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겐로쿠 대지진 | ||
발생일시 | 1703년 12월 31일 | |
진앙 | ||
규모 | M 8.1-8.2 | |
최대진도 | ||
쓰나미 | 7m 이상 | |
사상자 | 사망자 6,700명 이상 | |
이재민 수만 명 이상 | ||
1. 개요[편집]
2. 피해[편집]
기록에 따르면 수도 에도에는 그리 큰 피해는 없었으나, 에도성의 각 성문과 영주들의 에도 내 저택들, 나가야와 마치야 등에서 건물피해가 일부 있었다. 히라쓰카와 시나가와에서는 지면이 액상화하여 아침이 되면 오수가 길거리에 널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진앙지 보소 반도를 중심으로 사가미만과 보소 반도 남단으로 피해가 심각했으며 지진으로 인한 화재가 사가미국(오늘날의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성에서 일어나 오다와라성 천수각이 소실되었다. 이외에도 관동 각지역에서 화재가 일어나 가옥 약 8천 호가 파괴되고 사망자 약 2300여 명, 이재민 약 3만 7천여 명이 생겼다고 추정한다.
또한 보소 반도에는 지진 해일(쓰나미)도 발생해 아타미에는 파도 높이가 7 m로 추정되는 해일이 밀려들었다. 가옥 500여 호 중 10여 호만 남기고 모조리 파괴되었을 만큼 피해가 막심했으며, 가마쿠라에서는 쓰루가오카하치만 신궁에까지 해일이 밀려들어왔다고 한다. 이토에서는 해일이 강을 거슬러와 피해가 있었으며 구주쿠리에서 약 5 m, 요코하마에 약 3 m, 에도에도 1 m 높이 해일이 일었다고 한다. 또한 소나무로 유명한 리쿠기엔은 지진해일로 발생한 염해로 거의 모든 소나무가 말라죽었고,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 때에야 겨우 원상복구되었다.
진앙지 보소 반도를 중심으로 사가미만과 보소 반도 남단으로 피해가 심각했으며 지진으로 인한 화재가 사가미국(오늘날의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성에서 일어나 오다와라성 천수각이 소실되었다. 이외에도 관동 각지역에서 화재가 일어나 가옥 약 8천 호가 파괴되고 사망자 약 2300여 명, 이재민 약 3만 7천여 명이 생겼다고 추정한다.
또한 보소 반도에는 지진 해일(쓰나미)도 발생해 아타미에는 파도 높이가 7 m로 추정되는 해일이 밀려들었다. 가옥 500여 호 중 10여 호만 남기고 모조리 파괴되었을 만큼 피해가 막심했으며, 가마쿠라에서는 쓰루가오카하치만 신궁에까지 해일이 밀려들어왔다고 한다. 이토에서는 해일이 강을 거슬러와 피해가 있었으며 구주쿠리에서 약 5 m, 요코하마에 약 3 m, 에도에도 1 m 높이 해일이 일었다고 한다. 또한 소나무로 유명한 리쿠기엔은 지진해일로 발생한 염해로 거의 모든 소나무가 말라죽었고,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 때에야 겨우 원상복구되었다.
3. 기타[편집]
4. 이전, 이후의 타임라인[편집]
발생일자 | 추정최대진도 | 추정규모 | 발생지 | 사상자 | 비고 | 출처 |
1643. 7. 24. | VIII~X | M6.5~7.4 | 불명 | 쓰나미 발생 | 조선왕조실록 한국기상기록집 NOAA | |
1668. 7. 25. | XII | M8.5 | 중국 산둥성 | 사망자 42,758명 | 진도 XII | NOAA |
1668. 7. 31. | VI | M6.4 | 황해 | 불명 | 김소구 교수 논문[A] | |
1681. 6. 12. | VIII | M6.5 | 불명 | 한국기상기록집 KMA 지진연구소 논문[B] | ||
1681. 6. 26. | VIII~IX | M7.5 | 불명 | 쓰나미 발생 | KMA, NGDC | |
1703. 12. 31. | 7 | M8.2 | 일본 보소 반도 남서쪽 바다 | 사망자 5,233명 | 쓰나미 발생 최대높이 10.50m | NOAA |
1707. 10. 28. | 7 | M8.6~9.3 | 사망자 5,000여 명 | 쓰나미 발생 최대높이 25.70m | NOAA |
※1668년 4월과 1702년에는 백두산이 분화하였고, 1707년 호에이 대지진 이후에는 후지산이 폭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