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 [youtube(vPJJ4ANJxGs)] [youtube(BobhpOX83MQ)] [목차] == 개요 == 1960년 2월 28일, [[3.15 부정선거|3.15 대선]]을 앞두고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현 대구광역시)의 8개 고교 학생들이 자유당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일어난 시위다. 이 시위는 제1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 시민들이 민주 개혁을 요구한 '''최초'''의 자생적 시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 == 상세 == 1960년 2월 28일, [[일요일]]이었던 그날 수성천변에선 야당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이 계획되어 있었다. 참고로 당시 장면 후보는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사망하면서 거의 대통령 후보급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대구 지역은 당시 [[이승만]]/[[자유당]]에 대한 반감이 매우 짙었다.[* [[장면]]은 [[제3대 대통령 선거|1956년 부통령 선거]] 당시 대구에서 무려 82%의 득표율을 기록했었다. 이런 대구의 민심이 바뀌는 건 제3공화국이 들어서는 1960년대 이후부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제5대 대통령 선거|1963년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 측이 남로당 출신이었던 박정희 후보에게 [[종북몰이]]를 감행했고 이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반발심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1980년대 중반까지 총선에서는 [[신민당(1967년)|신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등 성향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지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낸 [[제13대 대통령 선거|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부터는 이런 성향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대구 지역은 보수적 색채가 강한 곳이지만 당시 대구는 남한에서 가장 진보적인 동네로 꼽혔다. 이에 대구 지역 학생들이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몰려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우려한 당시 [[자유당]] 정부는 이를 방지하고자 대구시내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 등교'''를 지시했는데 당국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온갖 핑계로 일요 등교를 강행했다. 당시 일부 학교는 갑자기 임시시험을 친다고 했고[* 3월 3일로 예정된 시험을 변경한 것이다. 참고로 당시는 3월이 아닌 4월에 새 학년을 시작했다.] 일부는 단체 영화관람이나 토끼사냥을 간다는 핑계로 등교를 종용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유당의 꼼수를 학생들이 간파했다는 점이었다.[* 보면 알겠지만 이 시위가 일어난 배경엔 당시 자유당의 멍청함도 한몫했다. 애초 일요일 등교 근거가 말도 안 되는 구실이었고 게다가 일요 등교라는 학생들에게 감정적으로 매우 기름 붓기 좋은 행위를 강행함으로서 일부 학생들의 시위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을 문제를 대규모 학생들의 반발로 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당시는 주5일제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요일에 등교를 하면 2월 22일부터 [[3.1절]] 전날인 29일까지 무려 8일 연속 등교를 하게 되는, 학생 입장에선 그야말로 열불 터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억지로 학생들이 모이니 당연히 학생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갔고, 이러한 행태가 자유당의 독재정권 유지에 의해 일어난 일이란 걸 확인하고 단체로 모여 시위를 한 것이다. 즉, 당국이 의도치 않게 대규모 학생시위가 벌어지도록 유도한 꼴이다.] 우선 이에 반발한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라고 소리치며 가두시위를 벌였고 이에 호응한 대구의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도 27일 시위를 벌였다. 1960년 2월 27일 오후 대구 동인동 이대우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집에 모인 경북고, [[대구고등학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학생 8명은 부당한 일요등교 지시에 항의를 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했고, 후술되어 있는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도 작성했다. 