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호리카와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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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리카와 덴노(後堀河天皇, 후굴하 천황)
유타히토(茂仁)
칸논지능(觀音寺陵)
생몰
1212년 3월 22일 ~ 1234년 8월 31일
재위
1221년 12월 1일 ~ 1232년 10월 4일
조오(貞応)→겐닌(元仁)→가로쿠(嘉禄)→안테이(安貞)→간기(寛喜)→조에이(貞永)
황거
교토 어소(京都御所)

1. 개요2. 사이온지 긴츠네의 권력

1. 개요[편집]

일본의 제86대 천황.

고토바 덴노를 중심으로 한 조정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가마쿠라 막부는 고토바 덴노의 혈통을 배척하기 위해 고토바 덴노의 아들 주쿄 덴노폐위했다. 이후 고토바 덴노의 동복형 모리사다 친왕과 후지와라 진시(藤原陳子)의 아들 유타히토를 추대했다. 유타히토가 고호리카와 덴노로 즉위한 후 모리사다 친왕은 태상천황이 되어, 추존 천황으로서 고타카쿠라 덴노(後高倉天皇)라고 불린다.

1232년 12월 5일, 고호리카와 덴노는 아들 시죠 덴노에게 양위하였다.

1234년 8월 6일, 고호리카와 덴노가 사망하였다.

2. 사이온지 긴츠네의 권력[편집]

가마쿠라 막부가 등장한 이래로 사이온지 긴츠네는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인척관계를 맺어 세력을 확대하였다. 또한 실질적인 정권을 행사했던 막부의 우두머리인 관백 쿠죠 미치이에에게 딸 린시를 시집보내는 등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 권력을 장악해 온 가문과도 혼인관계를 공고히 했다. 또한 1221년에 고토바 덴노가 막부의 토벌을 시도하였을 때, 긴츠네는 교토의 상황을 막부에 보고하여 막부가 승리하는 데 기여하였다. 조정 세력을 진압한 후 막부는 고호리카와 덴노를 옹립했는데, 고호리카와 덴노의 모친과 긴츠네의 모친은 자매간으로 고호리카와 덴노를 막부에 추천한 것은 긴츠네였다고 추정된다. 이후 그의 권세는 조정에서는 넘볼 자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