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하계 아시안게임)] ||<-3><table align=right><table width=420><table bordercolor=#087647><bgcolor=#087647> {{{+4 '''{{{#ffffff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 ||<-3><bgcolor=#087647> {{{#fff 제11회 아시안게임[br]第十一届亚洲运动会™[br]{{{+1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br]XI Asian Games'''[[상표|{{{#fff ™}}}]] '''Beijing 1990 }}} || ||<-3><bgcolor=#ffffff,#191919> [[파일:attachment/51524002547.jpg|width=70%]] || ||<height=40><bgcolor=#087647> {{{#fff ''' 대회기간 ''' }}} ||<-2> [[1990년]] [[9월 22일]] ~ [[10월 7일]] || ||<height=40><bgcolor=#087647> {{{#fff ''' 개최국 ''' }}} ||<-2> [[중국]]/[[베이징]] || ||<height=40><bgcolor=#087647> {{{#fff ''' 참가국 ''' }}} ||<-2> 36개국 || ||<height=40><bgcolor=#087647> {{{#fff ''' 참가인원 ''' }}} ||<-2> 6,122명 || ||<height=40><bgcolor=#087647> {{{#fff ''' 경기종목 ''' }}} ||<-2> 27개 종목 - 308개 세부 종목 || ||<height=40><bgcolor=#087647> {{{#fff ''' 개회선언 ''' }}} ||<-2> [[양상쿤]][br],,[[중화인민공화국 주석|중국 국가주석]],, || ||<height=40><bgcolor=#087647> {{{#fff ''' 선수선서 ''' }}} ||<-2> 천룽찬 || ||<height=40><bgcolor=#087647> {{{#fff ''' 성화점화 ''' }}} ||<-2> 쉬하이펑, 가오민, 장룽팡 || ||<height=40><bgcolor=#087647> {{{#fff ''' 개·폐회식장'''}}} ||<-2> [[베이징 노동자 경기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11회 하계 [[아시안 게임]]. 이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을 한국식 한자로 발음하는 편이 많았기 때문에 거의 [[북경 아시안게임]]이라고 일컬었다. == 경기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때까지만 해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앞서기는 했지만 압도하지 못했던 종합 성적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홈 [[버프]]를 받은-- 이 대회에서부터 [[넘사벽]]의 성적으로 종합 1위를 싹쓸이하게 된다. 중국은 자그마치 금메달 183개, 은메달 107개, 동메달 51개를 받으며 2위인 한국(금 54, 은 54, 동 73)을 크게 앞질렀다. 일본은 3위 (금 38, 은 60, 동 76), [[북한]]은 4위 (금 12 , 은 31, 동 39) 였다. 이 기록은 중국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계속 깨지지 않다가 --역시 홈 버프를 받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금 199개, 은 119개, 동 98개)에서 깨지게 된다. 하지만 금메달 수 자체가 310개에서 477개로 1.5배 늘어난 것을 생각하면, 개최국이 금 메달의 60%를 싹쓸이 하는 아시안 게임은 전무후무했다. [[대만]]은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안 게임]]에 복귀하게 되었다. --[[지못미]] [[중국 국민당|국민당]]-- 대만은 은메달 10개, 동메달 21개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노골드라서 순위가 크게 떨어졌다 (16위). 메달 갯수로 치면 4위인 31개. --뭔가 냄새가 나는데-- [[인도]] 역시 은메달 8개, 동메달 14개에 비해 금메달은 1개에 그쳤다. 그리고 지난 대회와는 달리 보이코트가 없어 참가국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걸프전|침공]]했다는 이유로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쿠웨이트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본부가 있는 곳이며, 셰이크 파하드 알 아메드 알 자베르 알 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의장이 이라크군과의 교전 중 전사했다.][* 이후 이라크는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복귀한다.] 