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독일 국방군/원수)] ||<-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666><tablewidth=330px> [[파일:220px-Bundesarchiv_Bild_146-1987-121-30A,_Hugo_Sperrle.jpg|width=100%]] || ||<width=80><#666> {{{#FFF 이름}}} ||<(>'''Hugo Sperrle'''[br]후고 슈페를레 || ||<#666> {{{#FFF 출생}}} ||<(>[[1885년]] [[1월 7일]][br]{{{-1 [[독일제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루트비히스부르크}}} || ||<#666> {{{#FFF 사망}}} ||<(>[[1953년]] [[4월 2일]][br]{{{-1 [[서독]] [[뮌헨]]}}} || ||<#666> {{{#FFF 복무}}} ||<(> [[독일 제국군|독일제국군]] 1903~1914 독일제국 항공대 1914~1918 국가방위군 1918~1935 [[루프트바페|독일국방군 공군]] 1935~1944 || ||<#666> {{{#FFF 최종 계급}}} ||<(> [[루프트바페|공군]] [[원수(계급)|원수(Generalfeldmarschall)]] || ||<#666> {{{#FFF 주요 참전}}} ||<(> • [[스페인 내전]] • [[2차 세계대전]] · [[프랑스 침공]] · [[영국 본토 항공전]] · [[북아프리카 전선]] || ||<#666> {{{#FFF 주요 서훈}}} ||<(>백엽 검 기사 [[철십자 훈장]]|| [목차] == 개요 ==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 [[독일 국방군]]의 장군. [[스페인 내전]], [[프랑스 침공]], [[영국 본토 항공전]], [[북아프리카 전선]]에 참전하였으며 최종계급은 [[루프트 바페|공군]] [[원수(계급)|원수]]. [[헤르만 괴링]], [[알베르트 케셀링]],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에르하르트 밀히]],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과 더불어 단 6명밖에 없던 공군 원수 중 한 명이다. == 생애 == 1903년에 독일 제국군에 입대하였으며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육군 항공대로 소속이 변경, 1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제국군 제 7군 소속 항공대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베르사유 조약]]의 체결 이후 [[자유군단]]에 가입하였으나 자유군단이 자연스럽게 국가방위군에 포함되면서 계속 군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1935년 [[독일 국방군]] [[루프트 바페|공군]]이 재창설되면서 다시 공군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얼마가지 않아서 [[소장(계급)|소장]]까지 진급하였다. 1937년, [[스페인 내전]]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위시한 국가주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콘도르 군단의 공군 최고 지휘관으로 참전하게 된다. 콘도르 군단에서 활동하였던 인물로는 나중에 같이 원수가 되는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이 있었으며 슈페를레의 참모장으로써 폭격 전술을 전담하였었다. 리히트호펜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게르니카 폭격과 같은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킨 작전에도 관여하였다.[* [[뉘른베르크 최고사령부 재판]]에 슈페를레 또한 회부되었으나 시기적인 차이 때문인지 이 내용은 거론되지 않아 처벌받지 않았다.]] 그 밖에도 콘도르 군단에서 활약한 인물로는 공군 에이스 [[베르너 묄더스]]가 있다. 슈페를레는 콘도르 군단에서의 전공으로 항공대장(''General der Flieger'')[* 독일군 계급에서는 상급대장의 아래, 중장의 위에 해당하며, 미군 기준으로는 중장급에 해당함.]에 진급한다. 2차 세계대전이 개전되었으나 폴란드 전선에서는 별다른 임무가 없었다. 연이어 [[프랑스 침공|프랑스 전선]]에서 3 항공함대(''Luftflotte 3'')[* 3항공함대는 나중에 서부 공군사령부로 변경된다. 다만 슈페를레는 변경 이전에 해임당한다.]를 이끌고 지상병력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프랑스 전역에서의 승리로 말미암아 슈페를레는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원수로 진급하였고 개인적으로는 2계급 특진이 이루어졌었다. 이후 [[루프트 바페]]는 [[영국 본토 항공전]]을 대비하여 재편성되었다. 2항공함대는 [[원수(계급)|원수]] [[알베르트 케셀링]]이 지휘하였으며 런던과 잉글랜드 남동쪽 지방을 담당하였고, 노르웨이에 사령부를 두었던 5항공함대는 [[상급대장]] 한스-위르겐 슈툼프에 의해서 북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폭격을 담당하였다. 슈페를레의 3항공함대는 [[파리(프랑스)|파리]]에 사령부를 두고 웨스트컨트리, 웨일스, 미들랜드와 북서잉글랜드를 담당하였다. 하지만 본토 항공전이 길어짐에 따라서 3항공함대의 임무는 야간 공습으로 교체되었고, 주간 공습은 2항공함대에 위임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런던에 대한 직접 공습이 개시되었는데 [[알베르트 케셀링]]이나 [[헤르만 괴링]]이 런던 직접 폭격에 대한 주장을 제기한 반면, 슈페를레는 [[Bf 109]]의 항속거리를 고려하여 런던 공습의 불가함을 제기하였고 때문에 내내 괴링과의 갈등이 잦았다. 하지만 [[히틀러]], [[괴링]] 등의 주요 수뇌부들의 런던 공습에 대한 견해가 확고하였기 때문에 ~~짬으로나 숫적으로나 역부족이었던~~ 슈페를레의 견해는 묵살되었고 결국 나치 독일의 런던 공습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본토 항공전의 실패 이후 한동안 임무가 없었다. 잠깐 북아프리카 전선의 [[에르빈 롬멜]]의 기갑군을 지원하는 임무가 부여되었으나 곧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하면서 서부전선의 항공전 본업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항공전력 자체가 수적으로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연합군 공군과의 교전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었고 곧 3 항공함대 사령관의 직위에서 해임되고 [[오토 데슬로흐]] 상급대장으로 교체된다.[* 해임 이후 3 항공함대는 서부공군사령부로 개편된다.] 이후 연합군에 체포되어 [[뉘른베르크 최고사령부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무죄로 판결나면서 풀려난다.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지내다가 뮌헨에서 1953년 사망한다. ~~험상궂은 외모에 비해서 묵묵했던 케이스인듯~~ [[분류:독일제국군/군인]] [[분류:독일 국방군 원수]] [[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1885년 출생]][[분류:195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