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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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齊)나라 15대 국군
공손무지
公孫 無知
강(姜)
여(呂)
무지(無知)
아버지
강이중년(姜夷仲年)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85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85년

1. 개요2. 제 양공을 죽이고 군주 자리에 오르다3. 최후

1. 개요[편집]

제나라의 제15대 군주.제장공의 손자[1]. 이중년의 아들. 제희공의 조카. 제양공의 사촌 아우. 제환공의 사촌 형. 그는 제 양공을 죽이고 제나라 군주에 올랐으나 그는 옹림 사람에게 죽었다. 달리 제전폐공이라고도 한다.

2. 제 양공을 죽이고 군주 자리에 오르다[편집]

그가 제 양공을 죽이는데 참여한 것은 이유가 있다. 제 희공은 동생 이중년을 아꼈는데, 그가 죽자 그 아들 공손무지를 제 양공과 같은 대우를 하게 했다. 그런데, 제 양공은 그의 특권을 빼앗았다.[2] 이에 공손무지는 그것에 한을 품었다. 줬다 뺐는 게 제일 치사한 일이다. 한편 연칭과 관지보 또한 계구 땅을 지키는 데 교대하는 사람을 보내준다고 해놓고서는 끝내 보내주지 않자 결국 그들과 짜고 제 양공을 죽여버렸다. 이때 공손무지의 부하가 패구에 사냥나간 제 양공 앞에 멧돼지 분장을 하고 나타나 공자 팽생을 자칭하니 찔린 제 양공은 신발을 떨어뜨리며 달아났다. 제 양공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이때 제 양공이 자신의 신발을 잃어버린 것을 애꿎은 신발 관리자를 채찍질 300대나 해서 화풀이를 했다. 이에 원망한 관리자는 공손무지 일행에게 제 양공의 위치를 알려주었는데, 제 양공의 호위병이 공손무지 일행을 쳤으나 그들은 모조리 죽었다. 그리고 문틈에 신발이 나온 것을 보고 자세히 알아보니 거기에 제 양공이 있는지라 그를 제거했다. 그리고 그대로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3. 최후[편집]

옹림 사람은 공손무지의 학정에 원망해 그곳에 놀러온 공손무지를 죽여버렸다. 그리하여 제나라 군주 자리가 비자 관중(管仲)은 공자 규(糾)와 함께 노나라에서, 포숙은 공자 소백[3]과 함께 거나라에서 출발했다. 이때 관중이 공자 소백을 활로 쏘아 맞힌 뒤 공자 소백을 죽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죽지 않았고, 결국 여유있게 제나라로 향한 공자 규 일행은 결국 허탕을 치고 말았다. 공자 소백이 제 환공이 되자 공자 규 일행은 노나라로 돌아갔다. 이에 노나라와 간시에서 싸워 노군이 포위되었다. 그러자 제 환공이 협상해 공자 규를 죽이라 해서 공자 규는 노나라에서 자결했다. 그리고 관중은 제나라로 끌려들어갔다. 관중은 포숙의 도움으로 제 환공을 섬겨서 상국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 제 환공은 최초의 패자 자리에 올랐다.

[1] 공손무지 중 공손은 공작의 손자라는 뜻이다.[2] 나라에 두 군주가 있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3] 훗날 제환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