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황룡사 금당 치미1.jpg]] [목차] == 개요 == 7세기 [[신라]] [[황룡사]] 금당에 사용된 [[한국]]의 [[치미]].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했다. == 내용 == [[파일:황룡사 금당 치미3.jpg]] 높이 186 ㎝, 너비 105 ㎝. 서기 600년 무렵 신라인들이 제작해 [[황룡사]] 금당에 올렸던 [[치미]]이다. 쇠못으로 용마루에 고정시키는 부분과 그 위를 덮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치미 양쪽 측면에 8엽 연꽃과 사람 얼굴 형상의 문양을 새겨놓은 예술성 높은 작품이다. 치미는 일반적으로 지붕 장식을 위한 것이지만 그 자체에도 다양한 장식을 가해놓은 것인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것은 주로 새의 꽁지깃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치미라 부르고 있다. 즉, 치미란 명칭은 기와의 쓰임새 보다는 다른 사물의 모습과 함께 비교해놓은 용어인데, 이 황룡사 치미의 쓰임새나 성격을 잘 대변하는 용어는 아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망새'라고 더 많이 부르고 있다.[[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OAds&articleno=2278|국립경주박물관 소개]] [[파일:황룡사 금당 치미7.jpg]] 학계에서 황룡사 금당 치미를 토대로 건물을 디지털 복원한 모습. 좌측은 [[경복궁 근정전]], 우측이 황룡사 금당이다.[[https://cafe.naver.com/booheong/95767|사진 출처 : 네이버 역사카페 부흥 - 안학궁&황룡사 vs 근정전 크기 비교]] 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전신인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1976년부터 1983년까지 8년간 황룡사 터를 발굴조사하며 총 2만 5천 평에서 신라시대 문화재를 4만여 점이 넘게 발굴할 때 발견되었다. [[http://luckcrow.egloos.com/2054477|까마구둥지 : 한국의 사라진 대사찰 신라 황룡사]] 이 망새와 금당 터를 연구한 결과 당시 황룡사 중금당의 경우 하층기단규모가 55 X 30 (m)에 달했으며, 전체 건물 크기는 후대 왕조인 [[조선]]의 가장 큰 정궁 [[경복궁]] [[근정전]]의 2배가 넘는 크기였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단층인 근정전과는 달리 2층 이상의 복층으로 확인되었다. 황룡사 전체 면적은 8만 1천 ㎡에 달했는데 왕실과 정부기관이 밀집한 [[궁궐]]이 아닌 일개 사찰의 크기가 이 정도라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경악하였다. [[파일:황룡사 금당 치미2.jpg]] 망새에는 연화문 등의 각종 화려한 장식 외에도 다양한 얼굴 무늬 등을 새겨놓았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망새의 제일 꼭대기 옥상 부분 5 cm 정도에 할아버지 얼굴이 있는데, 신라인의 예술감각이 아주 뛰어나 [[칼]]로 세 번 선을 그어 넣었을 뿐인데도 신비스러운 웃음을 자아낸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에 제작된 한국의 [[치미]]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파일:황룡사 금당 치미4.jpg]] [[파일:황룡사 금당 치미8.jpg]] [[경주시]]는 경북 경주시 감포읍 오류4리 연동항에 황룡사 금당 치미를 모티브로 한 [[등대]]를 세워놓았다. [[파일:황룡사 금당 치미5.jpg]] [[파일:황룡사 금당 치미6.jpg]] 경주시 [[서라벌대로]] 나정교에도 황룡사 금당 치미를 모티브로 한 경관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분류:신라의 공예]][[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