년 | 상채 공략전 | 1 | 1 |
기원전 391년 | 상규 전투 | 1 | 1 |
기원전 391년 | 즉묵 토벌전 | 1 | 1 |
기원전 390년 | 조(趙)의 천도[13] | 1 | 1 |
2.2.3. 기원전 389~380[편집]
2.2.4. 기원전 379~370[편집]
- 기원전 379년 자방 약탈전
- 기원전 378년 강평 공략전
- 기원전 377년 2차 이릉 전투, 3차 남정 전투, 늠구대전
- 기원전 376년 1차 수춘 전투, 정양 전투
- 기원전 375년 제나라 반정, 2차 수춘 전투, 파촉전쟁, 상구 전투
- 기원전 374년 늠구 전투, 의양 전투, 중천 전투
- 기원전 373년 무성 전투
- 기원전 372년 초증전쟁
- 기원전 371년 증나라 격하, 강평 전투, 흉노-월지 전쟁
- 기원전 371년~기원전 367년 동호 복귀전
2.2.5. 기원전 369~360[편집]
- 기원전 369년 작은 위의 도미노 효과
- 기원전 366년 촉나라 내전, 의양 전역, 늠구 전투
- 기원전 365년 1차 월나라 내전(금강의 난), 중천 전투
- 기원전 363년 파촉간섭
- 기원전 362년 서융 정벌전, 팽택 전투
2.2.6. 기원전 359~350[편집]
2.2.7. 기원전 349~340[편집]
2.2.8. 기원전 339~330[편집]
2.2.9. 기원전 329~320[편집]
- 기원전 329년 초원대전(草原大戰), 해상대전
- 기원전 327년 ~ 기원전 323년 화남대전(華南大戰)
- 기원전 327년 ~ 기원전 326년 파나라 내전
- 기원전 326년 백마족 토벌전, 양주 전투, 외신책봉 비사
- 기원전 326년 ~ 기원전 325년 강월전쟁(姜月戰爭)
- 기원전 324년 구원군 방어전(九原郡防禦戰)
-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사망, 에우메네스의 봉합
-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22년 3차 송나라 내전[26]
- 기원전 322년 2차 위나라 내전(二次魏國內戰)
- 기원전 321년 한의 주 협박, 정령-선비 갈등
- 기원전 320년 위나라 기담(魏國奇談), 디아도코이 전쟁
2.2.10. 기원전 319~310[편집]
2.2.11. 기원전 309~300[편집]
[1] 고(顧): 오늘날의 허베이성(河北省) 딩저우시(定州市).[2] 투입병력: 조군 3만 9천여 명, 연군 2만 7천여 명 / 중산군 1만여 명.
피해: 조군 극소수(1% 미만), 연군 7천 8백여 명(29%) / 중산군 3천 9백여 명(39%).[3] 오늘날의 허난성(河南省) 상추시(商丘市).[4] 오늘날의 장쑤성(江苏省) 쉬저우시(徐州市).[5] 서하군(西河郡): 오늘날의 산시성(섬서성)(陕西省) 웨이난시(渭南市) 화인(현급)시(华阴市) 이북, 옌안시(延安市) 이남, 황하(黃河) 이서, 뤄허(洛河, 과거의 낙수洛水) 이동 지역.[6] 투입병력: 의거군 6만 1천여 명 / 위군 6만 2천여 명.
피해: 의거군 2만 5천여 명(41%) / 위군 1천 9백여 명(3%).[7] 남정(南鄭): 오늘날의 산시성(섬서성)(陕西省) 한중시(汉中市) 한타이구(汉台区).[8] 투입병력: 진군 3만 6천여 명, 촉군 1만 7천여 명.
