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54년 출생]][[분류:스페인의 축구선수]][[분류:스페인의 축구감독]][[분류:토트넘 홋스퍼 FC/역대 감독]][[분류:레알 마드리드 CF/역대 감독]][[분류:말라가 CF/역대 감독]][[분류:라요 바예카노/역대 감독]]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c4272><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2A3C 2%, #F09C68 2%, #F09C68 4%, #5F5596 4%, #5F5596 6%, #E62A3C 6%, #E62A3C);" {{{#ffec4b '''후안데 라모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folding ▼ ---- [include(틀:RCD 에스파뇰 감독(41대~80대))] ---- [include(틀:토트넘 홋스퍼 FC 감독)] ---- [include(틀:레알 마드리드 CF 감독)] ---- [include(틀:PFC CSKA 모스크바 감독)] ---- }}} || ----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aaaaaa><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스페인의 축구감독 '''}}}}}}}}} || ||<-3> [[파일:koreanhln_juanderamos_r5j2nc0iixja17jy5olfa5p1e-726x400.jpg|width=100%]] || ||<-2><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이름 ''' }}} || {{{+1 '''후안데 라모스'''}}}[br]'''Juande Ramos''' || ||<-2><height=40> {{{#000000,#e5e5e5 ''' 본명 ''' }}} ||후안 데라크루스 라모스 카노[br]Juan de la Cruz Ramos Cano[* [[영어]]를 제외한 [[로망스어군|로망어]]와 [[게르만어파|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 ||<-2><height=40> {{{#000000,#e5e5e5 ''' 출생 ''' }}} ||[[1954년]] [[9월 25일]] ([age(1954-09-25)]세) / [br] {{{-1 [[스페인]] 시우다드레알주 페드로무뇨스}}} || ||<-2><height=40> {{{#000000,#e5e5e5 ''' 국적 ''' }}} ||[[스페인]] [[스페인|[[파일:스페인 국기.svg|width=28]]]] || ||<-2><height=40> {{{#000000,#e5e5e5 ''' 신체 ''' }}} ||[[키(신체)|키]] 173cm || ||<-2><height=40>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br][[코치(스포츠)|축구감독]] || ||<|2><width=15%><height=40> {{{#000000,#e5e5e5 ''' 소속 ''' }}} ||<width=15%><height=40><colbgcolor=#eeeeee,#191919> {{{#000000,#e5e5e5 ''' 선수 ''' }}} ||<width=70%>[[엘체 CF]](1973~1977)[br]CD 알코야노(''미상'')[br]리나레스 CF(''미상'')[br]CD 엘덴세(''미상'')[br]알리칸테 CF(''미상'')[br]CD 데니아(''미상'') || ||<height=40> {{{#000000,#e5e5e5 ''' 감독 ''' }}} ||[[엘체 CF|엘체 일리시타노]](1990~1992)[br]CD 알코야노(1992~1994)[* 네이버 정보에는 AD 알코르콘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영어위키나 과거 존재했던 후안데 라모스 홈페이지의 경력란에 의거하면 알코야노가 맞는것으로 보인다.[[https://web.archive.org/web/20071028155254/http://www.juanderamos.com/index.php?s=lang%2Fen%2Fbiografia.html&sel=ms2&hl=en|아카이브]]][br][[레반테 UD]](1994~1995)[br]CD 로그로녜스(1995~1996)[br][[FC 바르셀로나 B]](1996~1997)[br]UE 예이다(1997~1998)[br][[라요 바예카노 데 마드리드|라요 바예카노]](1998~2001)[br][[레알 베티스 발롬피에|레알 베티스]](2001~2002)[br][[RCD 에스파뇰]](2002)[br][[말라가 CF]](2003~2004)[br]'''[[세비야 FC]]'''(2005~2007)[br][[토트넘 홋스퍼 FC|토트넘 핫스퍼]](2007~2008)[br][[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2008~2009)[br][[CSKA 모스크바]](2009)[br][[FC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FC 드니프로]](2010~2014)[br][[말라가 CF]](2016) || [목차] == 개요 == [[스페인]]의 [[축구선수]] 출신 [[코치(스포츠)|감독]]. [[2016년]]에 [[말라가 CF]] 감독을 맡았다. 28살의 이른 나이에 부상으로 은퇴하고 하부리그부터 감독 커리어를 쌓아 [[UEFA 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결국에는 [[레알 마드리드 CF]]라는 세계구급 빅클럽의 감독직까지 따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 선수 경력 == [[엘체 CF]]에서 데뷔했으나 오래 뛰지 못하고 하부리그를 전전했으며, 무릎 부상으로 인해 28세의 나이에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었다. == 감독 경력 == 은퇴 후 [[엘체 CF]]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0년 엘체의 B팀인 엘체 CF 일리시타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2년 CD 알코야노에서 본격적으로 1군 팀 감독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레반테 UD]], CD 로그로녜스에서 감독을 맡았고 로그로녜스에서는 [[세군다 디비시온]] 2위를 기록해 [[FC 바르셀로나 B]]팀에서 감독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만에 팀을 나와 UE 예이다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1년 후 [[세군다 디비시온]]에 있던 [[라요 바예카노 데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해 첫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일궈내며 [[라 리가]] 승격에 성공했고, 승격 첫 해에는 시즌 중반까지 리그 선두를 질주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아쉽게도 후반기에 힘이 떨어지며 리그 9위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페어 플레이 랭킹에 따라 [[UEFA 컵]] 1라운드 진출 티켓까지 거머쥐었으며, 이어진 2000-01 시즌에는 리그 순위는 14위[* 더구나 강등당했던 18위 [[레알 오비에도]]와의 승점차는 단 2점차였다. 