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1994년]] 9월 27일 [[대한민국 육군]] [[제53보병사단]] 127연대 해안소초에서 조한섭 [[소위]](학군 32기), [[김특중]] 소위(육사 50기[* 여담으로, 입학 동기가 [[서경석]](육사 자퇴 후 재수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에 91학번으로 재입학.)이며, 해당 기수 중에 진급을 계속한 장교들은 2020년 현재 [[대령]]~[[준장]] 계급으로 일선부대 연대장~여단장이다.]), 황정희 [[하사]]가 무장 탈영한 사건. 두산백과에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7942&cid=40942&categoryId=31778|장교 길들이기 하극상 사건]]'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 경과 == 조 소위와 황 하사는 9월 27일 오전 2시40분경 탈영을 목적으로 부대 통신선을 끊은 후 취침 중이던 소대원들을 전부 깨워 연병장에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허공에다 [[M16 소총]]으로 실탄을 몇 발 쏘며, "따라오는 XX는 죽여 버린다." 라고 협박하고 소총과 [[수류탄]], 실탄 등을 휴대한 채 황 하사의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806958|#]] 김 소위는 조 소위와 같이 탈영하기로 모의했다가 망설인 탓에 그날 부대 [[방위병]] 윤종천 [[이등병]]을 끌고 나와 [[술]]을 먹고 망설이다가 결국엔 일행과 합류, 탈영 인원은 3명이 되었다. 조 소위와 김 소위는 수색작전에 돌입하자 하루 만에 투항하고 황 하사는 4일 동안 도망다니다가 체포되었다. == 원인 == [[하극상]] 때문으로 밝혀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때까지 만연하던 [[쌍팔년도]] 군대의 병크가 문민정부 시대에 터진 것. 조 소위와 김 소위가 투항할 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개인 문제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곧 진상이 밝혀진다. 부대내 모든 병들이 합세한 이른바 '''[[소대장]] 길들이기'''가 있었고,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김 소위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왜 굳이 육사 출신임을 언급하냐 하면, 육사 출신의 경우 말이 초임 장교지 '''4년간 생활반 생활에 준하는 생도 생활을 거쳤기 때문.''' 실제로 육사 출신은 다른 장교보다 2호봉이 높다.] 장교가 이런 꼴을 당하는데 황 하사가 어떤 취급을 당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 [[부사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부사관 자체가 상병 때 지원 혹은 차출하여 임관 후 소속부대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고, 민간 [[부사관후보생]] 출신들과 함께 [[병장]]들에게 짬으로 밀려서 두들겨 맞는 일이 제법 많았다고. 다만 병장 만기 혹은 부사관 출신으로 [[재입대]]한 하사/소위는 당연히 상병장들을 휘어잡았고, 성질이 다혈질인 하사/소위라면 상병장들이 길들이기를 시도할 때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두들겨패는 등 어느 정도의 군기를 잡았는데 군 계급 체계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쪽이 당연하다. 당시는 지금보다 병영 부조리가 훨씬 심했기 때문에 간부가 병장을 두들겨 패는건 예삿일이었고, 아예 '''[[하극상]]'''으로 보고해버리면 도리어 병장이 [[역관광]]을 타는지라.....][* 실제로 1990년대 초반에 '''일병'''에서 부사관으로 임관한 하사는 소속부대로 복귀하자마자 상병장들한테 견제(?)를 당했는데, 원래 [[다혈질]]이었던지라 '''"야 이 [[새끼|XX]]야, 내가 네 친구야? 어디 감히 상병장 나부랭이들이 하사한테 맞먹으려 들어!"'''라는 말로 세게 나가자 더 이상 안 개겼다는 일화가 있다. (.....) 현재는 '''[[원사(계급)|원사]]'''로 진급했다고.....] '''[[일등병]]'''이 "여기서 생활하려면 내 말 잘 들어야 한다. 일병 이상에게는 경어를 사용하라"고 하는 등 문자 그대로 후임 취급하려고 했다. 구체적인 하극상은 다음과 같다. * 소대장에게 경례를 하지 않거나, 반말을 함. 경례나 존대를 하는 [[일등병|일]]/[[이등병|이병]]들을 소대장이 보는 앞에서 구타함. * 일부러 소대장 방에 들어가서 [[화투]]를 치고, 술을 마시며 소대장이 방에 들어왔어도 무시함. * 소대장이 말을 하면 소대장을 야유하거나 비웃음 * 상급부대 검열시 당황하게 만들기 위해 소대장의 [[전투화]]를 감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그 부대에서만 있던 것이 아니고, 꽤 많은 부대에서 자행되었던 부조리였다. 