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제강점기/사건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1 [[황옥(1887)|黃鈺]] [[警]][[部]] [[爆]][[彈]][[事]][[件]]}}} [목차] == 개요 ==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경부[* 警部, 현재의 [[경감(계급)|경감]], 6급 [[공무원]] 정도의 직책. 당시 조선인이 달기 상당히 힘든 계급이다.]였던 [[황옥(1887)|황옥]]이 [[김시현(독립 운동가)|김시현]] 및 다른 [[의열단]] 단원들과 협력해서, 국내 [[폭탄]] 밀반입 시도에 관여한 사건을 말한다. == 상세 == [[1923년]] 2월 11일, 황옥은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단원 김시현(1883년 ~ 1966년), 단장 [[김원봉]](1898년 ~ 1958년?)과 중국 [[톈진 시|천진]]에서 만났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때 황옥은 의열단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황옥은 김시현(金始顯) 등과 함께 의열단의 비밀 계획에 동참했다. [[폭동]] 유발과 요인 [[암살]] 공작용 폭탄의 밀반입을 시도하는 것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1923년]] 3월 3일 중국 천진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에게 폭탄을 수령했다. 그리고 수령한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조선으로 밀반입을 시도한다. 1923년 3월 22일, 새벽 열차로 폭탄과 권총, 전단을 몰래 옮기기 위해 [[신의주시|신의주]] 출발 [[서울특별시|경성]]행 [[기차]]를 탔으나, 의열단 요원 김재진의 밀고로 [[일본제국 경찰]]에 체포된다. 황옥, 김시현 등 9명이 이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 이후의 행보 ==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인 황옥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에 [[납북]]되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언제 죽었는지도 불명확하다. 여담으로, 황옥의 친손자가 [[1983년]] 11월 8일, 민주화 시위 도중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추락해 숨진, 황정하([[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 4학년 재학 중 사망, 1960년 ~ 1983년)라고 한다. [[김시현(독립 운동가)|김시현]]은 해방 이후 [[정치인]]으로 활동하여 2대 민의원을 지냈고 이 당시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을 일으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가, 1960년 [[4.19 혁명]]으로 풀려난 후에, 민의원에 재차 당선되었다. == 기타 ==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밀정]]이 2016년에 개봉했다. 역사학계에서는 황옥이 [[친일반민족행위자]]였는지 독립투사였는지, 의견이 엇갈린다. 황옥이 '위장 친일파'로 독립 운동을 했다는 설과, 의열단에 협력하는 척하면서, 정보를 빼내기 위한 일제의 밀정(스파이)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대립된다. 위에 서술된 밀정(영화)에서는 친일파였다가 [[의열단]]으로 바뀌는 것으로 나온다. [각주][include(틀:표절, version=1~8, source=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