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궐도안》을 채색한 《서궐도》에서 묘사한 집희당 |
1. 소개[편집]
2. 이름[편집]
3. 역사[편집]
처음 건립된 때는 정확히 모르나 1620년(광해군 12년)에 경희궁이 창건될 때 같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1691년(숙종 17년) 1월 22일의 《승정원일기》 기사이다. 이 때 내전은 흥태문으로, 세자궁은 채선당의 동문으로 들어가라고 한 것을 보아 세자의 정식 처소인 승휘전이 전소되기 전부터 동궁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승휘전이 불 타 사라진 후에는 경선당과 함께 정식 처소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간혹 왕들이 이용한 경우도 있었는데, 순조는 때때로 이 곳에서 묵기도 하였다.## 1829년(순조 29년) 10월에 경희궁 내전 일곽에 화재가 일어났으나 경선당은 거리가 멀어 무사하였다.
순조 이후의 집희당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860년대 고종 시기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대부분의 경희궁 건물들의 90%를 헐어다 경복궁 중건의 자재로 쓸 때, 철거되었다.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1691년(숙종 17년) 1월 22일의 《승정원일기》 기사이다. 이 때 내전은 흥태문으로, 세자궁은 채선당의 동문으로 들어가라고 한 것을 보아 세자의 정식 처소인 승휘전이 전소되기 전부터 동궁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승휘전이 불 타 사라진 후에는 경선당과 함께 정식 처소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간혹 왕들이 이용한 경우도 있었는데, 순조는 때때로 이 곳에서 묵기도 하였다.## 1829년(순조 29년) 10월에 경희궁 내전 일곽에 화재가 일어났으나 경선당은 거리가 멀어 무사하였다.
순조 이후의 집희당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860년대 고종 시기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대부분의 경희궁 건물들의 90%를 헐어다 경복궁 중건의 자재로 쓸 때, 철거되었다.
《경복궁 중건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