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남북정상회담)] [include(틀:남북통일)] ||<-3><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00224f><colbgcolor=#00224f> {{{#fff {{{+1 '''2000 남북정상회담'''}}}[br]{{{-1 '''2000年 南北頂上會談[br]2000 Inter-Korean Summit'''}}}}}} || ||<-3> [[파일:external/image.asiatoday.co.kr/471298(1)-450320_10520.jpg|width=100%]] || || {{{#fff '''일시'''}}} ||<-2> [[2000년]] [[6월 13일]] ~ [[6월 15일]] || || {{{#fff '''장소'''}}} ||<-2> [[북한|[[파일:북한 국기.svg|height=12]]]] [[평양직할시]] || || {{{#fff '''주최'''}}} ||<-2> [[북한]] || ||<|3><width=20%> {{{#fff '''참석'''}}} ||<width=35%><bgcolor=#003478> [[대한민국|{{{#fff '''남'''}}}]] ||<width=35%><bgcolor=#ed1c27> [[북한|{{{#fff '''북'''}}}]] || || {{{-1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김대중]]''' ||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국방위원장]]}}} '''[[김정일]]''' || || {{{-1 [[대한민국 영부인|영부인]]}}} '''[[이희호]]''' || {{{-1 위원장 부인}}} 공석[* 당시 김정일에게는 비공식적인 부인 [[고용희]]가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전면에 등장하지는 못했다.] || || {{{#fff '''결과'''}}} ||<-2> [[6.15 남북공동선언]] || [목차] [clearfix] == 개요 == [[2000년]] 6월 13일에서 6월 15일까지 [[대한민국]]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진행한 회담. == 진행 == ||<tablealign=center><tablewidth=700><tablebgcolor=#fff,#191919> [youtube(JQta-HulTIU)] || ||<bgcolor=#00224f> {{{#fff KTV - '''2000 벽을 넘어'''}}} || >“반세기 동안 쌓인 한을 한꺼번에 풀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입니다” - ,,김대중, 2000년 6월 13일 평양 도착 직후,, [youtube(giV-GLSB8_8)] 2000년 4월 10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문화관광부 장관]][* 아마 대한민국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맡아 당시 문화관광부의 장관이 발표를 한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2020년 현재에도 [[대한민국]] 정부의 [[대변인]]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다.] [[박지원(1942)|박지원]]이 남북정상회담의 예정을 발표했다. 원래 발표된 일정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였지만, 북한 측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 연기를 통보하고 남측도 이걸 받아들이면서 6월 13일로 조정되었다. 추진위원장은 [[박재규(1944)|박재규]] 당시 [[통일부장관]]이였으며, 외교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경제수석·외교안보비서관 등이 위원에 포함됐다. 준비기획단엔 통일부 차관(단장)과 각 정부부처 차관급 및 청와대 경호처장·의전비서관 등이 참여했다. 정상 회담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북한]]의 [[대한민국|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지속했으며, 북한은 일본, 미국과도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며 [[국교]] 정상화 교섭에 나섰다. 김정일의 조기 [[서울]] 방문도 예견됐으나 국제 정세의 급변 및 대한민국 국민 정서에 의한 국내의 반감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한관계]]사의 이정표로 남을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한반도 평화 조성과 [[햇볕정책]]의 결실과도 같은 이 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 == [[6.15 남북 공동 선언]] == 자세한 내용은 [[6.15 남북 공동 선언]] 문서 참고. == 여담 == * 당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회담의 진행과정과 성과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여 일반에 공개했다. [[http://15cwd.pa.go.kr/korean/diplomacy/summit/2k_summit/|15대 청와대 웹기록]] 참고. * [[박지원(1942)|박지원]]은 “하루 회담이 연기되었고, 출발하지 말라는 통보에도 DJ는 절망하지 않고 추진했다”라며 우여곡절 끝에 정상회담이 열렸다고 [[http://m.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90107|밝혔다]]. * 회담을 진행하면서 외교 관례에 따라 남북간의 선물을 교환하였다. 이 중 화제를 모은 것이 바로 '''[[개]]'''였다. 남한에서는 북한에게 '평화'와 통일'이라는 이름의 [[진돗개]] 한 쌍을, 북한에서는 남한에게 '자주'와 '통일'이라는 이름의 [[풍산개]] 한 쌍을 선물하였다. 이 중 풍산개는 남한으로 들여온 후 '우리'와 '두리'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풍산개들은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사육하다가 2013년에 노환으로 자연사했다. 북한에 보낸 진돗개들은 평양의 [[조선중앙동물원]]에서 사육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제기한 것에 감사를 나타내고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가 김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대단한 승리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0/nwdesk/article/1863978_30735.html|김대통령 핵,미사일 등에 대해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전화]]] * 그러나 이 회담은 '''북한에 돈을 주고 성사시킨 회담'''이라는 논란이 일었고, 실제로 사실로 드러났다. '''[[대북송금 사건]]''' 문서 참고.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남북정상회담, version=237)]] [[분류:2000년]][[분류:국민의 정부]][[분류:김정일 시대]][[분류:남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