이 해는 리그 최하위 [[CD 누만시아]](39점)와 12위 [[아틀레틱 클루브]](43점)간 승점차가 단 4점밖에 나지 않았을 정도로 강등권 경쟁이 치열한 시즌이었다.]에 그쳤으나 [[UEFA 컵]]에서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FC 지롱댕 드 보르도]] 등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라요에서의 성공 이후 후안데 라모스를 영입한 팀은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였다. 베티스는 90년대 중반 로렌소 세라 페레르 감독 하에서의 성공적인 나날들 이후 하락세를 타더니, 급기야 1999-00시즌에는 시즌 내내 부진하다가 결국 18위로 강등을 당하는 고통까지 겪었다.[* 당시 베티스를 이끌던 카를로스 그리구올 감독 하에서 리그 16위를 기록하던 베티스는, 그리구올 경질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했으나 오히려 성적이 18위까지 떨어지며(...) 강등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시즌 종료 직전 히딩크를 경질하고 파루크 하지베기치 감독을 선임하나 강등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CF]]에 이어 베티스에서도 실패를 겪으며 커리에어 적잖은 타격을 입은 히딩크는 이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위기감을 느끼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동아시아의 어떤 나라]]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 기적이었다.]]'''] 2000-01시즌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절치부심해서 승격을 이루어낸 베티스는 팀을 도약시키기 위해 라모스를 영입했고, 라모스는 베티스를 6위에 올려놓으며 팀에게 UEFA 컵 1라운드 진출 티켓까지 안겨주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이후 [[RCD 에스파뇰]]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에스파뇰에서는 단 3개월만 팀을 이끌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후 휴식을 취하다가 2003년 여름 [[말라가 CF]]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팀 순위를 지난 시즌 13위에서 10위로 끌어올렸다. 말라가에서의 1년이 끝난 후 한동안 감독직을 맡지 않다가 2005-06시즌을 앞두고 [[세비야 FC]]의 지휘봉을 잡은 후안데 라모스는 임대로 데려온 [[하비에르 사비올라]]와 주포 [[프레데릭 카누테]]라는 강력한 공격 자원들을 바탕으로 리그에서 6위를 기록하고 [[UEFA 컵]]에서는 [[릴 OSC]],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FC 샬케 04]]를 연달아 격파하더니 결승에서는 [[미들즈브러 FC]]를 4:0으로 대파하고 UEFA 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어진 2006-07시즌에는 사비올라가 바르샤로 돌아갔으나 카누테가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하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리그 득점 3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며 리그 3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으며, UEFA 슈퍼컵에서는 [[FC 바르셀로나]]를 3:0으로 격침하고 [[코파 델 레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UEFA 컵]]에서는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안드레스 팔롭]]이 PK 3개를 막아내는 활약을 보여주며 2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2007년 유럽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후 2007-08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으나,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비극적인 사망과 [[UEFA 슈퍼컵]] 준우승을 기록하며 팀 분위기가 저하되었다. 거기에 라모스는 시즌 시작 전부터 [[토트넘 홋스퍼 FC]]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었는데, 시즌 시작 전에는 제안을 거절했으나 결국 10월 25일, [[마틴 욜]] 토트넘 감독이 [[경질]]되었고, 2일 후 후안데 라모스의 토트넘 부임이 발표되었다. 당시 [[마틴 욜]] 체제 하에서 심각한 수비 붕괴를 겪으며 18위까지 밀려나있던 토트넘은 라모스 부임 이후 수비 안정감을 어느정도 되찾으며 중위권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풋볼 리그 컵|칼링컵]]에서 승승장구하며 준결승에 진출, [[북런던 더비]] 라이벌 [[아스널 FC]]를 만나 원정 1차전에서 1:1로 비기고 홈 2차전에서 '''5:1''' 대승을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첼시 FC]]를 만나 [[디디에 드로그바]]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으나 후반에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페널티킥 동점골을 기록하고 연장전에서 [[조너선 우드게이트]]의 결승골이 터지며 칼링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여담으로 이 우승컵 이후로 토트넘은 우승을 하지 못하고있다.