당시 OCA 회원국 38개국중 유일한 불참국이었다. == 메달 순위 == || 순위 ||<-2> 국가명 || 금 || 은 || 동 || 합계 || || 1 ||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 중국 || 183 || 107 || 51 || 341 || || 2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대한민국 || 54 || 54 || 73 || 181 || || 3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 일본 || 38 || 60 || 76 || 174 || || 4 || [[파일:북한 국기.svg|width=30]] || 북한 || 12 || 31 || 39 || 82 || || 5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 이란 || 4 || 6 || 8 || 18 || || 6 || [[파일:파키스탄 국기.svg|width=30]] || 파키스탄 || 4 || 1 || 7 || 12 || || 7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width=30]] || 인도네시아 || 3 || 6 || 21 || 30 || || 8 || [[파일:카타르 국기.svg|width=30]] || 카타르 || 3 || 2 || 1 || 6 || || 9 || [[파일:태국 국기.svg|width=30]] || 태국 || 2 || 7 || 8 || 17 || || 10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width=30]] || 말레이시아 || 2 || 2 || 4 || 8 || || 11 || [[파일:인도 국기.svg|width=30]] || 인도 || 1 || 8 || 14 || 23 || || 12 || [[파일:몽골 국기.svg|width=30]] || 몽골 || 1 || 7 || 9 || 17 || || 13 || [[파일:필리핀 국기.svg|width=30]] || 필리핀 || 1 || 2 || 7 || 10 || || 14 || [[파일:시리아 국기.svg|width=30]] || 시리아 || 1 || 0 || 2 || 3 || || 15 || [[파일:오만 국기.svg|width=30]] || 오만 || 1 || 0 || 0 || 1 || || 16 || [[파일:중화 타이베이 올림픽기.png|width=30]] || 중화 타이베이 || 0 || 10 || 21 || 31 || || 17 || [[파일:영국령 홍콩 기.png|width=30]] || 홍콩 || 0 || 2 || 5 || 7 || || 18 || [[파일:스리랑카 국기.svg|width=30]] || 스리랑카 || 0 || 2 || 1 || 3 || || 19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width=30]] || 싱가포르 || 0 || 1 || 4 || 5 || || 20 ||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width=30]] || 방글라데시 || 0 || 1 || 0 || 1 || || 21 || [[파일:네팔 국기.svg|width=30]] || 네팔 || 0 || 0 || 1 || 1 || || 21 || [[파일:라오스 국기.svg|width=30]] || 라오스 || 0 || 0 || 1 || 1 || || 21 || [[파일:포르투갈령 마카오 기.png|width=30]] || 마카오 || 0 || 0 || 1 || 1 || || 21 || [[파일:미얀마 국기.svg|width=30]] || 미얀마 || 0 || 0 || 1 || 1 || || 21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width=30]] || 사우디아라비아 || 0 || 0 || 1 || 1 || == 마스코트 == || [[파일:PanPan(1990_asian_games).jpg]] || [[판다]] 캐릭터로 이름은 판판(盼盼, Pànpàn)이다. 디자이너는 중국 국가1급 미술사 류중런(刘忠仁). 다만 서울 아시안 게임 때는 따로 이름이 없었는지 폐회식에 등장할 때 슝마오(Xiong Mao) 라고 했다. 슝마오는 중국어로 판다란 뜻이다. == 이모저모 == * [[태권도]]가 정식종목에서 도로 탈락하였다. 대신 [[가라테]]와 [[우슈]]가 정식 종목으로 진입하여 한국측은 경악한다. 한국측의 강력한 항의와 [[1994년]] [[IOC]]에서 태권도를 [[2000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결정하면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종목에 재진입한다. 다소 다른 얘기지만 우리의 효자종목 중 하나인 양궁도, 금메달 갯수를 전 대회의 12개에서 4개로 확 줄여버리는 등 중국의 노골적인 견제와 야욕이 돋보인 대회였다. * 이 대회로 자신감을 얻은 중화인민공화국은 [[베이징]]에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하여 [[국제올림픽위원회]]에 [[2000년]] 올림픽 유치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호주]] [[시드니]]한테 져서 탈락하였다.[* 당시 중국 정부는 [[천안문 광장]]에 TV 스크린을 설치했을 정도로 기대감이 컸다고 한다. 