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황남대총 북분 금귀걸이1.png]] [[http://gyeongju.museum.go.kr/kor/html/sub04/0406.html?mode=V&dvs_code=&mng_no=436|사진 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 - 황남대총 북분 금목걸이]] [목차] == 개요 ==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순금]] 목걸이 2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황남대총 북분 금귀걸이2.jpg]] [[황남대총 북분 금제 드리개]]들과 함께 전시된 모습. [[https://younghwan12.tistory.com/2643|#]]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의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금목걸이 2점으로, 제작 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서기 300~400년대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파일:황남대총 북분 금귀걸이3.jpg]]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82283|사진 출처 : 매일신문 - 신라 왕의 고분에는 비단벌레 박제품도 있었다]] 이 금목걸이 2점은 북분 내 신라토기 및 유리구슬 목걸이들과 같은 구역에서 함께 발견되었다. [[금구슬]]을 엮어 만든 것으로, 금구슬은 두 개의 반구(半球)를 붙여 만들었다. 하트모양의 달개는 금구슬 속을 십자로 가로지른 한 줄의 금실에서 네 개의 매듭을 내어 매달았다. 일반적으로 [[황남대총]]은 여성왕의 무덤인 북분이 남성왕인 남분보다 격이 높고 화려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으나, 이 북분 출토 금목걸이 만은 남분에서 발견된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보다 격이 낮은 작품이다. 다른 유물들은 다 북분 쪽이 남분에 비해 화려한데 비해 유독 금목걸이만은 격이 낮은 작품이 출토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1,600~1,7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금목걸이들로, 옛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