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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귀포시 출신 독립운동가, 姜太河[편집]
성명 | 강태하(姜太河) |
일본식 성명 | 農田太河 |
이명 | 강정봉(姜丁奉) |
본관 | |
생몰 | |
출생지 | |
추서 | 대통령표창 |
1897년 4월 5일 전라남도 대정군 좌면 하원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8년 10월 7일, 제주도 좌면 하원리에서 법정사 주지 김연일을 중심으로 한 법정사 승려들 및 인근 주민 다수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일으킨 법정사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6개월여 전부터 조직적으로 거사를 계획하고 화승총이나 곤봉 등 무기를 조달하는 등 무장항쟁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 일본인 관리나 상인을 제주도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시키겠다는 목적을 격문으로 알렸다. 강창규의 지휘 아래 전선과 전주를 절단하고 중문리의 경찰관주재소를 불태우며 일본인을 구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강태하는 당일 이종창(李宗昌) 등이 하원리로 들어와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자 양봉(梁鳳) 등과 함께 거사에 참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66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법정사는 불태워졌다. 강태하는 거사 당일 바로 붙잡히지는 않았고, 1달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같은 해 11월 26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이튿날인 27일 동지들과 함께 기소되었다.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엔을 언도받았다. 이 형벌에는 벌금 30엔을 완납할 수 없을 때는 30일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부속 조건이 붙어 있었는데, 강태하는 이에 따라 30일간 노역장에 유치되어 고초를 겪어야 했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7년 8월 8일 별세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2. 공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姜泰河[편집]
1884년 9월 13일 충청도 공주목 신하면(현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 충남 공주군 신상면 유규리 시장에서 황병주가 유구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자 이에 참가하여 5백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공주에서는 3월 12일 공주면의 장날에 만세시위를 벌이려다가 일제의 탄압에 의해 저지당한데 이어, 신상면 유구 장날인 3월 14일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천도교 신도 황병주가 먼저 독립만세를 선창함에 따라서 5백여 명의 군중이 호응하였는데, 이 때 강태하도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시위대를 진압하려는 일본 경찰에 의해 황병주가 체포되자, 강태하를 비롯한 시위군중은 황병주를 구출하기 위해 주재소를 습격하여 유리창을 깨뜨리고 투석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6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언도받아# 이에 공소하였으나, 7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고, 상고하였지만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마저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3년 5월 5일 별세하였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