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Xagm-48a.jpg]] ||종류||공중 발사 [[탄도 미사일]]|| ||무게||5000kg|| ||길이||11.66m|| ||직경||890mm|| ||탄두||1.2Mt W59 [[핵탄두]]|| ||날개폭||1.68m|| ||사거리||1850km|| ||속도||15300km/h|| [목차] == 개요 == AGM-48 '스카이볼트'(Skybolt)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공중 발사용 탄도 미사일(Air-Launched Ballistic Missile, ALBM)로 개발된 [[탄도 미사일]]이다. == 개발 배경과 백지화 == 당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이외의 [[백업]]용 핵공격 수단은 오직 핵[[폭격]]뿐이었는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처럼 구식 폭격기로 수평 폭격을 하는것.(...) 소련군의 조밀한 방공망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갈수록 강화되는 [[소련]]의 방공망에 핵[[폭격기]]가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따라서 사거리가 비교적 긴 [[탄도 미사일]]을 [[비행기]]에 탑재해 쏘자는 계획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미국]]이 단독개발했으나, 곧 [[핸들리 페이지 빅터|빅터]]나 [[아브로 벌컨|벌컨]] 등의 [[폭격기]]에 탑재하기 위해 [[영국]]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때마침 최초의 실용 [[SLBM]]인 [[UGM-27 폴라리스]]가 성공했다. 폭격기보다 훨씬 생존성이 높은 잠수함에서의 핵 보복이 가능해지면서 공중 발사 탄도미사일의 가치는 더욱 약화되었고, 결국 스카이볼트 개발 계획은 폐기됐다. == 외교 분쟁의 대상 == 당시 [[영국]]은 전략 핵전력을 구형 [[폭격기]]의 핵[[폭격]]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는데, 폭격기에 탑재된 [[핵탄두]]의 생존성을 확보하기 위해 스카이볼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리고 스카이볼트의 개발취소는 영국의 전략 핵전력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NATO]]는 [[유럽]]의 독자적 핵억지력 보유에 관한 [[논쟁]]에 휩싸여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스카이볼트의 취소는 [[미국]]이 영국의 전략 핵전력 보유를 탐탁치 않아 하고, 궁극적으로 무력화시키려 든다는 [[의심]]을 사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스카이볼트 위기(Skybolt Crisis)'라는 상황이 조성되어, 미영 양국 간의 [[외교]] 문제로 번지게 되었다. 이에 영국은 미국을 어르고 달래서 스카이볼트를 취소하는 대신, 미국이 개발한 최초의 실용 [[SLBM]]인 [[UGM-27 폴라리스]]를 얻어내어 자국의 [[전략원잠]]에 탑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프랑스의 [[샤를 드 골]] 대통령은 영국이 미국의 핵전략에 종속되었다면서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고, 이후 영국은 1960년대 말 드골이 권좌를 떠난 후에야 비로소 유럽경제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반세기도 안되어 [[브렉시트]]~~ 비록 실제 전력화되지는 않았지만, 미영 양국의 동맹관계, 더 나아가 유럽의 외교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남기는 등 생각 외로 큰 파장을 일으킨 무기였던 셈. == 후일담 == 한편 이후로도 스카이볼트와 같은 공중 발사 탄도 미사일(ALBM)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미 공군]]은 [[C-17]]의 [[MRBM]] 투하-발사와 [[C-5]]의 [[미니트맨 III]]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를 시도해 성공했다(…). 물론 실험의 결과가 성공적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실용화는 되지 않았다. [[분류:탄도 미사일]][[분류:항공 병기/현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