그리고 2월 28일 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자유당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일으키며 궐기했고,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갔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대구MBC의 달빛소화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밝힌 바에 의하면 당시 교사들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는지 일부는 학생들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오후 1시 학생 800여 명이 [[반월당]], [[중앙대로(대구)|중앙통]]을 거쳐 [[경상북도청]](현 [[경상감영공원]])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커졌고, 도중에 유세장으로 가던 [[장면]] 박사를 만났을 땐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행동에 당시 [[오림근]] 경상북도지사와 [[이강학]] 치안국장은 "학생들이 북한에 이용당하고 있다"며 [[종북몰이]]를 시전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오히려 구타당하는 학생들을 보고 경찰에게 달려들어 뜯어말리고 박수치는 등 격려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위엔 8개 학교 총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그 중 12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중엔 학생들을 도와주던 교사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 결국 처벌을 완화해야 했고, 주동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생은 석방하였다. 하지만 이후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전국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결의문 ==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1960년 2월 28일 낮 12시 55분,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 등이 조회단에 올라 격앙된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자 흥분이 고조된 학생들은 함성을 지르고 손뼉을 쳤다. 반독재의 횃불은 이처럼 [[대구시]]에서 처음 불타올랐다. == 운동주체 == 고교생들이 주체이고, 계획적 조직 시위의 운동 요건을 갖춘 학생운동이었다. 우리 역사상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이은 의거로 전후 학생운동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특히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으며, 그 이후 민주화운동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01&aid=0003142057|2.28기념사업회 前 의장 인터뷰]] 총 1,2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으며, 참여 고등학교는 다음과 같다. [include(틀:2.28 학생민주의거 참여 고등학교)] == 4.19 혁명으로 이어진 의거 == 이 사건은 약 2달 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4.19 혁명]]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4.19 혁명 항목 참조. == 여담 == * 2.28 운동이 발생하기 13년 전(1947년) 같은 날 [[대만]]에서는 [[2.28 사건]]이 발생했다. * 현재 대구광역시 각지에는 2.28 학생민주의거를 기념하는 장소가 여러 곳 있다. * 2·28민주운동기념회관(주소 : 대구 중구 2·28길 9) 2.28 학생민주의거를 기념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회관. [[http://www.228lib.or.kr/index.php|홈페이지]]. 명덕초등학교 옆에 존재한다. 참고로 [[명덕역]]의 부역명이 바로 '''2·28민주운동기념회관'''이다. * [[2.28기념중앙공원]] [[대구광역시|대구]] 시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2.28 운동에 관한 장소'''. [[대구광역시/상권|대구의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대구)|동성로]] 바로 옆에 있기 때문. 참고로 2017년 이 공원의 입구쪽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공원]]의 동쪽과 북쪽에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경상감영공원]] 같은 다른 역사적 사실에 관한 공원들도 존재한다.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304892_STD.jpg|width=40%]]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278402_STD.jpg|width=40%]] 2.28 기념탑(주소 : 대구 달서구 두류동 산 154-1) 1961년 시민의 성금으로 세워진 높이 0.3m와 2.3m의 두 기둥으로 남녀의 젊음을 상징하는 탑. 한때 탑은 1번째 사진인 구 명덕로터리(현 명덕네거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2번째 사진인 [[두류공원]] 내 야구장 맞은편 주차장 옆으로 이전되었다. * [[경북고등학교]] 내 2.28 기념공원 2.28 학생민주의거의 발상지인 [[경북고등학교]] 교내에 각종 기념물이 존재한다. * [[대구고등학교]] 내 2.28 기념탑 대구고등학교 역시 시위에 참가하였기에 교내에 관련 기념탑이 존재한다. * 2.28민주로 [[중앙대로(대구)]] 중 [[대구역]]네거리~[[명덕역|명덕네거리]] 구간에 붙은 명예도로명으로, 2019년 5월 30일 제정되었다. 남쪽 끝 지점이 바로 2.28 기념탑이 원래 있던 위치이다. * [[MBC]] 드라마 [[제2공화국(드라마)]] 5화에서 이 사건이 묘사된다. * 2018년에 '2·28민주운동 기념일'이 법정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이후 열린 정부 주관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8&aid=0004045826|기념사]]를 낭독했다. * [[5.18 민주화운동]]과 함께 [[달빛동맹|영호남 교류]]의 주요 매개체로도 쓰이고 있다. 2013년경부터 2.28 기념식에는 광주광역시장이, 5.18 기념식에는 대구광역시장이 항상 참석하고 있으며, 이를 기념하여 [[광주광역시 시내버스]]에는 [[광주 버스 228|228번]], [[대구광역시 시내버스]]에는 [[대구 버스 518|518번]]이 운행하고 있다. 두 시장이 서로 제안하여 시내버스 번호를 부여했다고 한다. * 2020년 [[국민의힘]]에서 강령에 2.28 대구 민주운동을 새롭게 추가시켰다. [[분류:제1공화국]] [[분류:학생운동]] [[분류:한국 민주화운동]][[분류:대구광역시의 사건사고]][[분류:1960년 시위]][[분류:4.19 혁명]][[분류:나무위키 대경권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