오죽하면 하극상한 상병장들 쪽 변호전략이 '고참들도 그러던 부대에서 살아 군대가 원래 그런 곳인 줄 알았을 뿐이다'일 정도였고,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장교들 사이에서는 영웅이나 다름없었다고. 그리고 당시에는 '병사들의 세계에 간섭하는 거 아니다'라며 이러한 병사들끼리의 부조리에 장교가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금 보면 정신나간 생각이 만연했고, 옛날 군대에서 부조리와 가혹행위가 방치되었던 것에는 이러한 원인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부대의 소대장들은 이런 것을 두고 보지 못했고[* 육사에서 김 소위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교수는 김 소위가 생도 시절부터 다혈질에 타협과 합리화를 못 하는 답답한 성격으로,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했다고 평했다. 출처 - 국민의 군대 그들의 군대, 김남국 저], 병사간 부조리를 제지하려 했다. 해당 소대에서 길들이기 문제가 심하게 터져나온 것에는 이런 배경도 있었다.. 예를 들면, 많은 부대에 방위병에게 고참 대접을 못 하게 하고 경례라도 하면 현역병 고참이 구타하는 부조리가 만연했다. 해당 소대에서도 그랬는데 일병이 방위병 상병에게 반말하는 것을 보고 소대장이 일병을 때리는 사건도 있었고, 탈영 직전에는 군기를 잡겠답시고 총으로 협박하거나, 진짜로 위협사격을 하는 등 갈 데까지 간 상태였다. 소대장들의 대응도 적절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였고, 잡힌 후 탈영죄에 폭행죄, 협박죄까지 붙어 처벌되긴 했으나 여론은 '오죽 병들이 군기를 밥말아먹었으면 소대장이 저렇게까지 하냐?'에 가까웠다. 탈영의 계기가 된 결정적인 사건은 8월 23일 일어났는데, 다른 소대의 이 모 소위가 이병을 구타하는 신원식 병장에게 "왜 신병을 구타하냐, 차라리 날 때려라"고 하자 "때리라면 못 때릴 줄 아느냐"며 이 소위의 '''따귀를 때렸고''' 격분한 이 소위가 신 병장의 멱살을 잡자 주변에 있던 병 3명이 달려들어 '''소대장을 집단구타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92900209103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09-29&officeId=00020&pageNo=3&printNo=22640&publishType=00010|#]] 이 소위는 이를 중대장에게 보고했지만 신 병장에게 얼차려를 주는 데 그쳤으며, 미온적인 대처에 소대장들이 집단으로 항의하자 마지못해 [[영창]]을 보내는 것으로 덮어두려 하였다. 역시 하극상에 시달리던 조 소위는 이 소위와 김 소위를 만나 우리가 희생해서라도 군기강을 바로잡자며 무장탈영 범행을 제의했지만 막상 구타당한 이 소위는 별 반응이 없었고 김 소위가 가담[* 김 소위의 경우 자신 사비를 털어 콜라 한 박스를 사오니 그런 건강에 안 좋은 건 소대장이나 실컷 먹으라며 선임끼리 이온음료를 사마셨다고 한다], 이후 이동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승용차를 구입한 황 하사를 끌어들였고, 황 하사 역시 병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지라 역시 쉽게 가담했다. ~~[[군대]]가 언제나 그렇듯이~~ 지휘계통 내부에서 해결하려 했지만 안 되던 게 사건이 터지고 나서 고쳐졌으니 무장탈영한 목적은 이루어진 셈이 되었다. == 후폭풍 == 하극상으로 인한 '''장교의 무장 탈영''' 사건이 사상 초유의 일이라 신문과 방송에 대서특필 되었다.[* 그러나 이후 육군의 자료공개 이후 1년간 30여건의 장교탈영 사건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51896|#]] 군이 사건 사고를 얼마나 폐쇄적으로 관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당시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도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지시했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812191|#]] 군기강 해이를 들어 여야가 모두 입을 모아 국방부 장관과 육군 수뇌부를 가루가 되도록 까댔다. ~~이런 사건사고들이 자기가 비난하고 욕했던 [[박정희]]의 유산 징병제에 의한 것인데 왜 징병제를 폐지하지 않았냐~~ 조사를 거처 해당부대 병들과 중대장, [[대대장]]까지 무려 29명이 구속되었고, 조사과정에서 하극상에 가담한 병 7명이 더 구속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건 당시의 각계 반응은 이상하게도 '''"소대장 길들이기는 관행이다"'''가 당연하다는 정신나간 반응들이 많았었다. 또한, '''"병장이 소대장 안 가르치면 누가 교육시키냐?"'''라는 어이없는 반응이 대세였다. 게다가, 군대 내 높으신 분들조차도 "'''나 땐 안 그랬는데 문민정부에 들어서 육사 수준이 낮아져서 이랬다."'''라는 반응이었다. 