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유래[편집]
杞溪 兪氏
시조는 신라 시대 아찬[1]을 지낸 유삼재(兪三宰)이다. 그의 후손인 유의신(兪義臣)이 신라가 멸망한 뒤 항복하지 않자 고려 태조는 그를 기계현[2] 의 호장으로 삼았고, 이후 기계 유씨로 불리게 된다.
기계 유씨는 고려 전기에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여러 대에 걸쳐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고려 후기에 이르러 일족이 경기도 남쪽 지방에 이주하면서 다시 벼슬에 뜻을 두었다. 유의신의 현손 득선(得瑄), 득선의 장남 선(僐), 선의 장남 승계(承桂) 등 3대가 기계 유씨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승계의 장남 천경(千慶)과 4남 성리(成利), 5남 성보(成保), 7남 성복(成福) 등 4형제가 고려 말기에 관직에 올라 이름을 떨쳤다.
유(兪)씨는 창원, 인동, 장사, 당진, 무안, 고령 등 여러 본이 있으나 이 중 기계(杞溪)가 대종(大宗)으로 전체 유(兪)씨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5년 기준 139,073명이다.
시조는 신라 시대 아찬[1]을 지낸 유삼재(兪三宰)이다. 그의 후손인 유의신(兪義臣)이 신라가 멸망한 뒤 항복하지 않자 고려 태조는 그를 기계현[2] 의 호장으로 삼았고, 이후 기계 유씨로 불리게 된다.
기계 유씨는 고려 전기에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여러 대에 걸쳐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고려 후기에 이르러 일족이 경기도 남쪽 지방에 이주하면서 다시 벼슬에 뜻을 두었다. 유의신의 현손 득선(得瑄), 득선의 장남 선(僐), 선의 장남 승계(承桂) 등 3대가 기계 유씨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승계의 장남 천경(千慶)과 4남 성리(成利), 5남 성보(成保), 7남 성복(成福) 등 4형제가 고려 말기에 관직에 올라 이름을 떨쳤다.
유(兪)씨는 창원, 인동, 장사, 당진, 무안, 고령 등 여러 본이 있으나 이 중 기계(杞溪)가 대종(大宗)으로 전체 유(兪)씨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5년 기준 139,073명이다.
2. 유명 인물[편집]
조선시대 때 98명의 문과급제자와 3명의 정승을 배출한 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