---그래도 아우디컵이라도 있다.---] [[UEFA 컵]]에서도 조별리그를 2위로 통과하고 32강에서 [[SK 슬라비아 프라하]]를 격침시키며 16강에 진출했으나, 16강에서 [[PSV 에인트호번]]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석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그래도 충분히 희망적인 시즌을 보냈고 리그컵 우승으로 내년 시즌 UEFA 컵 진출 티켓까지 따내면서 이제 라모스 체제 하 토트넘에 대한 기대감이 본격적으로 꽤나 높아졌는데, 정작 2008-09 시즌 개막 후 8경기 2무 6패를 기록하는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팀이 최하위로 처지자 10월 25일 [[해임]]되었다(...). 조금 위를 다시 읽어보면 알겠지만 라모스 직전 토트넘 감독이던 마틴 욜도 10월 25일에 해고되었으니, 참 묘한 결말. 또한 라모스는 재임 시기 [[이영표]]를 잘 기용하지 않아서 국내 팬들이 라모스 감독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눈에 [[이영표]]가 만족스럽지 않을 만은 했다. [[세비야]]시절에 [[다니에우 아우베스]]라는 최고의 측면 수비수를 두고 있었고, 수비력과 동시에 공격력도 일정 이상 갖춘 풀백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영표]]는 냉정히 말해서 공격 측면에서는 많이 아쉬웠는데, [[EPL]] 기준에서 피지컬도 많이 아쉽고, 드리블 능력은 수준급이긴 했으나 스피드는 리그의 평균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라 돌파에 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크로스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크로스를 올리기만 하면 공격수들이 어떻게든지 위치를 잘 선점해서 공격 기회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왼쪽 풀백으로 주로 기용되면서도 왼발 사용 빈도가 많지 않아 크로스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오른발을 사용할 만한 각도를 만들어내야 했는데, 이는 당연히 비효율적이었고 성공률은 거의 제로였다. 수비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체 불가능할 만큼 리그 탑급의 임펙트를 남긴 것도 아니었으니, 물갈이 대상이 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이 시점에 이미 이영표는 30줄을 넘은 상태였고, 그와 함께 신체 능력도 차츰 쇠퇴할 때였으니 감독 입장에서는 그리 나쁜 선택도 아니었다.] 그리고 라모스에게 러브콜을 보낸 팀은 다름아닌 '''[[레알 마드리드 CF]]'''였다. 당시 [[베른트 슈스터]] 감독이 이끌던 레알은 리그에서 [[세비야 FC]]에게 3:4로 지는 등 5위로 처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바테 보리소프]]에게 진땀승을 거두고, [[유벤투스 FC]]와의 2연전을 모두 내주는 등 기세가 좋지 않아 결국 슈스터 감독이 짤린 상황이었다. 라모스는 부임 이후 18경기에서 승점 52점을 쓸어담고 1위를 질주하던 [[FC 바르셀로나]]와의 격차를 좁혔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에서 [[리버풀 FC]]를 만나 2경기 합산 스코어 0:5라는 부진한 경기력으로 광탈했고, 그나마 가망이 보이던 리그에서도 후반기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6으로 패하는 대참사를 겪은 이후 4연패 늪에 빠지며 바르샤와 9점차로 벌어진 채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으며, 그 여파로 재계약에도 실패하며 시즌 종료와 함께 레알을 떠나야했다. 레알 이후 2009년 여름, [[지쿠]]의 후임으로 [[CSKA 모스크바]]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부진 끝에 2009년 '''10월 25일''' 경질되었다. 토트넘 시절의 데자뷰가 느껴진다면 [[기분 탓]]이다. 이후 2010년 10월 1일,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팀 [[FC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4시즌 동안 76승 30무 29패를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2013-14 시즌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이후 계약 만료와 함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재계약을 포기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드니프로의 재정난으로 인해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참고로 14-15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하며 화제가 됐던 드니프로는 이 재정 문제로 인해 16-17 시즌부터 UEFA 주관대회 출전 금지 징계를 먹었고, 리그에서도 16-17 시즌을 끝으로 3부 리그로 강등당하였고, 2018년 여름에는 아마추어 리그로의 강등까지 결정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후 2016년 5월 24일, [[하비 그라시아]] 감독의 후임으로 오랜만에 [[말라가 CF]]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코파 델 레이]]에서 [[코르도바 CF]]에 패해 탈락한 이후 2016년 12월 22일 사임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27일 자로 공식적으로 사임이 발표되었다. 이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종료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올랐으나, 최종적으로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