물론, 위의 예비역들의 개소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대장 길들이기는 문민정부 이전부터 쭉 내려온 악습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차는 반응이다. 심지어, '''"지휘관들 구타금지 시키고 얼차려나 시키라고 하니 병한테 얻어맞았다."'''라는 정신나간 발언도 나왔으며, 일반인들이야 "장교도 탈영하니 병들은 오죽하겠나?"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 쯤 되면, 계급 따위는 밥말아먹었고 그냥 장식이나 다름없는 오합지졸 군대가 따로 없다. 그러나 군대가 "[[당나라 군대]] 다 되었다."라는 반응도 많았고, 언론에서는 '''"[[X세대]][* 군사독재정권이 종식되고 난 뒤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사회의 탈권위적인 분위기로 각종 규제가 해소되고 대중문화에서도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를 비롯한, [[듀스(음악그룹)|듀스]], [[구본승]], [[신은경(배우)|신은경]]이 인기를 끌었다. 암울한 시절보다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로서 정신나갔다고 주장하는 시끄러운 음악을 주책없이 크게 틀어대거나, [[여자]]가 [[담배]]를 [[길빵]]하거나 남자 옷을 입는다는지 남자가 치마패션(?)이거나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다면서 기성세대들은 세상이 말세가 왔다고 한탄하는 반응이 만연했었다.]가 군대에 적응을 못 하네?"'''라는 이뭐병스런 반응도 있었고 달라지는 사회상에 군대가 적응을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이게 말이 안 되는 이유는 쌍팔년도 시절 군대보다 문민정부부터 시작해서 2010년대 후반에는 군대와 관련된 악습이 절반도 훨씬 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가끔씩 커뮤니티에 이 사건이 회자되면 '병장이 군대 돌아가는 것 더 잘 아는데 소위가 자기보다 짬 높은 사람이 하는 일 존중하지는 못할 망정 FM대로 하려 하면 답답하다', '계급 가지고 자기가 윗사람인 줄 아는 짬찌끄러기 쏘가리는 괴롭혀야 제맛' 같은 반응을 하는 사람이 20세기에 군대 다녀온 그 당시 세대뿐만도 아니고 심지어 20-30대 중에서도 상당한데, 고참이 신병을 구타하는 행위가 짬 높은 사람이 하니 존중해야 하는 일인가? 물론 부대원이 잘 굴리고 있던 부대를 잘 모르는 초급간부가 끼어들면서 답답하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간부가 부조리를 근절시켰더니 병들이 부조리 못 누려서 억울하다고 징징거리는 등 전적으로 병들이 잘못하면서 잘못 없는 간부 탓하는 사례도 많으며, 이 사건은 명백히 후자였다. --지들이 당하면 게거품 물 거면서 안 당하니까 팝콘 뜯는 게 옛날이랑 지금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한편 가장 큰 후폭풍이 있었을 군대에서는 1년 넘게 군기강 해이를 바로잡겠다고 했는데..... 병영부조리로 인한 사건사고가 또 발생했다. == 사건 처리 == 조 소위, 김 소위는 체포 당시와 비슷한 증언을 했지만 군검찰에서는 군의 구조적인 문제로 비춰지는것에 대해 부담을 느껴서 피의자들의 범행 동기를 최대한 개인적인 일로 몰아가기 위해 다른 이유가 있지 않냐고 물타기를 시도했고, 세 명의 피고인들은 모두 강하게 부인했다. 재판과정에서 중대장은 물론 대대장, [[사단(군사)|사단]] [[참모]]와 [[연대장]]까지 모두 하극상 사실을 알고도 미온대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극상 가해자를 영창 15일로 퉁친 것도 연대장의 지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1심 [[제11군단]] 보통군사법원은 무장 탈영범 조 소위 김 소위가 다음날 순순히 투항한 것을 고려해 징역 7년, 4일 후에 체포된 황 하사는 징역 10년, 소대장을 두들겨 팬 신 병장은 징역 10년, 두들겨 팼을 때 거든 병 둘은 각 징역 7년, 나머지 하극상 구타자들에게도도 3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였다. 소대장의 보고를 묵살한 중대장은 징역 3년 등을 선고받았다. 김 소위가 불러 같이 술을 먹은 윤 이병은 가장 불쌍한 케이스인데 무장 탈영한 김 소위의 수류탄을 소지한 죄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한편, 구속된 대대장은 '''역시나''' ~~높으신 분들의 배려로~~ 1심 과정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고 한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id=19941222023006&keyword=%C0%E5%B1%B3%20%B9%AB%C0%E5%20%C5%BB%BF%B5|#]]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항소심에서는 국민적 관심이 시들해진 덕으로 형량이 대폭 줄었다. 