피해: 진군 1만 2천 2백여 명(34%)/촉군 2천여 명(12%).[9] 투입병력, 피해 상세는 항목 링크 참조.[10] 현재의 후베이성(湖北省) 징저우시(荊州市), 삼국지의 형주 강릉 일대[11] 현재의 후베이성(湖北省) 이창시(宜昌市), 삼국지에선 이릉대전이 벌어진 곳으로 유명.[12] 투입병력, 피해 상세는 항목 링크 참조.[13] 작중 연표에선 기원전 389년의 '위의 야읍 공략 결의.조조 연합의 중산령 침공결의' 항목에서 확인 가능[14] 1차 팽성 전투, 2차 서하 전투를 포함[15] =4차 서하 전투[16] 1차 팽성 전투는 기원전 382년 노국멸망전의 일부[17] 3차 수춘 전투 포함[18] 3차 수춘 전투는 기원전 356년 1차 송나라 내전의 일부[19] 4차 서하 전투 = 기원전 364년의 1차 서하대전[20] =1차 완 전투[21] 팽려택 전투 포함[22] 2차 완 전투, 5차 수춘 전투 포함[23] 5차 수춘 전투는 기원전 333년 초한송 전쟁의 일부[24] 민지 전투 + 6차 서하 전투 + 석문산 전투[25] 역사대로. 작중 연표에서 기원전 330년의 '알렉산드로스가 흉노를 죽였어..!' 항목에서 언급.[26] 3차 팽성 전투 포함[27] 2차 농서 약탈전(옹현 전투) + 6차 서하 약탈전[28] = 7차 서하 전투, 6차 서하 전투는 기원전 331년 진의 3면전쟁의 일부[29] 무관 전투 + 상 전투[30] 남전 전투 + 두현 전투[31] 8차 수춘 전투 포함
피해: 조군 극소수(1% 미만), 연군 7천 8백여 명(29%) / 중산군 3천 9백여 명(39%).[3] 오늘날의 허난성(河南省) 상추시(商丘市).[4] 오늘날의 장쑤성(江苏省) 쉬저우시(徐州市).[5] 서하군(西河郡): 오늘날의 산시성(섬서성)(陕西省) 웨이난시(渭南市) 화인(현급)시(华阴市) 이북, 옌안시(延安市) 이남, 황하(黃河) 이서, 뤄허(洛河, 과거의 낙수洛水) 이동 지역.[6] 투입병력: 의거군 6만 1천여 명 / 위군 6만 2천여 명.
피해: 의거군 2만 5천여 명(41%) / 위군 1천 9백여 명(3%).[7] 남정(南鄭): 오늘날의 산시성(섬서성)(陕西省) 한중시(汉中市) 한타이구(汉台区).[8] 투입병력: 진군 3만 6천여 명, 촉군 1만 7천여 명.
피해: 진군 1만 2천 2백여 명(34%)/촉군 2천여 명(12%).[9] 투입병력, 피해 상세는 항목 링크 참조.[10] 현재의 후베이성(湖北省) 징저우시(荊州市), 삼국지의 형주 강릉 일대[11] 현재의 후베이성(湖北省) 이창시(宜昌市), 삼국지에선 이릉대전이 벌어진 곳으로 유명.[12] 투입병력, 피해 상세는 항목 링크 참조.[13] 작중 연표에선 기원전 389년의 '위의 야읍 공략 결의.조조 연합의 중산령 침공결의' 항목에서 확인 가능[14] 1차 팽성 전투, 2차 서하 전투를 포함[15] =4차 서하 전투[16] 1차 팽성 전투는 기원전 382년 노국멸망전의 일부[17] 3차 수춘 전투 포함[18] 3차 수춘 전투는 기원전 356년 1차 송나라 내전의 일부[19] 4차 서하 전투 = 기원전 364년의 1차 서하대전[20] =1차 완 전투[21] 팽려택 전투 포함[22] 2차 완 전투, 5차 수춘 전투 포함[23] 5차 수춘 전투는 기원전 333년 초한송 전쟁의 일부[24] 민지 전투 + 6차 서하 전투 + 석문산 전투[25] 역사대로. 작중 연표에서 기원전 330년의 '알렉산드로스가 흉노를 죽였어..!' 항목에서 언급.[26] 3차 팽성 전투 포함[27] 2차 농서 약탈전(옹현 전투) + 6차 서하 약탈전[28] = 7차 서하 전투, 6차 서하 전투는 기원전 331년 진의 3면전쟁의 일부[29] 무관 전투 + 상 전투[30] 남전 전투 + 두현 전투[31] 8차 수춘 전투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