실제로 1, 2, 3차 투표에서 베이징이 모두 1위를 했으니까. 그러나 결국 45대 43 이라는 근소한 표차로 시드니에게 패했다.] 그래도 11년 뒤인 [[2001년]]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 개막식에서는 대규모 카드 섹션이 펼쳐졌는데, 이는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식에서 선보인 카드 섹션을 벤치 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인들이 중국에 가서 [[우황청심환]]을 비롯한 한약재들을 싹쓸이한 나머지 [[메이드 인 차이나]] 저질 우황청심환이 판쳐서 상당수 국내 판매를 불허되었고, 결국 사재기 하던 이들의 자업자득으로 끝났다. ~~그때만 해도 중국산이 이럴 줄 몰랐지~~ 참고로 한중수교는 1992년에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아직까진 미지의 나라, 신비의 나라였으며 중국싼 짝퉁의 위력이 온누리에 알려지기 한참 전이었다. 물론 자국산 짝퉁에 늘 시달려오던 중국인들은 이런 꼴들을 보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 호칭 문제로 참가 여부가 불투명했던 [[중화민국|대만]]이 '''[[중화 타이베이|中华台北(중화 타이베이)]]'''라는 명칭으로 베이징에 입성. 영어로는 Chinese Taipei라서 문제될게 없었지만 한자표기를 놓고 중국측이 中国台北(중국 타이베이)로 표기할 것을 요구하자 이에 대만측이 발끈하여 中华台北(중화 타이베이)를 쓰겠다고 하여 옥신각신한 끝에 중국이 양보한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하기 위해 대만을 압박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대만이 덜컥 불참해버리면 ~~이거 원해서 국제 스포츠계에서 깽판 친 것 아녔어?~~모양새가 안 좋아서 선택의 여지가 사실상 없었다. 어차피 '중화'라는 명칭을 쓴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대만이 중국과 한 핏줄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고. 중국과 중화의 어감상 차이에 대해서는 [[중화 타이베이|해당 항목]] 참조.] 다만 실제 개막식 현장에서는 대만 선수단이 환대받았는데, '''입장 순간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커졌고 __귀빈석의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과 [[양상쿤]] 국가주석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었을 정도.__''' [[https://youtu.be/MMjao6tV6rs?t=53m56s|해당 영상]] * 아시안게임 개최 1년 전에 대회가 열리는 베이징에서 [[천안문 6.4 항쟁|중국인들이 현재까지도 떠올리기 주저하는 무시무시한 사태]]가 벌어져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지만 개최가 취소되거나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다. --뻔뻔한건지 수습을 깔끔하게 한 건지-- --[[6월 항쟁|마치 한국에서 벌어진]] [[1988 서울 올림픽|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사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이라는 훌륭한 선례(?)가 있었기는 했다. 이때 경찰이 학생들을 상대로 학살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지만 올림픽 하루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보이콧은 일어나지 않았다.] *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대한민국의 김원탁은 2년 전 서울 올림픽에서 성화 최종 점화자 3인 중 한 명이었다.[*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건국대학교]] 재학생 신분이었다. 다른 두 명은 당시 [[서울예술고등학교]] 무용과 재학생이던 손미정과 흑산중학교 소흑산분교(현 가거도분교)의 체육교사였던 정선만.] * 남자 유도 라이트급 은메달리스트 리창수(북한), 여자 유도 무제한급 동메달리스트 천링전(대만)은 후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리창수가 탈북 후 남한에 오자 천링전이 찾아와서 결혼을 하게 되어 남한에 정착했다. * [[1988 서울 올림픽]]에 이어 야구가 시범경기로 지정된 대회이기도 하다. 대만, 일본과 더불어 3개국만이 참가한 종목이라 [[KBO]]에서 출판한 [[한국야구사]]에서도 단신으로 언급되고 마는 대회로 대만이 금메달, 대한민국이 은메달,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분류:하계 아시안 게임]][[분류:중국의 스포츠]][[분류:덩샤오핑 시대]][[분류:베이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