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황남대총 남분 금동신발1.jpg]] 원본 [[파일:황남대총 남분 금동신발3.jpg]] 복원본 [[https://younghwan12.tistory.com/2643|사진 출처]] [목차] == 개요 ==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신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길이 310㎜.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의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신발]]로, 제작 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서기 300~400년대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신발은 금으로 [[도금]]된 동판(銅板) 3장을 도안에 맞추어 오려낸 후 凸 모양의 무늬를 뚫어 장식하고 금못을 박아 제작한 것으로, 신발 앞코는 요즘의 신사화처럼 생겼는데 끝이 위로 조금 들려 있다. 이러한 모양의 금동신발은 황남대총 남쪽무덤 이외에도 [[금관총]]이나 [[천마총]] 등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이 세 고분은 모두 신라의 왕이 묻힌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양식의 신발은 신라왕의 전유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인들은 평소에는 가죽신발을 신었으나 무덤 속에서는 금동판으로 만든 신발을 두었다. 이 황남대총 남분의 금동신발은 길이가 310㎜, 금관총 출토 금동신발의 길이는 342㎜로 매우 크며, 또한 바닥에 둥근 달개나 연꽃모양을 장식하고 있어 평상시 신고 다니기엔 다소 거추장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이 황금 신발들이 실제 활동복이라기보다는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파일:황남대총 남분 금동신발4.jpg]] [[http://blogs.chosun.com/pts47/2019/03/05/신라-역사관2실-황금의-나라-신라/|사진 출처]] 4세기~5세기 경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 바깥고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2455&cid=42665&categoryId=42666|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 황남대총 남쪽무덤 신발]]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