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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시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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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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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시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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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교동이란 이름은 과거 이 주변에 설치한 향교가 있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인데, 대구향교는 1932년 일제의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중구 남산동으로 옮겨지고 이름만 그대로 남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양키시장이라고 해서 미제 군복, 수입과자 등을 파는 곳으로 이름을 떨치다 1956년 3월 교동시장으로 정식 허가를 냈고, 보따리 무역을 통한 수입품과 미군부대 등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을 기반으로 1970~80년대 호황을 누렸다. 상점 가판대를 보면 MRE(전투식량)나 미제 장비 파는 곳에선 탄창을 볼 수도 있었다.
허나 상가 자체의 노후화와 협소함 등으로 지금은 꽤 쇠락한 편이긴 하다. 이를 만회하려는지 2010년대 이후부턴 매일 밤마다 교동길 일대에 '교동도깨비야시장'이 열린다. 서문시장의 야시장처럼 먹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다만 규모는 서문시장에 비해 많이 작은 편.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양키시장이라고 해서 미제 군복, 수입과자 등을 파는 곳으로 이름을 떨치다 1956년 3월 교동시장으로 정식 허가를 냈고, 보따리 무역을 통한 수입품과 미군부대 등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을 기반으로 1970~80년대 호황을 누렸다. 상점 가판대를 보면 MRE(전투식량)나 미제 장비 파는 곳에선 탄창을 볼 수도 있었다.
허나 상가 자체의 노후화와 협소함 등으로 지금은 꽤 쇠락한 편이긴 하다. 이를 만회하려는지 2010년대 이후부턴 매일 밤마다 교동길 일대에 '교동도깨비야시장'이 열린다. 서문시장의 야시장처럼 먹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다만 규모는 서문시장에 비해 많이 작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