탈영 간부 3인방은 징역 2년, 하극상인 상관폭행죄로 기소된 병들은 징역 2~4년, 보고를 묵살해서 직무유기로 기소된 [[대위]] 2명은 징역 1년, 소대장이 훔친 수류탄을 보관한 죄로 기소된 윤 이병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 되었다. [[http://ruliweb.daum.net/news/view/MD19950323115300103.daum|#]] 사실 2심에서 형량이 대폭 경감된 데에는 일반적인 무장탈영과 다르게 단지 병들에 의한 하극상에 대한 항의차원에서 간부가 일으킨 사건인 부분이 참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 소위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징역 2년이 확정되었다. [[https://casenote.kr/대법원/95도910|#]] 다른 탈영간부는 대법원 판결문에서 원심공동피고인으로 칭하고 있어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보이고, 그 외의 피고인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법률심이므로 상고기각이나 상고포기로 2심대로 확정되었을 가능성이 놓다. == 그 후 ==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이 하극상을 [[영창]]으로 퉁치려다 일어난 일이라, 영창 징계 강화의 일환으로 이 사건 이후로 영창 기간이 복무기간에서 제외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4230020910201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4-23&officeId=00020&pageNo=2&printNo=22834&publishType=00010|당시 대책안 기사]] 이는 징계로서의 영창이 폐지된 현재는 [[군기교육대]]로 옮겨갔다. 1995년 국방부와 육군에서 사건을 심도있게 조사하고 대책을 내놨는데 먼저 군대의 허리인 하사관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복무 수준과 지위를 향상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짬밥 찬 병장들을 억누르려면 하사관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하사관은 [[부사관]]으로 개칭된다. 한편 대책이랍시고 '''"조 소위는 [[지방대]] [[학생군사교육단|학군사관]] 출신이라서 리더십이 떨어진다"'''며 서울소재 상위권 대학의 육군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ROTC) 정원을 늘리고 지방대는 학군단을 폐쇄한다고 하다가 지방대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애초부터 저런 계획 자체가 참 어이가 없었는데 사건 당사자였던 김 소위는 [[육군사관학교|육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저 논리를 그대로 따르자니 육사도 폐지해야(...)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92년 하반기, 93, 94 군번들에게는 잊지 못할 사건이며 이후 전후방을 막론하고 소대장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경우 병장들이 대대적으로 개박살이 나게 되면서 제대로 된 계급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군대가 어쩌고 하는 [[꼰대]]들을 입 다물게 만들 때 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한편, 김 소위는 수감 중이던 1995년 3월 [[중위]]에 진급 후 징역 2년형이 확정됨에 따라 불명예 제대했으며 경기도 이천 장호원에 있는 육군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96년 7월1일 출소 후 1998년 [[국민의 정부]] 때 복권되어 예비역 중위로 편입되었다. 2017년 현재는 [[http://sofficer.net/xe/teach/524|사관학교 전문 학원에서 수학영역 강사로 활동 중인데]] 실제로 육사 재학 때 주전공이 수학이었다고. 또한 앞서 언급했듯 이 사건으로 인해 계급 문화가 정착되는 등 순기능이 분명 있었기 때문에 [[http://blog.naver.com/s_officer/220161358862|김특중씨를 소개하는 글에도 탈영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http://blog.naver.com/s_officer/220161383022|해당 블로그에서 자신을 언급한 글에]] [[http://blog.naver.com/s_officer/220161410263|본인이 직접 댓글을 달기도]]... [[분류:1994년/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의 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 육군/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